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갈무리하는 섬 노인

[바다에서 부치는 편지20] 여수 가막만 작은 섬의 늦가을

등록 2006.11.16 15:01수정 2006.11.1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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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전남 대경도를 지나 돌산대교가 보이기 시작한다. 대경도의 오목한 허리자락에 걸린 해는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지 새빨갛다. 붉은 노을 사이로 갈매기들이 한바탕 놀아 재낀다.

늦가을 바다는 궁상스럽고 처량하다. 그래서일까. 저녁노을에 갈매기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서글퍼 보인다. 아마도 산비탈 밭에서 고구마 이삭을 줍고 있던 할머니가 생각나서 인지모르겠다. 바다가 몽돌밭 해변에서 멸치를 말리는 팔순의 할아버지를 뵙고 와서 인지모르겠다.


가막만이 내려다보이는 경사진 산밭, 경사가 족히 45도는 될 성싶다. 이런 밭은 소쟁기가 아니면 밭을 갈 수 없다. 어떤 곳은 밭이라기보다는 자갈밭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듯싶다. 그곳에서도 땅콩 수확을 했는지 군데군데 땅콩이삭들이 떨어져 있고 수확을 덜 끝 낸 곳도 있다.

개도에서 만난 할머니는 얼마 전 논에서 고구마를 80가마 캤다. 직접 캘 수 없어 쟁기질 하는 남자와 고구마를 주어 담을 아줌마 품을 사야했다. 고구마 이랑을 갈아엎는 쟁기질로 일당 5만원, 고구마를 주워 담는 일로 2만 5천원을 지불했다.

"고구마 얼마나 캐셨어요?"
"'가마니로 83개 냈었고, 매상을 했는데."

"할머니 혼자 하셨어요?"
"나는 못해. 갈라먹기로, 일당을 줘 부러. 밭 갈아주는 남자는 5만원, 여자는 간별 해 주는데 2만 5천원. 밭 무큰다 무큰다 해도 묵크기가 힘들어서 곡식을 허쳐놓지."

"수확하고 나면 자식들에게도 부쳐주지요?"
"하문이다. 감자도 부치주고, 깨도 꼬치도 부치주고."


"자식은 어떻게 두셨어요?"
"아들이 육남매, 옛날시상에는 낳기 싫도록 안 낳았오. 옛날 시상에는 열도 넘고, 난 얼마 안낳았다고 그랬어잉. 얼마 안났어."

바다일, 하늘이 점지해 줘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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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그렇게 고구마를 농협에 생것으로 팔고, 다시 산비탈 밭으로 올라와 이랑을 헤치며 못다 주운 고구마와 상품성이 없어 버려둔 고구마를 찾고 있다. 할머니 나이는 팔순에 한 살 모자란다.

맞은 편 무덤 주변에 밭도 있지만 묵히고 있다. 보리수매를 할 때만 해도 고구마를 캐고 나면 보리를 심고, 보리를 거두고 다시 콩과 깨를 심었다. 산비탈 밭이지만 삼모작을 옹골차게 했다. 자식들이나 육지 것들은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하겠지만 산비탈 밭은 곧 할머니의 모습이기도 했다.

비탈진 밭을 속살로 내버려 두기 쉽지 않아 '곡식을 허쳐놓는다'고 하신다. 어디 그냥 씨앗만 뿌려두겠는가. 여름 내내 구부러진 허리를 이끌고 산비탈을 오가며 풀도 뽑고 물도 주고 정도 주었을 것이다. 자식들을 키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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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개도 모전마을에는 작고 예쁜 몽돌해변이 있다. 물결따라 작은 몽돌들이 구르고, 그 위로는 크고 작은 멸막들이 대여섯 채 있다. 물때가 맞지 않아 오늘은 그물을 걷지 않는 모양이다.

김씨 할아버지가 어제 잡은 멸치를 햇볕에 말리고 있다. 금년에 딱 팔순이다. 걷어 올린 방한모의 귀 덮개와 목 사이로 드러난 머리에 세월이 묻어 있다. 봄에 시작한 멸치잡이는 이제 몇 물 남지 않았다.

금년에는 유독 단속이 많았다. 산란기 철이라며 멸치가 많이 잡히는 여름철에 멸치를 잡지 못했다. 게다가 보통 묵인하며 넘어가던 그물 틀 수에 대한 간섭도 심해졌다. 이래저래 금년에는 영 신통치 않다. 그래도 겨울을 날라면 몇 물 남은 기간에 멸치를 좀 걷어 올려야 한다.

바다일이라는 것이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모두 하늘이 점지해 주어야하고 운대가 맞아야 한다. 인간 욕심껏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바다도 육지 못지않게 절단 났을 것이다.

할아버지 손길이 바빠진다. 작은 그물에 실을 꿰더니 찢어진 그물을 줍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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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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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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