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공장 여성 노동자들, 패션쇼 무대 선다

12월1일, '수다공방 패션쇼' 열려... 천연소재 옷감으로 직접 만들어

등록 2006.11.20 14:25수정 2006.11.2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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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970년대부터 의류산업에 종사해오던 여성 봉제노동자들은 지금도 변함없이 종로구 창신동 일대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고 있다. 12월 1일, 이들은 노동자에서 생산자, 패션쇼 모델로 거듭난다. 사진은 한 봉제사업장 모습.

1970년대부터 의류산업에 종사해오던 여성 봉제노동자들은 지금도 변함없이 종로구 창신동 일대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고 있다. 12월 1일, 이들은 노동자에서 생산자, 패션쇼 모델로 거듭난다. 사진은 한 봉제사업장 모습. ⓒ 우먼타임스

[채혜원 기자] '분명 이 골목이 맞는데….'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릴 만한 공장은 보이지 않았다.

1970년대 한국경제를 이끌었던 의류산업에 10대 때부터 종사해오던 여성 노동자들이 여전히 몰려 살고 있다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 골목에는 5층짜리 건물들이 즐비했다. 1층에는 다른 동네와 다를 것 없이 슈퍼, 과일가게, 식당이 위치하고 있다. 창신동에만 약 2400개의 봉제 사업장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어디서 일하고 있는 것일까.

영세 사업장이 몰려 있다는 건물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보니 돌돌 말려 있는 다양한 옷감들, 잔뜩 쌓여 있는 옷 더미들이 그들의 작업장임을 알려준다. 드르륵 좁은 미닫이를 열어 보니 8평 남짓한 공간에서 미싱을 돌리고 있는 정구선(50)씨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수줍어한다. 오랜 세월 미싱 작업을 한 탓에 찾아온 팔목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몇 번을 뗐다 다시 붙였는지, 다 해진 황토빛 팔목보호대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은 대부분 가내수공업 형태로 일하고 있어요. 1985년 무렵부터 대부분 혼자 혹은 부부, 가족 단위로 일을 하기 시작했죠. 공장에서 일할 때보다 장시간 노동해야 하지만 내 마음대로 시간을 조절하며 일할 수 있으니 자유로운 점은 좋아요."

오는 12월 1일 열리는 '수다공방 패션쇼'

중학교 시절 봉제 기술을 익혀 지금까지 봉제업에만 종사해 왔다는 정씨. 창신동 골목에 위치한 가정집,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은 대부분 정씨처럼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재단사나 미싱사로 일해 온 20년 이상 경력을 지닌 기술자들이다.

요즘 이들은 주말마다 참여성노동복지터 4층에 위치한 '수다공방' 작업실에 모여 함께 작업을 한다. 특별한 행사를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이름 하여 '수다공방 패션쇼'(박스기사 참조).


패션쇼에 선보일 옷을 직접 만들 뿐만 아니라 모델로도 나선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순옥 박사가 대표로 있는 참여성노동복지터 수다공방은 재단, 봉제 등 옷 만드는 전체 과정과 고품질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하우를 전문 디자이너와 강사를 통해 여성 노동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오는 12월 1일 열릴 패션쇼 준비에 참가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은 약 30명. 큰 창을 통해 비치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수다공방에는 최근, 평일에도 자신의 일을 뒤로 미루고 찾아온 여성 노동자들이 패션쇼 준비에 열정을 쏟고 있다. 벌써 완성된 옷들은 마네킹에 곱게 입혀 놓았다. 흙냄새와 햇볕이 깃들어 있는 밤색 옷들 외에도 천연 소재를 이용한 옷감이 친근함을 전해준다.


"인정받고 싶어서 패션쇼를 준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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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우리 몸에 잘 맞으면서 질리지 않는 옷을 만들고 있어요. 패션쇼를 통해 저희가 만든 옷들을 알리고 '수다공방'이라는 브랜드로 전국 체인점을 꾸리는 것이 꿈이에요. 질 좋은 옷을 제값 받고 만드는 이 옷들이야말로 진짜 명품 아니겠어요?"

유난히 환하게 웃으며 미싱을 돌리고 있던 천원순(50)씨가 야심찬(?) 계획을 말해버리자 다른 사람들은 소리 내어 웃었다. 각자 자리에서 미싱을 돌리던 다른 여성 노동자들은 난생 처음 패션쇼에 참가하는 것이 부끄러운지 "아직 무대에 설 옷을 고르지는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작업 시간 내내 수다공방을 돌아다니며 귀찮게 질문하던 기자가 인터뷰를 마무리하려고 하자 아무 말 없이 봉제 작업에만 매달렸던 곽미순(60)씨가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인정받고 싶어서 패션쇼를 준비하고 있어요."

곽씨의 한마디로 알 수 있었다. 창신동 곳곳에서 특별한 패션쇼를 준비하는 그녀들은 지금까지 인정받지 못했던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고단한 몸을 이끌고 즐겁게 패션쇼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들이 타닥타닥 경쾌한 소리를 내며 미싱 작업을 하는 창신동 골목에서는 어디선가 강인하면서도 풋풋한 들꽃 향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이상수, 장하진 장관 및 지은희 총장, 강금실 등도 모델로 참여

1970년대부터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일대 봉제공장에서 일해 온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패션쇼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가 12월 1일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다.

이 패션쇼에 선보일 옷을 만들고 모델로도 나서는 이들은 (사)참여성노동복지터가 지난 6월 문을 연 '수다공방' 기술교육센터에서 디자이너와 전문 강사들에게 고급 기술을 연마한 여성 노동자 30여명이다. 2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이들은 천연 소재를 이용해 감염, 먹염을 주 염료로 한 자연 색감의 친환경 옷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는 이상수 노동부 장관을 비롯해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 지은희 덕성여대 총장, 강금실 여성인권대사 등도 모델로 참여한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와 (사)참여성노동복지터를 설립하고 여성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고 있는 전 열사의 막내 동생 전순옥 박사도 이날 무대 워킹에 참여한다.

또한 여성 봉제공들의 삶과 역사를 조명한 영상 다큐와 가수 이은미, 전인권, 정태춘&박은옥의 축하 공연도 이어진다.

이 행사를 주최한 김한영 참여성노동복지터 교육팀장은 "지금까지 섬유산업의 생산 기반을 이뤄온 여성 봉제노동자들의 노고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인정한 적이 없었다"며 "이제 중년이 된 여성 노동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패션쇼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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