배추 뽑다 텃밭서 티격태격 싸우신 부모님

자식에게 더 좋은 배추와 무 뽑아 주려는 부모님. 그 사랑을 느꼈습니다

등록 2006.11.07 16:03수정 2006.11.0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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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김장철이네요. 토굴새우젓으로 유명한 충남 홍성군 광천읍의 광천시장. 김장철이 다가와서인지 시장 안이 온통 새우젓으로 가득합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김장철이네요. 토굴새우젓으로 유명한 충남 홍성군 광천읍의 광천시장. 김장철이 다가와서인지 시장 안이 온통 새우젓으로 가득합니다. ⓒ 장희용

"애비야, 아침 일찍 광천 좀 갔다 오자."
"뭐 살 거 있으세요?"
"새우젓! 김장해야지."
"벌써 김장할 때 됐어요? 언제 하는데요?"
"한 보름 정도 있다가 해야지."



지난 주말에 사촌형님 환갑잔치가 있어 시골에 갔었는데, 어머니가 김장 준비를 해야 한다며 일요일 아침 일찍 광천으로 새우젓을 사러 가자 하셨습니다.

토굴 새우젓으로 유명한 충남 광천 아시죠? 저희 시골집에서 차로 10분이면 갑니다. 매년 이곳에서 새우젓과 젓갈 등을 사서 김장을 합니다.

일요일 점심때, 환갑잔치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어머니와 함께 광천시장에 갔습니다. 새우젓으로 유명한 곳인데다, 김장철이 다가와서인지 시장 안이 온통 새우젓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어머니는 늘 가시는 단골집으로 가셨습니다. 뽀얗고 오동통 살이 오른 새우젓이 먹음직스럽게 보입니다.

어머니는 새우젓 말고도 젓갈과 김을 사셨습니다. 김은 굳이 사시지 않아도 됐는데, 세린이와 태민이가 김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생각나셨는지 집으로 오시다 말고 갑자기 다시 시장으로 가자 하시더니 기어코 김 한 톳을 사주셨습니다.

a "아휴 그게 뭐랴? 푹푹 좀 뜨유! 해마다 여기서 사는구먼. 많이 줘야 내년에 또 여기로 오쥬." 어머니가 단골임을 내세워 아주머니를 협박(?)합니다. 결국 아주머니는 "알았슈!"하면서 푹푹 떠 주었습니다.

"아휴 그게 뭐랴? 푹푹 좀 뜨유! 해마다 여기서 사는구먼. 많이 줘야 내년에 또 여기로 오쥬." 어머니가 단골임을 내세워 아주머니를 협박(?)합니다. 결국 아주머니는 "알았슈!"하면서 푹푹 떠 주었습니다. ⓒ 장희용

a 살이 통통 오른 새우젓. 우리 집 김장을 더욱 맛나게 해 줄 놈입니다.

살이 통통 오른 새우젓. 우리 집 김장을 더욱 맛나게 해 줄 놈입니다. ⓒ 장희용

어머니는 아내가 챙긴 양보다 꼭 두 배를 더 챙겨 주십니다


새우젓과 젓갈을 사 가지고 집에 오니, 아내는 벌써 텃밭 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시골만 가면 마당 앞 텃밭이나 뒷담 텃밭을 수시로 오가며 "뭐, 가져갈 것이 없나?"하면서 늘 채소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십니다. 그리고 시금치, 쪽파, 대파, 감자, 무, 배추, 상추, 고추, 호박 등 먹을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부지런히 캐고 뽑고 다듬어서 상자에 부지런히 챙깁니다.

어머니는 늘 그런 며느리를 기특하다 하시며 웃음 띤 얼굴로 바라보십니다. 한 푼 두 푼 아껴 알뜰하게 살림하는 며느리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당신이 기른 채소들을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주는 기쁨에 어머니는 기분이 좋으신 거지요.


어머니는 이런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도 팔을 걷어붙이시고는, 그만 됐다고 하는 아내에게 "아가야 더 가져가거라. 가져가서 친정에도 주고, 옆집에 친한 사람도 있다며? 그 집도 주고, 많이 가지고 가서 많이 먹거라. 엄마는 니들 이런 것 주는 게 재민겨. 많이 가져가거라"하시면서 뭐든지 아내가 챙긴 것의 두 배를 싸 주십니다.

