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평화를 원한다면 대추리를 지켜야 한다"

[현장] '평택 주민과 문화예술인이 함께하는 거리예술제' 30일째 마지막 공연

등록 2006.11.12 21:17수정 2006.11.1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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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날은 촛불을 나눠주었다.

이날은 촛불을 나눠주었다. ⓒ 김현수

"평화를 원한다면 대추리를 지켜라"

11일 오후 5시 종로 보신각. 평화를 향한 또 하나의 큰 울림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문화공동행동 '들사람들'이 주관하는 '평택 팽성읍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과 1000인의 문화예술인이 함께하는 거리예술제'가 30일째 마지막 공연을 시작했다.

날씨는 매우 쌀쌀했고 바람도 세차게 불었다. 하지만, 대추리 주민 40여 명을 비롯해 문정현 신부, 시인 도종환씨, 가수 정태춘씨 등이 함께해 매서운 추위를 녹였다.

30일간의 거리예술제,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

지난 10월 13일부터 시작된 거리예술제는 비가 내린 이틀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7시면 어김없이 보신각에서 진행됐다. 지금까지 약 350여 명의 예술인이 이 자리에 함께했고 장르도 노래, 뮤지컬, 마임, 퍼포먼스 등 매우 다양했다. 화가들은 대추리 주민 한명 한명의 초상화를 그려 전시하기도 했다.

권해효, 이광기씨의 사회로 진행된 마지막 거리예술제는 크라잉넛, 풍경, 오지총 밴드 등 젊은 음악인들의 무대로 그 문을 열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차가운 바람에도 불구, 이들의 경쾌한 음악은 이내 사람들을 모았고, 쓸쓸했던 종로 네거리는 어느새 뜨거운 열정의 공간으로 변했다,

a 크라잉 넛이 활기찬 무대를 보여주었다

크라잉 넛이 활기찬 무대를 보여주었다 ⓒ 김현수

크라잉넛은 '말 달리자', '밤이 깊었네' 등을 부르며 추위에 몸을 움츠렸던 관객들을 하나로 모았고 이어 등장한 노래패 풍경은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부르며 따뜻한 목소리로 추위를 녹였다. 이들의 노랫소리가 대추리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시인 백무산씨는 '풀씨처럼 우리가 가야 할 땅'이라는 시를 낭송해 관객들을 숙연하게 했다.


거대한 것, 국가니 세계니 그런 힘 아니라, 평화는/ 풀꽃 하나 어린 새 한 마리 품어 몸 적시는 일 /그 가슴에서나 싹트는 연둣빛 혁명/우리 모두 봄비처럼 달려가자/민들레 꽃씨처럼 하늘 가득 달려가 /몸 내리자/ 몸 내리자

"대추리 문제,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 대추리는 지난 8일 2차 철조망 설치가 진행됐다. 평택 대추리, 도두리의 추수작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국방부가 수로를 막아 벼 수확량도 1/3 정도로 감소한 상황이다. 마을 사람들은 보리나 마늘을 추가로 심을 계획이었으나 철조망 때문에 불가능한 상황이다.

거리예술제에 참가한 대추리 주민들은 "대추리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a 이날 참석하신 대추리 방승률 할아버지. 언론이 대추리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셨다.

이날 참석하신 대추리 방승률 할아버지. 언론이 대추리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셨다. ⓒ 김현수

방승률 할아버지는 "우리 아버지 때부터 살던 곳이지요. 다 바다요, 염전이었는데 우리가 논과 밭으로 만든 거예요"라며 "칠십 평생 힘들게 살았는데, 이제는 농사 진 거 거두지도 못하고 다 썩게 생겼으니…. 또 겨울은 어떻게 날지도 모르겠고."라고 한탄했다.

대추리에서 인터넷 방송 '들소리'를 운영하는 나비씨는 "지금 대추리는 5월4일 행정대집행 때 보다 좋지 못한 상황"이라며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대리 주민 송태경(37)씨는 지난 8일 정부의 2차 철조망 설치 작업을 언급하며 "5월 행정대집행 때는 굴착기에라도 매달려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근처에 접근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추리에 방문하는 사람들도 줄었고, 방송에서도 이젠 오지 않는다"며 "대추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많은 분이 힘을 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치다

a 마지막 보신각 앞에서 벌어진 무대. 앞에 김지태 이장의 초상화가 보인다.

마지막 보신각 앞에서 벌어진 무대. 앞에 김지태 이장의 초상화가 보인다. ⓒ 김현수

이날 행사에는 대추리 주민과 함께하는 퍼포먼스도 준비됐다. 보신각 앞에 설치된 무대에서 공연이 진행되던 중 무대의 뒷배경이 철거된 것. 무대 배경이 사라지자 보신각이 그대로 드러났고, 노래를 부르던 정태춘, 박은옥씨는 안전 난간을 넘어 무대 뒤 보신각 계단으로 올라가 공연을 계속했다. 준비된 퍼포먼스였다.

노래가 끝나자 보신각 종소리를 재현한 음향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보신각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했다. 사회자 권해효씨와 최광기씨는 '대추리를 빼앗으려는 세력에 맞서자'는 내용의 선언문을 번갈아 낭독했다. 마지막으로 대추리 주민과 관객들은 하나가 되어 한목소리로 외쳤다.

"할아버지 할머니 힘내세요"
대추리 주민들께 드리는 말말말

"저희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많은 예술인들은 자기문제처럼 여기고 있으니 앞으로도 함께 할 것입니다. 힘 잃지 마시고 이 땅을 지켜주세요." - 신동욱 들사람들 기획연출 단장

"저도 어린시절 집이 철거된 경험이 있어서 이번 일은 정말 남의 문제 같지 않습니다. 예술이 얼만큼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 판화 예술가 류연복

"그동안 물품판매, 행사준비를 도왔어요. 대추리문제는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저희의 마음이 작은 힘이나마 됐으면 좋겠어요." - 고등학생 자원봉사자 김진주, 홍석영 양

"겨울나무처럼 이 땅에 우뚝서는 대추리 주민이 됐으면 좋겠어요." -노래패 <풍경>
"평화를 원한다면 대추리를 지켜라."
"정녕 평화를 원한다면 대추리를 지켜라."


수백 명의 예술가와 대추리 주민들,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한 30일간의 공연은 이날로 마무리됐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무사히 공연을 마친 사람들은 그동안의 일들이 생각나는 듯 시원섭섭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행사의 총 감독인 신동욱 '들사람들' 기획연출단장은 "처음에는 썰렁하게 시작했지만 갈수록 많은 사람이 왔고 관심이나 호응도 높아졌다"며 "대추리가 잊히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는데 많은 예술인이 동참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추리 문제는 오늘로 끝나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주민과 연대해서 계속할 것"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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