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작하는 날은 동네 잔치하는 날

농사가 편리해졌지만 정은 메말라 가는 요즘

등록 2006.11.10 08:47수정 2006.11.1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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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토요일에 합천군 가회면에서 타작을 했습니다. 머리에 두건 쓰신 분이 3만원 주고 구입했다는 탈곡기이지요.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기 때문에 소나무 아래서 타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 마지기 타작하는데 장정 8명이 모였습니다. 막걸리 한 사발과 고수레도 빠지지 않았고요.

지난 토요일에 합천군 가회면에서 타작을 했습니다. 머리에 두건 쓰신 분이 3만원 주고 구입했다는 탈곡기이지요.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기 때문에 소나무 아래서 타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 마지기 타작하는데 장정 8명이 모였습니다. 막걸리 한 사발과 고수레도 빠지지 않았고요. ⓒ 배만호


가을걷이가 끝나갑니다. 농부들은 논일이 끝나면 한숨을 돌립니다. 일년농사, 그 가운데서도 논농사가 제일 중요합니다. 일년을 먹고 살아야 할 쌀과 보리가 나오는 농사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논농사는 수십 마지기를 지어도 밭농사는 많이 하지를 않습니다. 밭에서 나는 수입을 무시하지는 못해도 논에 견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락 타작이 끝나면 곧바로 보리를 심었는데 요즘은 보리 수매가 되지 않으니 겨우내 땅을 놀리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귀농했다는 일부 농민들은 땅도 쉬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락과 보리는 서로 퇴비가 되어주며 공생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빈땅으로 두는 것보다 뭔가를 심어서 퇴비를 만드는 것이 더 좋지요.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보리가 한참 익어갈 무렵에 베어 몽땅 퇴비로 쓴 적이 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전통적으로 해 오는 농사 방법을 무시하고 새로운 농사방법을 제일 먼저 도입하곤 하였거든요. 저 때문에 부모님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많은 화제 거리가 되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으셨나 봅니다. 익기 시작한 보리를 베어 논에 그대로 깔아 퇴비로 하니 그 해 농사는 비료를 전혀 뿌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니 비료를 뿌린 논보다 더 좋았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여물지 않은 곡식을 벤다고 나무랐지만 제 고집도 있었지요. 그렇게 지은 나락농사를 거두어들이는 가을이 오면 어머니는 달밤에 논일을 하셨습니다. 둥근 달이 뜨는 밤이면 낮에 벤 나락을 밤새 묶으셨지요. 이른 아침에는 이슬이 내려 나락단을 묶는 일은 못하니 주로 나락을 베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묶은 나락들을 모으는 일은 제 몫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신도 힘들고 피곤하면서도 아버지는 더 힘들다며 제게 일을 많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게를 지는 요령이 없었습니다. 힘은 있어 무겁지는 않은데도 일어서지를 못하고, 짊어지고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였습니다. 평생 지게 지는 일을 하신 분과 젊은 혈기로 지게를 지는 차이겠지요.

타작하는 날이면 벌어지던 막걸리 잔치


a 날아오는 짚단을 야구하듯이 손으로 쳐 냅니다. 아이는 타작이 끝날 때까지 짚단 위에서 구르고, 넘어지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수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제가 어렸을 때 하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날아오는 짚단을 야구하듯이 손으로 쳐 냅니다. 아이는 타작이 끝날 때까지 짚단 위에서 구르고, 넘어지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수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제가 어렸을 때 하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 배만호


일손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골라 타작을 합니다. 동네에서 젊은 축에 드는 어른들이 두세 명씩 조를 짜서 동네 타작을 다 해주는 것이지요. 경운기에 탈곡기를 싣고 동네 논을 돌아다니는 모습. 그리고 그 탈곡기가 다른 논들을 거쳐 우리 논에 와 있을 때의 기쁨. 나락 단을 모아두고 밤마다 비가 올까 하고 조바심을 태우던 어머니의 마음이 놓이는 순간입니다.

타작하는 날이면 나락이 많이 나건 적게 나건 잔치가 이어집니다. 타작꾼들에게 막걸리라도 한 잔 더 부어주어야 나락 한 알이라도 더 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낮부터 하던 타작이 밤까지 이어지면 타작꾼의 저녁밥까지 챙겨 주어야 했습니다. 조용한 농촌 집에 웃음과 함께 사람소리가 넘쳐나는 순간이지요. 처마 밑에는 나락이 지붕에 닿을 듯이 쌓여 있고, 그것도 모자라 마루와 축담 등 비를 피할만한 곳이면 나락 가마니가 놓여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부자가 된 것 같고, 저렇게 일년 내내 바라만 보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어린 저도 그런 모습을 보며 괜히 들떠 있었으니 어머니의 마음은 구름에 탄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락 가마니를 하나씩 꺼내어 늦은 가을이 다 지나도록 마당에서 말립니다.

그런 풍경을 뒤로 하고 요즘에는 콤바인으로 타작을 하고, 건조기에서 말립니다. 심지어는 말리지 않고 논에서 타작한 그대로 미곡처리장으로 보내기도 합니다. 집으로 나락 가마니가 들어올 일조차 없습니다. 아니 가마니에 나락을 담을 필요조차 없습니다.

사람 손이 적게 가서 그럴까요? 요즘은 나락 한 알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지푸라기 한 가닥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타작을 하고 논에 지푸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걷어 갑니다. 농사 짓는 것, 그 방법은 편리해졌을지 모르나 사람들의 정은 메말라 가는 것 같습니다. 농사일은 적게 하지만 비싼 기계 값으로 인하여 농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a 구르기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저도 아이와 함께 아이가 되어 신나게 놀았고요.

구르기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저도 아이와 함께 아이가 되어 신나게 놀았고요.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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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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