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오니 바깥의 한국인이 보여요"

일본인 이나바 마이가 보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등록 2006.11.19 18:47수정 2006.11.19 19:35
0
원고료로 응원
a 국민대학교 미술대학원 기획전 '우리, 또 다른 우리' 공동기획자 이나바 마이

국민대학교 미술대학원 기획전 '우리, 또 다른 우리' 공동기획자 이나바 마이 ⓒ 김기

지난 8월 일본의 동경, 야스쿠니에 반대하는 한국 대만 일본 3국 공동행동 참가자들이 시내를 누비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한 일본여성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7월 서울에서 열린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주최 국제심포지엄에도 그 여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대추리에도 어김없이 찾아가 현장미술가들과 만나고 있다. 그녀의 현재 국민대학교 미술대학원 이론전공자로 한국 민중미술을 공부하고 있다.


한 해를 그럭저럭 정리해가는 11월 중순 그 일본여성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국에 와서 공부한 미술이론을 적용한 전시와 세미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또 다른 우리'라는 주제가 먼저 귀에 솔깃했다. 이나바 마이와 함께 대학원 3,4학기 과정의 유가은, 신진, 김은영 등이 함께 기획한 이 전시는 유명화랑의 떠들썩한 기획보다 가슴에 와 닿는 정도가 훨씬 컸다.

정릉 자락에 위치한 국민대학교 예술관을 찾았다.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오랫동안 이주노동자들과 활동한 이주노동자방송국 박경주 대표가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a 재일교포 3세 작가 하전남의 설치 작품. 작가는 뉴욕에 거주하던 시절 경험한 수많은 차별의 해소를 끊임없는 혼혈에서 찾는 듯 했다. 세단기를 통해 사람들 얼굴을 분쇄하고 그 아래로는 새로운 얼굴들 즉, 차별없는 단지 사람의 얼굴이 탄생함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 안 오른쪽은 작가 하전남

재일교포 3세 작가 하전남의 설치 작품. 작가는 뉴욕에 거주하던 시절 경험한 수많은 차별의 해소를 끊임없는 혼혈에서 찾는 듯 했다. 세단기를 통해 사람들 얼굴을 분쇄하고 그 아래로는 새로운 얼굴들 즉, 차별없는 단지 사람의 얼굴이 탄생함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 안 오른쪽은 작가 하전남 ⓒ 김기

'이나마 마이'는 두 번째 발제를 맡았다. 그녀가 다룬 주제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아트의 가능성'으로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주제였다.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된 유민, 이민, 입양 등 다양한 경로의 재외 한국인의 수가 700만에 달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한국으로서는 상식적이지 못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재외동포재단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아직 전세계에 산재한 재외한국인들의 모든 문제를 포괄하지는 못하는 실정이고, 주류지향의 한국사회는 역사의 이면에 가려진 재외한국인의 문제들에 대해 외면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인이 그것도 일본인이 한국인 디아스포라(이산)문제에 관심을 갖고, 논문을 발표하는 모습은 한국인으로서 부끄럼을 갖게 만들었다.


워낙 한국인 이산문제는 연구된 바 적기 때문에 논문을 지탱하는 소재는 이나바 마이가 우연히 한국어학당 시절 알게 된 벨기에 입양아 출신 나탈리 르므완(한국명 조미희)의 사례에 초점을 맞추고, 재일학자 서경식 교수의 저서에 기댄 분석이다.

이나바 마이가 추적한 코리안 디아스포라에는 '차별과 소외'가 가득했다. 백인인 양부모로부터 받는 문화적 차별과 오리엔탈리즘의 강요를 겪어야만 했던 입양아들의 공통된 경험 속에서 만들어지는 'inter-national, inter-racial, inter-cultural' 세 가지 중층적 규정성을 발견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태어난 모국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디아스포라들은 공통적으로 '모국에도, 자신이 자란 국가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인해 많은 괴로움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나탈리 르므완이 한국에 들어와 다분히 제도권에 대한 저항적인 활동의 하나로 펴내고 있는 < O.K.A.Y(Overseas Korean Artists Yearbook) >에는 한 인간의 국적 정체성에 대한 날카롭고, 치명적인 시각들이 표출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었다.

