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청' 이제 뮤지컬과 붙어라

국립창극단 '청' 논란 불구하고 국가브랜드 가능성 보여

등록 2006.11.13 16:22수정 2006.11.1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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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립창극단 '청' 1막 끝 장면. 무용수가 해금독주곡에 맞춰 심청의 죽음을 묘사하는 장면. '청'의 새로운 기법은 관객들의 환호를 얻었다

국립창극단 '청' 1막 끝 장면. 무용수가 해금독주곡에 맞춰 심청의 죽음을 묘사하는 장면. '청'의 새로운 기법은 관객들의 환호를 얻었다 ⓒ 김기


국립창극단(예술감독 유영대)이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올린 국가브랜드 공연사업 ‘청’이 연일 매진에 가까운 관객을 끌어 모았다. 특히 토,일요일 공연에는 3층 몇 좌석이 빈 반면, 1층 뒷자리에는 보조좌석을 놓았다. 이는 98년 완판 창극 이후 드문 현상이라 국립극장 관계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국악 등 전통에는 다소 시큰둥하던 언론들도 이번 국립창극단 ‘청’에는 의외의 호의를 보였던 것이 관객몰이에 적잖게 공헌했겠으나, 무엇보다 주효했던 것은 지난 4월의 ‘15세나 16세 처녀’부터 사람들 입을 통해 퍼진 입소문이었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입소문의 주된 내용은 '청'이 현대적이라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창극이 가장 늦게 소위 ‘현대성’을 받아드린 지도 모른다. 이미 기악과 민요 부분에서는 퓨전열풍이 밀어닥쳤고, 초기의 저항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다. 현재도 퓨전은 거세게 진행되고 있는 까닭에 지금의 평가는 아마 후대에나 가능할 것이다.

판소리도 예외는 아니다. 기악에 불어 닥친 퓨전과는 조금 달리 판소리에는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새 바람이 불었다. 새로운 도전이나 창작이라는 갈증은 젊은이들에게는 뿌리칠 수 없는 욕망인 것이다.

a 청이 아비를 위해 남경선인들에게 팔려가는 장면. 무대기법이 바꿔어도 슬픈 장면에서는 눈물을 짜냈다.

청이 아비를 위해 남경선인들에게 팔려가는 장면. 무대기법이 바꿔어도 슬픈 장면에서는 눈물을 짜냈다. ⓒ 김기


창극은 비록 판소리에 바탕을 두고 있어도 또 판소리와는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100년이 넘은 창극이지만 아직까지도 창극이론은 정립되지 않았다. 또한 창극이란 형식 자체가 판소리에서 온듯해도 일제에 의해 강요된 역사 속에 만들어졌다. 게다가 100년 동안 창극을 만들어온 사람들은 창극에 책임을 질 수 없는 외부인들이었다.

출생부터 성장(아니 이미 100년을 넘긴 마당에 성장이란 말도 어색하다)까지 창극은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고 커버렸다. 그래서 어쩌면 새로운 것을 받아드리기 두려울지 모를 일이다. 한편 창극의 더딘 변화에는 당위도 존재하고 있다.

창극의 모태가 되는 판소리는 국내적으로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지 오래고, 3년 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어 인류가 지켜야 할 것이 된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현재 중요한 것은 대중과 언론이 올해 국립창극단이 내세운 ‘우리시대의 창극’이 보낸 눈짓에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언론과 대중 모두는 창극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창극을 포함해서 국악 전체가 오래 전부터 대중화란 숙제와 고민을 안고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옳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시대가 합의한 가치임에는 분명하기에 그것에 저항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a 용궁에서 만난 어머니 곽씨부인의 도움으로 환생한 심청은 홀로 외로이 지내던 왕을 만나 왕비가 된다

용궁에서 만난 어머니 곽씨부인의 도움으로 환생한 심청은 홀로 외로이 지내던 왕을 만나 왕비가 된다 ⓒ 김기


‘우리시대의 창극’ 초판은 일단 흥행면에서는 성공이다. 그 성공을 발판으로 내년 1월 말에는 국악에 대해서 수십 년간 철옹성 같던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의 문도 열어젖히게 된다. 그리고 12월에는 인천에서 공연이 확정되었고 그리고 성남아트센터 등의 초청 논의가 시작되었다. 창극사에 유래가 없던 일임에 분명하다. 이쯤에서 우리는 ‘우리시대의 창극’의 위세에 의심의 시선을 거둘 필요가 있다.

국립창극단 ‘청’의 성공요인 혹은 지난 창극과의 차별화된 요소들을 거들떠보자. ‘신 심청가’ 혹은 ‘현대적 심청’으로 부제 비슷하게 불리는 ‘청’은 딱히 현대적이라고 해야 할 지는 모르겠으나 기존과 다른 요소는 몇 가지 발견되고 있다.

