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70회

등록 2006.11.13 08:18수정 2006.11.13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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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검날이 수십 개의 검화를 피워내고 있는 가운데서도 설중행의 신형은 무모할 정도로 두 사내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두 사내의 공격도 더욱 사나워졌다. 사실 팔뚝에 소도를 감추고 있다고는 하나 맨몸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는 공격하는 무기가 아니라 수비하는 병기에 불과했다.

그런 설중행을 둘이 이십 여초나 공격했음에도 옷깃조차 건들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더구나 이미 경험한 것으로 보면 상대의 특기는 각법(脚法)이었다. 소림의 무상각으로 보이는 그것이 펼쳐지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들의 검이 막힌다 싶은 순간 설중행의 신형이 지면을 박차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상대의 공격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자신들에게는 일종의 기회였다. 두 사내는 승부를 보려는 듯 오히려 물러나지 않고 동시에 검을 휘두르며 설중행을 향해 짓쳐갔다.

허나 설중행이 무상각을 펼칠 것이라 예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오히려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두 사내의 검을 쳐내는가 싶더니 팔을 양쪽으로 쭉 뻗자 그의 소매 속에서 희끗한 두 개의 물체가 튀어나오며 자신들의 목으로 쏘아오는 것이 아닌가?

스스스---쇄액----!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두 사내는 경악성과 함께 급히 뒤로 물러났다. 목덜미에 살짝 통증이 느껴졌다. 피한다고 했지만 완전하지 않아 스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황급히 몸을 비틀며 신형을 몇 바퀴 옆으로 돌렸다. 설중행의 소매에서 튀어나온 한 자 길이의 소도는 한순간 당황한 사내들의 요혈을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따라붙으며 노리고 있었다.

가까스로 쳐냈다고 느끼는 순간 소도는 잠시 멈칫하다가는 다시 방향을 틀어 파고들었다. 그저 쏘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베는가 싶으면 호선을 그려 요혈을 파고들고 내리친다고 느끼는 순간 마주쳐가는 검신을 타고 손목을 베어왔다. 예상치 못한 상대의 기형 병기에 당황하였다.


기형의 병기를 상대하려면 그것의 움직임을 알아야 했다. 기형병기가 가진 공격의 범위와 속도, 그리고 운용의 묘를 파악해야 했다. 그들은 당황하면서도 상대의 병기가 가진 약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노련한 경험을 가진 사내들은 상대의 병기가 가진 약점을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약점은 소도에 연결된 은사였다. 소도의 운용과 섬세한 움직임을 위하여 가는 은사를 사용하고 있었다. 은사를 끊으면 소도는 이미 무용지물과 다름없었다. 위험은 감수해야 했다. 소도에 부상을 입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은사를 베어내면 상대는 맨손이 된다.


"………!"

좌측에 있던 사내는 상대의 소도가 자신의 왼쪽 어깨를 향해 쏘아오자 오히려 피하지 않고 어깨를 갖다대며 검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이미 미세한 행동만으로도 동료의 의도를 알 수 있는 또 한 사내 역시 자신의 가슴을 향해 쏘아오는 소도를 쳐내면서 설중행에게 달려들었다.

소도가 자신의 어깨에 박히는 순간 그것에 연결된 은사를 왼손으로 잡거나 검날로 끊어버리려는 의도였고, 그 순간 동료의 검은 상대의 허리를 베어 갈 터였다. 허나 상황은 그들 두 사람의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설중행의 소도 하나는 사내의 어깨에 박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호선을 그리며 위로 쳐올리는 검날을 몇 바퀴 돌면서 은사로 감아버림과 동시에 위로 치켜 올리자 올라가는 속도가 배가되어 자신의 머리 위로 솟구쳤고, 몸 중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설중행의 발이 정확하게 그의 턱을 가격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동시에 달려드는 또 한 사내가 뻗은 검은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살짝 비틀자 검은 그의 등 아래를 찌르게 되었고, 설중행의 팔꿈치가 그의 오른쪽 어깨를 강타하자 비명은 동시에 터져 나왔다.

"헉…!"
"욱…!"

두 사내의 몸이 옆으로 황급히 굴렀다. 당했지만 더욱 치명적인 공격을 피하기 위한 임기응변이었다. 턱을 가격당한 사내의 입에서 핏물이 주륵 흘렀다. 아마 이빨 몇 개는 족히 부러져 나갔거나 흔들릴 터였다. 또 한 인물 역시 끝까지 검을 놓치지는 않았지만 축 늘어져 있어 어깨뼈가 탈골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했다.

그들은 긴장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는데 설중행 역시 그들을 더는 공격하지 않고 잠시 주춤했다. 어제 백도 자인과의 드잡이질에서 느꼈던 가슴의 통증과 뒷머리 부분에서 느껴지던 화끈함이 또다시 밀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무언가 정상적인 기혈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 만약 공력을 더이상 끌어올린다면 혈맥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분명 기혈의 흐름에 문제가 있었다. 어제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었지만 또다시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 확실했다.

어떠한 원인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내색을 하지 않고 느긋한 모습으로 두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중행의 이러한 태도는 그들의 드잡이질을 바라보고 있는 주위의 인물들에게 설중행이 상대들을 오히려 봐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게 했다. 언제든지 두 사내 정도는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비치었다.

"으드득…, 어린놈에게 망신을 당했군."

오른쪽 어깨를 가격당한 인물이 이를 갈며 검을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굴복은 하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턱을 가격당한 인물 역시 입에 고인 핏물을 뱉어내며 검을 고쳐 잡았다. 이제는 생사를 도외시한 공격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 두 사람에게는 아직 펼치지 않은 비장의 수법이 남아있었다.

그들이 방위를 점하고 마지막 시선을 교환하는 순간 나직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쌍황(雙黃) 두 분께서는 이제 그만두세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상민민이었다. 부드럽기만 한 그녀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담겨있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더구나 그 목소리를 들은 두 사내의 태도는 확실히 이상했다. 그의 전신에서 폭발할 것 같던 지독한 살기가 갑자기 누그러지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닌가?

"아가씨. 하오면…?"

"더 이상 망신당하지 않고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좋겠군요."

그러더니 시선을 설중행 쪽으로 돌려 살짝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소협께서도 괜찮으시겠지요?"

"공격한 것은 저들이지 내가 아니오."

"승낙의 의미로 알겠어요. 헌데 소협이 설중행이란 분인가요?"

상민민의 질문은 뜻밖이었다.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까? 사실 운중보 안에서 지금 설중행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더구나 설중행과는 일면식이나, 전혀 관계가 없던 상민민의 입에서 설중행의 이름이 나온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허나 설중행은 의구심을 접으며 오히려 빙긋이 웃었다.

"그 말은 나중에라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으로 들리는구려."

"옳은 말씀이에요. 본가(本家)에는 한 가지 반드시 지켜야 할 철칙이 있지요. 받은 것은 반드시 열배로 돌려준다는 거예요."

상민민 역시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민망할 정도로 설중행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특별한 것은 아니구려. 무림인이라면 지켜야 할 철칙이니 말이오. 나 또한 한 가지 철칙이 있소. 들어보시겠소?"

"물론이에요. 아주 궁금하군요."

"나는 나를 건들지 않는 한 상대가 어찌하든 상관하지 않소. 하지만 나를 건들면 그 대가는 반드시 돌려주오."

"본가와 비슷한 철칙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무릇 사내라면 반드시 그래야겠지요."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아주 매혹적인 눈웃음이었는데 마치 유혹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잠시 설중행의 눈빛과 상민민의 눈빛이 허공에서 엉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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