그날도 속이 꽉 찬 배추의 노란 속 부분을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맛있다며 두 포기를 뽑은 아내에게 어머니는 부랴부랴 텃밭으로 들어서시더니 네 포기를 뽑아 주셨습니다. 밭이 없는 처가에 가져다주라며 무도 사료 포대로 두 포대를 뽑아 주셨습니다.

작년에는 굳이 심지 않았던 시금치까지 심으셨더군요. 가끔 아내가 시골에 갈 때 시금치를 사 가지고 가서 된장국을 끓여 드리던 것을 기억하시고는 아내가 시금치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심으셨나 봅니다.

배추 하나에도, 무 하나에도 부모님 사랑은 넘치고도 넘쳤습니다

a 배추와 무를 뽑고 있는 어머니 옆에서 "이것 뽑아라, 저것 뽑아라" 코치하시는 우리 아버지. 결국 우리 아버지 어머니한테 한소리 듣고는 텃밭에서 쫓겨나셨습니다.

배추와 무를 뽑고 있는 어머니 옆에서 "이것 뽑아라, 저것 뽑아라" 코치하시는 우리 아버지. 결국 우리 아버지 어머니한테 한소리 듣고는 텃밭에서 쫓겨나셨습니다. ⓒ 장희용

아버지께서도 덩달아 어머니를 따라 텃밭으로 오십니다. 아버지가 어머니 옆에 오시더니, 배추를 뽑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 "그거 뽑지 말고 저거 뽑어", "어허! 저거 뽑으라니께", "아 좀 더 뽑어! 아꼈다가 이고를 갈겨, 지고를 갈겨?", "대파는 왜 안 뽑는댜? 그거 다 먹을겨?"하시며 슬슬 어머니를 자극하십니다.

참다 참다 못 견디신 우리 어머니, 갑자기 벌떡 일어서시더니 "이놈의 할아배! 뭐더러 와 가지고 잔소리는 늘어 놓는댜! 여긴 내가 알아서 헐팅게 가서 소밥이나 줘. 아무렴 내가 내 새끼들한테 못난 것 주겄어? 워째 나이 들어갈수록 잔소리가 더 심해지는지 물러"하시며 아버지를 향해 펀치를 날리십니다.

어머니의 기세에 눌리신 아버지.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런 말씀 없이 어머니 옆에서 어머니가 뽑아 주신 배추와 무를 사료 포대에 담으시고, 시금치는 끈으로 가지런히 묶으셨습니다. 하지만 끝내 또 한 말씀 하셨으니, "파를 다듬어 줘야지, 흙 묻은 채로 그대로 주면 어떡한댜?" 아버지는 결국 그 말씀 한마디 하시고는 어머니에게 쫓겨 소밥 주러 가셨습니다.

a 어렸을 때는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 이겼는데, 요즘은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훨씬 파워가 셉니다. 아버지는 남자는 나이 들면 아내 밖에 없다며 저 보고 아내한테 잘하라고 하십니다.

어렸을 때는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 이겼는데, 요즘은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훨씬 파워가 셉니다. 아버지는 남자는 나이 들면 아내 밖에 없다며 저 보고 아내한테 잘하라고 하십니다. ⓒ 장희용

아내와 저는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서 살며시 웃음을 지었습니다.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글쎄, 뭐라 할까요? 배추 하나 무 하나라도 더 좋은 것 주려는, 더 많이 주려는 부모님의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배추, 무, 시금치, 대파, 쪽파, 감, 고구마, 양파, 마늘, 김치, 고추장, 김, 호박. 그날 시골에서 가져 온 품목들입니다. 어느 것 하나 부모님의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귀하게 여기고 맛있게 먹겠습니다. 배추 한 포기는 벌써 고추장 쌈을 싸 먹었습니다. 노랑 속 배추 맛이 정말 고소했습니다. 어머니가 사 주신 파래 섞인 김도 밥 둘둘 말아서 간장 찍어 잘 먹고 있습니다.

부부의 연을 맺고 오랜 세월 함께 하신 내 아버지와 어머니, 이제 일흔다섯과 일흔하나가 되신 두 분께서 자식들 다 도시로 떠나보내고 시골에서 이렇게 텃밭을 일구며 서로 의지하며 사십니다. 마치 친구처럼 저리 하시는 모습을 보니, 늘 부모님 걱정만 하는 자식 처지에서는 그저 두 분께서 오래오래 함께 하셔서 오늘처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오래오래 봤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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