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붙이는 글 | 바람이 차다. 불어 들어 온 바람이 계곡을 쉬이 빠져 나가지 못하고 돌개바람이 돼 한번 볼을 때리고 한참 뒤 다시 돌아와 등을 때린다. 큰 대야에 받아 놓은 물이 깡깡 언 것을 보니 도시와 달리 이곳의 밤과 새벽은 영하의 날씨에 시달렸나 보다.
12일 오전 9시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지보마을 남덕유산 서봉 해발 500여m에 위치한 전희식씨(49)의 농가. 전씨와 지인 3명이 60여 년 전 지어져 이제는 버려진 7평 남짓한 농가를 고치고 있다.
“한국전쟁 전인 1947년께 지어졌다고 촌로가 말해주더군요. 20여 년 전 부터 빈집으로 남아 있지만 아직 쓸만 합니다. 20년가는 시멘트 집과 달리 흙집은 200년이 가도 멀쩡하지요.”
현재까지 4주동안 작업을 했고 앞으로 앞으로 보름 남짓 남은 공사가 마무리되면 서울에 있는 형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85세의 어머니를 이곳으로 모실 계획이란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12년 전 귀농해 완주군 소양면에서 ‘농사꾼’의 길을 걷고 있는 전씨가 빈 농가를 새 보금자리로 만들고 있는 것은 비단 어머니 때문만은 아니다. 전씨는 이 집이 어머니와 자신의 전유물이 아닌 함께 일한 모든 사람의 쉼터라고 강조한다. 황토와 흙, 통나무를 섞은 집을 짓어 도시인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집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공사에 사용되는 싱크대, 목재, 문짝 등은 모두 도시에서 버려진 것들을 헐값에 사거나 주어 온 것들이다. 재료를 구하기 위해 고물상과 주택가를 숱하게 배회한 전리품이랄까. 재활용과 자연친화적 재료를 사용한 집짓기. 전씨는 이를 생태적 집짓기라고 부르고 자원봉사자들 역시 이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오전 10시가 좀 넘었을까. 추위도 피할 겸해 새참시간이다. 새참 준비는 막내인 심원보씨(18)가 맡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직업학교에 다니는 심씨도 완주군 고산면의 농촌에 자신의 집을 짓고 있단다. 숯을 이용해 아궁이에 불을 붙인다. 솥에는 사흘째 푹 삶고 있는 닭백숙이 곰국처럼 걸쭉하다. 눈물, 콧물 흘리며 불 지피기 위한 20여분의 안간힘 끝에 ‘톡, 톡’ 장작 타는 소리가 나며 아궁이에 제대로 불이 붙었다. 덩달아 구들장도 닳아 오른다.
신 김치, 닭 곰국(?)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 추위는 가시는데 취기가 오른다.
“바람 불어도 괜찮아요, 쌩쌩 불어도 괜찮아요.”
콧노래를 부르는 전씨의 눈에 방 2개, 부엌 1개, 토방과 마루가 잘 짜인 낙원이 보이는 듯하다.
정오가 되자 쌀과 부식거리를 든 지원인력이 도착했다. 강화도의 중학과정 대안학교인 마리학교에서 온 1,2학년생 4명이다. 학교에서 말썽을 부려 생태집짓기 체험과 냉수마찰 물 수련으로 마음수양 길에 올랐다고 황선진 교장은 설명한다.
현재까지 이 집을 고치는데 손을 빌려주며 참여한 주부와 학생, 지인들이 20여명. 연인원 80여명에 달하는 대공사다. 전씨는 “도시의 쓰레기가 이 집의 소중한 재료가 된다”며 “누구든 이곳에서 생태적 집짓기를 체험하고 별장으로 삼길 바란다”고 말했다.(전북일보 1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