사건과 상황을 곧이곧대로 설명하던 무대 환경이 크게 변했다. 생략과 은유가 동원된 것이다. 무대 뒤쪽이 7.5도 높여져 경사를 이루었고, 무대에 촘촘이 박힌 은경(銀鏡)이 몽환적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 외에 등장하는 셋트는 심봉사의 집과 승상댁 그리고 장승뿐이다.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오페라만큼은 아니어도 관현악 반주에 노래하는 장면이 대폭 늘었으며, 일부 합창에서는 서양발성의 화성이 개입하기도 했다. 그러기 위해 관현악 피트 안에는 더블베이스도 있었고, 신디싸이저도 결합되었다. 관현악 반주는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조금 과할 정도로 극의 전반을 차지했다. 음악적으로 또 한가지 눈 여겨 볼 대목은 소위 주제선율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a 청의 죽음 혹은 청의 테마라 이름붙여도 좋을 해금독주곡을 연주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안수련도 창극 '청'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짙은 인상을 남겼다

청의 죽음 혹은 청의 테마라 이름붙여도 좋을 해금독주곡을 연주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안수련도 창극 '청'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짙은 인상을 남겼다 ⓒ 김기


심청이 물에 빠진 상황을 묘사하는 1막 마지막 부분 무용수의 춤과 함께 연주되는 해금 독주곡(이용탁 작곡, 안수련 연주)는 다음에도 다시 이어져 관객입장에서는 기존의 심청가 선율보다도 오히려 그 연주에 귀를 익히고 돌아간 듯하다. 세상은 의외로 공평해서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놓치는 편이다. ‘청’에서 음악은 풍부해진 반면 극 좁혀서 말하자면 배우들의 연기는 세심하게 보여주진 못했다.

창극배우의 가수적 부분은 나무랄 곳이 별로 없었지만, 배우로서의 진가는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 그것은 연출(김홍승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오페라 연출가)의 의도라고 볼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무대와 조명이 워낙 단순하면서 지배적으로 극 전반을 압도하는 속에서 배우들의 디테일까지 살리는 것은 자칫 산만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부분은 창극 ‘청’이 향후 풀어야 할 기술의 숙제로 남는다.

창극은 (기준은 딱히 없지만 관습적으로) 오페라와도 다르고, 뮤지컬과도 같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두 유사한 장르와의 숙명적인 대결을 피할 수 없는 시기에 도달해 있다. 큰 고민 없이 수입 뮤지컬이나 라이센스에 의존하던 뮤지컬계가 일본 <극단 시키>의 라이온 킹에 아연실색하는 모습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창극도 그들과 똑같이 무대예술이라는 경쟁선상에 서있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a 왕비가 된 후, 아비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궁궐에서 전국 맹인들을 초대하는 잔치를 열게 되어 소식을 들은 심봉사와 뺑덕어미도 서울로 향한다

왕비가 된 후, 아비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궁궐에서 전국 맹인들을 초대하는 잔치를 열게 되어 소식을 들은 심봉사와 뺑덕어미도 서울로 향한다 ⓒ 김기


미꾸라지를 잡으려면 진흙탕 속에 뛰어들어야 하듯이, 뮤지컬을 따라잡고 언젠가는 추월하기 위해서는 뮤지컬의 성공요인을 일단 섭렵할 필요는 충분히 존재한다. 누가 뭐래도 국립창극단의 무대예술을 위한 인프라는 국내 최고다. 먼저 배우들이 그러하며, 국내 누구도 따라가기 어려운 기획 및 스태프들이 포진하고 있다.

해오름극장을 찾은 7천 여명의 관객들 속에는 ‘청’에 대해 불만을 갖거나 반대하는 의견도 분명히 존재했다. 문제는 진정 ‘청’의 방식이 옳고, 가져가야 하는 것이라면 좀더 인내를 갖고 그들을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은 창극이 품어온 몇 가지 어려움을 극복했고, 동시에 새로운 숙제를 잉태했다. 그것을 위해 숨고를 시간을 다른 대형공연들이 기다려주진 않는다. 그렇다면 국립창극단에게 하고 싶은 말은 ‘뮤지컬과 붙어서 이겨라’ 밖에 없다. 동시에 옛 관객이 진보적 무대에 대해 갖는 낯섦에 대한 배려를 통해 창극 고형(固形)의 준수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청’은 국립극장이 올해부터 추진하는 국가브랜드 공연사업의 가능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단지 실마리일 뿐이라는 점에는 창극 주변의 전문가 단위에서의 일치되는 의견들이었다. 향후 3년간 지속된다는 연구보완을 통해서 더 완벽을 기해야 할 것이며,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3년 후 일단의 일정을 마쳤을 때에는 <라이온 킹>이 아니라 어떤 뮤지컬하고도 당당히 겨룰 수 있는 모습을 갖출 것을 기대한다.

a 심청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고대소설적 구조는 대단원에 해피엔딩과 더불어 떠들썩한 잔치는 필수. 그러나 '청'의 마지막은 그것을 피해 심봉사와 청 둘만의 해후와 개안으로 클로즈업을 시도했다.

심청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고대소설적 구조는 대단원에 해피엔딩과 더불어 떠들썩한 잔치는 필수. 그러나 '청'의 마지막은 그것을 피해 심봉사와 청 둘만의 해후와 개안으로 클로즈업을 시도했다.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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