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대안을 꿈꾸는 몸부림

제3회 <부안영화제> 때늦은 후기

등록 2006.11.19 11:23수정 2006.11.19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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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3회 부안영화제 포스터.

제3회 부안영화제 포스터. ⓒ 부안영화제

지난 11~13일 부안예술회관에서는 제3회 부안영화제가 치러졌다. 올해 주제는 '한미FTA 하지 마라!'. 그래서 조직위원회(위원장 서대석)와 함께 한미FTA저지 부안군대책위가 영화제를 주관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선동적인 구호가 영화제와 어떻게 마주하고 어울린다는 것일까?

부안 영화제는 1회때부터 '환경-생태-생명-자치' 등의 가치를 내세우며 영상 문화 운동을 표방했다. 애초 핵 폐기장 반대투쟁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홍보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던 까닭이다.


그렇지만 상영관 하나 없고 인력도 변변치 않은 일개 군에서 치러지는 영화제는 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초등학교 체육관과 성당을 오가다가 올해에야 그나마 상영관다운 예술회관에서 치러진 것이다.

가족 사이의 힘든 소통을 다룬 솔직한 영화 '첫시도'

올해 세 살배기 영화제를 찾은 건 지난 12일 일요일 오후였다. 다소 쌀쌀한 날씨임에도 영화제와는 무관한 자선 콘서트 때문에 행사장은 의외로 시끌벅적했다. 산만한 행사장에다가 잡상인들이 영화제 알림막을 가리고 있어, 상영관을 찾아 들어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부안영화제를 찾아온 이들은 생각보다 적었다. 이 날 오후에는 청소년 부문 영화를 상영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객은 초중고교 학생들이었다. 간혹 학부모나 영화제 관계자들 몇 분이 보이긴 했지만 일반 주민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상영관으로 통하는 예술회관 2층 로비에는 갯벌의 소중함과 유전자변형식품의 위험성을 알리는 안내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의 청소년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이 영화제 기념품과 홍보 전단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a 행사장 풍경.

행사장 풍경. ⓒ 권오성

a 행사장 풍경.

행사장 풍경. ⓒ 권오성

a 행사장 풍경.

행사장 풍경. ⓒ 권오성

2시가 가까와지며 상영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아늑하고 시설 좋은 대강당에 들어섰다. 철없는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면서 휘젓고 다녀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 영화가 시작됐다. 이런 풍경을 정겨운 운영의 '묘미'라고 해야 할지, 정색을 하고 뭐라 해야할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청소년 부문의 단편작인 <아웃사이더>(전성희), <쌤 졸려요>(이혜미). < M&W >(김아림), <첫시도>(황지희) 등이 먼저 상영되었다. 그리고 부안여고 영상동아리의 <바이올렛>(한호은)과 <낙화>(김수정)가 안내와 함께 뒤를 이었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첫시도>였다. 감독 자신의 가정 이야기를 가감없이 영상으로 담아내 관객들의 박수를 가장 크고 길게 이끌어냈다. 엄마, 아빠와 나 세 명뿐인 가족의 단절된 소통을 바꿔보기 위해 영화를 찍었다는 게 감독의 변이었다. 짜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솔직하게 가족의 부딪치는 일상을 담아내려는 앳된 황 감독의 '시도'가 놀랍다. 이해와 소통의 방법이 삐걱거리는 순간을 잘 포착해낸 탓에 거짓 다큐멘터리라고 착각할 정도다. 그의 솔직함이 보는 관객을 부끄럽게 하고 성찰하게 한다.

a 청소년 부문에 참여한 감독들. 맨 오른쪽이 황지희 감독.

청소년 부문에 참여한 감독들. 맨 오른쪽이 황지희 감독. ⓒ 권오성

개발의 논리에 해체되는 삶의 공동체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4시부터는 '환경과 삶' 부문의 작품이 상영됐다. 다큐멘터리 <어부로 살고 싶다 - 살기 위하여>(이강길)는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인해, 그동안 갯벌과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어부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언론에 비친 과격한 이미지 탓에 선입견을 가지고 미리부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 이들이 꼭 봐야 할 영화였다. 감독은 어부들의 삶과 투쟁의 모습을 따라가면서 어떻게 그들의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는가를 잔잔하게 담아냈다. 대책위 지도부의 '혼선', 환경단체와 명망가들의 '변명' 등이 화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게 드러난다.

객석에 불이 들어오자 거개가 영화 속에 등장했던 분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앉아 있었다. 상영중에 간간히 훌쩍 하던 소리도 이들의 울음이었던 것이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젖은 눈만 깜박거리는 이들의 감회는 무엇이었을까! 합의한 보상안조차 불투명한 이들의 생존 투쟁이 정부와 언론에 무시당할 만큼 가치 없는 일인가!

a '어부로 살고 싶다 - 살기 위하여'의 한 장면.

'어부로 살고 싶다 - 살기 위하여'의 한 장면. ⓒ 권오성

a 상영이 끝나고 이강길 감독(맨 왼쪽)과 어민들이 소회를 밝혔다.

상영이 끝나고 이강길 감독(맨 왼쪽)과 어민들이 소회를 밝혔다. ⓒ 권오성

새만금간척지는 경제적 손익계산서를 따지면 수조원 이상의 효과를 얻는다고 한다. 그 수익이 인근 주민에게 얼마나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대대로 내려온 어촌 공동체의 파괴로 야기될 어부들의 유랑 생활에 대한 손익계산서는 따질 방법이 없다.

이들 대부분의 종착역은 결코 간척지에 들어서는 화사한 장밋빛 미래가 아니다. 이리저리 떠밀리다가 사그라지고 마는 공선옥의 '유랑가족'은 여전히 아직도 진행형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부안영화제는 선동적인 구호에 가려 진지한 영화적 시도가 다소 묻혔을지도 모른다. 대표적으로 청소년 부문의 영화들이 그렇다. 하지만 부안영화제는 부안군이 그런 것처럼 우리가 모색해야 하는 하나의 대안을 상징한다. 비록 투박하고 직설적으로 다가오지만 그렇다고 절대 외면하거나 간과할 수는 없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으로 한 곳만을 보며 가려고 할 때, 다른 생각과 시각으로 현재의 우리를 성찰해 보게 한다는 점에서 당연히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 할 영화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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