'우리, 또 다른 우리'

a 한국어학당 시절 우연히 알게 된 나탈리 르므완(조미희)를 통해 한국민중미술 속 디아스포라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이나바 마이의 세미나 발제

한국어학당 시절 우연히 알게 된 나탈리 르므완(조미희)를 통해 한국민중미술 속 디아스포라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이나바 마이의 세미나 발제 ⓒ 김기

'우리, 또 다른 우리' 세미나에는 비단 입양아 문제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문제, 재일 한국인 2,3세 미술가들의 활동인 '아름 네트워크'에 대한 소개를 교포 3세 하전남 작가를 통해 진행했다.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코리안 디아스포라 아티스트들의 활약은 꾸준히 진행돼온 것이다.

우리도 모르고 관심 갖지 않은 한국인 디아스포라에 대해 왜 일본인 이나바 마이가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소주 한 잔을 앞에 두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인은 물 탄 술을 좋아한다는데, 이나바 마이는 맨 소주를 안주도 없이 입에 잘 털어 넣었다. 일본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한국에서의 이나바는 영락없는 한국사람으로 보였다.

- 한국인 디아스포라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태어나자마자 백인이 95%가 거주하는 아르헨티나 한 도시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는데, 유치원부터 겪은 소수자로서의 막연한 정서를 갖고 자란 것 같다. 내가 들어간 곳은 500명 규모의 군립 유치원이었는데 그 중 일본인을 떠나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그 후 상황은 혼란스러움 자체였다."

- 그렇다고 해도 어린 시절의 경험이 곧바로 성인의 인식세계를 결정짓는다고 보기 어렵다. 이후 성장과정에도 소수자 문화에 관심을 갖게 한 요인이 있을 것 같다.
"운명인지 몰라도 일본으로 돌아와 정착한 곳이 시골이다. 그냥 시골이 아니라 부락민(일본의 전통적인 하층민 집단) 거주지 가까운 곳이었다. 유년기의 내 경험이 일반 일본인들과는 다른 시각을 갖게 한 것 같다. 또 당시 모국이라고 돌아왔지만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일본 역시 내게는 외국일 따름이었다.

일본에는 두 부류의 차별이 존재한다. 부락민과 한국인(당시는 조선인이라 불렀다) 내가 차별의 가해자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다수자에 속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내가 경험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a 한국에 오니 한국 바깥의 한국사람이 보인다는 이나바 마이. 그녀는 야스쿠니반대에도, 대추리에도 한국인보다 더 열심히 찾아다니는 열혈일본인이다.

한국에 오니 한국 바깥의 한국사람이 보인다는 이나바 마이. 그녀는 야스쿠니반대에도, 대추리에도 한국인보다 더 열심히 찾아다니는 열혈일본인이다. ⓒ 김기

- 이나바 마이씨의 성장과정이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한 동기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관심, 그것도 민중미술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갖게 되었나?
"대학 졸업 후 한 잡지사 미술담당 기자로 일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웃나라인 한국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특히 민중미술에 대해 관심이 모아졌다.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게 되고, 재일 한국인들과도 접촉하는 과정에 서승 교수님을 알게 되었다. 서 교수님을 통해 한국 민중미술가 홍성담 씨를 만나게 되어 본격적인 한국미술에 대해 공부할 결심을 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한국에 와서 보니 한국 바깥에 존재하는 또 다른 한국사람이 보였다."

- 한국민중미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본에서는 '현장미술'이란 말 자체를 들어볼 수 없었다.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말이다. 개인적 성향이 강한 미술가들이 조직하여 반정부투쟁의 방법으로 미술을 활용하는 것은 대단히 큰 충격이었다."

- 이제 한 학기만 마치면 과정을 마치게 되는데, 향후 한국민중미술에 대한 공부를 어떻게 활용할 생각인가?
"한일 양국의 미술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 양국 모두 이웃나라가 아닌 서양만 바라보고 있어 쉽지 않은 일이 될 거라 예상한다. 그리고 일본에도 역시 디아스포라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한국 디아스포라에 대한 지속적인 공부를 해볼 생각이다."

- 끝으로 현재 일본 내 한국인에 대한 차별은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극우세력이 아니라면 한국인을 조선인이라 부르는 일본인은 없다.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한류 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재일 한국인들은 한국이름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부락민 출신인 철저히 자기 전력을 숨기는 것에 비하면 한국인 위상은 전보다 향상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우리, 또 다른 우리' 전시는 국민대 예술관 2층에서 11월 25일까지 전시된다.

덧붙이는 글 '우리, 또 다른 우리' 전시는 국민대 예술관 2층에서 11월 25일까지 전시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2. 2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3. 3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4. 4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5. 5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