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107회

영원한 생존

등록 2006.11.16 16:48수정 2006.11.1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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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리림은 구데아의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그렇다면 날 이렇게 방치해 두어서 어쩌겠다는 건가?


-이미 늦었습니다. 저희도 이제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아누와 짐리림님이 여기에 들어섰을 때 하쉬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지요. 그땐 불경스럽게도 온전히 믿지 않았지만 저희들 몸을 검진해 보니 이미 모두 감염되어 있더군요. 치료제를 만들기도 전에 다 죽을 겁니다. 하지만 짐리림님만큼은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세균을 가지고 있을 뿐 그 독소가 몸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으니까요.

짐리림은 치명적인 생물학적 독소를 내뿜고 있다는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기기의 도움을 받은 희미한 시야에서 곁으로 보기에 짐리림의 몸은 아무런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생각이 짧았다면 끝까지 우리를 해치려 했던 아누 선장과 함께 짐리림님도 죽였을 것이지만 하쉬께서는 최후의 희망을 버릴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가이다에 뿌린 독이 정점에 오른 순간 우리에게는 다시 한번 기회가 올 것입니다.

-그 독이라는 게 고작 사이도의 번식을 돕는 건가? 생태계라는 건 균형을 이루게 되어있어. 일방적인 한 종의 증가를 앉아서 바랄 수는 없지.

-짐리림님, 언젠가 사이도는 문명이라는 체계를 갖출 겁니다. 과거 하쉬의 역사를 돌이켜 보십시오. 한때 하쉬도 생태계 파괴라는 숙제에 직면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어. 우리는 별 문제없이 스스로 서서히 깨쳐 나가지 않았나?

-정신문명이 발전하기 전에 물질문명이 급속히 발전한다면 어떨까요? 생태계 파괴의 피해가 와 닿아야 인지할 정도라면?


짐리림은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서서히 고개를 저었다.

-모두가 죽어 버린 후에는 나 혼자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사이도들을 영도해 나보고 문명을 개척해 나가라는 소리는 말게 내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가이다가 홀로 남은 내 존재를 두고 보지는 않을 거야.

구데아는 그 말에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는 쓸쓸함이 배어있었다.

-당분간 가이다의 생명체들이 이 탐사선을 노리고 들이치지는 않을 겁니다. 저들도 입은 피해가 크니까요. 그 틈과 저희의 남은 생을 바쳐 이 탐사선을 수리해 가이다의 궤도로 올리겠습니다.

짐리림도 쓸쓸히 웃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할 도리가 있다는 것인가?

구데아는 순간 짐리림의 손을 꼭 움켜잡았다.

-짐리림님!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어려운 짐을 모두 다 떠맡기는 점 죄송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따라온 하쉬께서는 하쉬의 생명이 다시 번성하지 않는 한 자신은 부활하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짐리림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이다에 하쉬의 생명을 번성시켜야 합니다. 이제 광활한 우주를 떠돌아 다른 곳을 찾아 나설 힘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나 혼자 뭘 어떻게 하라는 건가? 하쉬의 모든 운명을 짊어진다는 것은 나로서는 힘든 일이야.

-짐리림님, 저희의 육신은 죽고 비록 우리의 고향별 하쉬마저도 사라졌지만 그간 우리가 깨우치고 터득한 지식만큼은 이 탐사선의 기기에 축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설프게나마 전투 로봇과 함께 짐리림님을 도울 로봇도 만들어 두었습니다. 전투로봇은 더 이상 쓸 일도 없겠지만 짐리림님을 도울 로봇들은 미미하게나마 쓸모가 있을 겁니다.

짐리림은 마음 속 깊이 절망을 느꼈다. 구데아가 좋은 말로 위로하려 해도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사실은 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짐리림님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기필코 하쉬의 생명을 부활시켜 주십시오. 저희의 육신이 죽어도 육신에 남아 있는 생명의 흔적을 보존하고 힘을 불어 넣어 주십시오, 그것이 짐리림님이 할 일입니다.

결국 짐리림은 모든 것을 승낙하고 힘없이 답했다.

-내가 마다할 일이 아니군. 내 힘이 다 하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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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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