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 벼농사를 지었습니다

벼농사, 모두 한번 지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등록 2006.11.15 16:13수정 2006.11.1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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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알곡이 튼실하게 차면 고개를 숙이는 모습, 가슴뭉클하게 코끝이 찡해옵니다.

알곡이 튼실하게 차면 고개를 숙이는 모습, 가슴뭉클하게 코끝이 찡해옵니다. ⓒ 이우성

올해 처음 벼농사를 지었습니다. 꼭 벼농사는 짓고 싶었는데 그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쌀이 많이 남아돈다고, 특히 친환경 쌀도 많이 남아 걱정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도 벼농사에 도전한 것은 저와 제 가족이 가장 많이 먹는 식량인 만큼 제 손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벼농사는 농사 중에 그리 어렵지 않다고 들었는데 곡절이 많았습니다. 제가 임대해서 얻은 논은 1000평이 조금 넘습니다. 5마지기입니다. 목초액과 현미 식초로 볍씨소독, 침종, 파종까지는 순조롭게 되었습니다. 농사선배가 옆에 있어서 그분이 하라는 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강가 흙을 퍼다가 상토를 만들어 썼는데, 상토에 문제가 있었는지 발육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이웃 농협 조합장을 지낸 분이 자신이 쓰고 남은 모를 얻어 키웠습니다. 동진1호라는 품종이었습니다.

분얼이 많이 안 되는 품종이라는 걸 모르고 모심기할 때 1∼2포기 정도만 심었습니다. 그런데도 분얼은 잘 되는 듯했습니다.

왕우렁이를 넣고 논물 대기만 신경 썼습니다. 그런데 논 평탄작업이 잘 안되어서 그런지 풀이 많이 났습니다. 풀은 금세 벼 크기를 따라잡았습니다. 도롯가에 논이 있어서 환경농업을 함께 하시는 분들이 '저래서는 쌀 먹기 힘들다'고 타박하십니다.

할 수 없이 아내와 둘이서 꼬박 여름 뙤약볕 아래 일주일 동안 풀을 잡았습니다. 나는 논바닥에 있는 풀까지 잡느라고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내는 벼 위로 올라온 풀만 잡자고 합니다. 그래도 한이 없습니다.


내가 잘하네, 니가 잘하네 하면서 논에서 싸움질하면서 피와 풀을 잡았습니다. 아내 말이 걸작입니다. 풀이 하도 커서 풀을 어깨에 턱 걸치면서 풀 잡는 사람은 우리뿐이라고요. 풀을 다 잡고, 우리 둘 다 몸살이 나서 또 일주일 동안 꼼짝도 못했습니다.

논 가에 서면 항상 기분이 좋았습니다. 뭔가 충만해지는 게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래서 논에 자주 가게 되었습니다. 논둑을 따라 한 바퀴 돌고 나면 주먹을 쥐고 삶의 의지를 다지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알곡이 빼곡히 잘 여물었습니다. 고개 숙인 모습을 보기만 해도 신이 났습니다.

벼를 베는 날, 이곳 근처 귀농자들과 함께 수확을 합니다. 콤바인을 모는 분이 매상 가마로 너무 안 나온다고 걱정하십니다. 뒤쪽에 풀이 많은 쪽은 알곡이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벼 가마를 집안에 들여놓고 문을 열어보기를 수시로 합니다. 볼 때마다 뿌듯합니다. 양곡건조기에서 알맞게 건조하니 가마 수가 더 줄어듭니다.

말린 상태로 40kg 가마로 40개 정도 나왔습니다. 80kg 쌀로 하면 13가마 정도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임대료 주고 퇴비 값, 콤바인, 건조비, 자잿값을 주고 남는 게 별로 없지만 우리 가족 먹을 것은 남길 수 있으니 이게 어딥니까.

7분도미로 방아를 찧어 10kg 단위로 다시 포장을 했습니다. 보통 백미는 13분도인데 영양가 있는 부분이 다 날아간다고 합니다. 백미보다 먹기는 좀 거북해도 건강한 알곡을 많이 먹는다고 보면 더 좋지 않을까요.

아는 분들과 그동안 신세진 분들 조금씩이라도 나눠 먹으려고 합니다. 여러 사람이 조금씩 나눠 먹는 것이 처음 벼농사 지은 의미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우리 생각입니다.

이제 갈무리가 어느 정도 되면 추수감사제를 뒤늦게나마 올리려고 합니다. 귀농자들이 모여서 처음 쌀을 앞에 두고 먹을 양식을 제 손으로 했다는 의미를 되새겨보려고 합니다.

벼농사, 모두 한번 지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논에 서면 그런 마음이 될까요? 내 손으로 내 쌀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이제 당신의 밥상에도 전해 드립니다.

우리 정성으로 만든 귀한 쌀, 맛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우여곡절끝에 만든 쌀을 앞에 두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쌀맛 이상의 이 묘한 자부심의 교감이 제 쌀을 만나는 사람들과 이루어질 것을 고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우여곡절끝에 만든 쌀을 앞에 두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쌀맛 이상의 이 묘한 자부심의 교감이 제 쌀을 만나는 사람들과 이루어질 것을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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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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