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찾아온 '복덩이'

우리 집 삽살개 갑비가 새끼를 낳았어요!

등록 2006.11.21 10:06수정 2006.11.2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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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눈도 뜨지 않은 갑비 새끼들이 오물오물 뭉쳐 있습니다.
아직 눈도 뜨지 않은 갑비 새끼들이 오물오물 뭉쳐 있습니다.이승숙
지난 수요일(15일) 아침이었다. 가족 모두가 늦잠을 자서 아침부터 경황이 없었다. 고등학생인 아들은 오전 7시 50분까지 학교에 가야 하는데 우리 가족은 7시가 다 된 시간에 일어나고 말았다. 그래서 모두들 정신없이 설쳐야만 했다. 나는 밥 챙겨먹을 시간이 없는 아들을 위해서 과일과 음료수를 챙겼다.


집 안팎을 둘러보러 나갔던 남편이 집 안으로 들어서며 그랬다.

"갑비 새끼 낳았더라."

우리 집 삽살개 갑비가 새끼를 낳았단다.

"갑비가 새끼를 낳았다고? 아니 언제 임신했는데 새끼를 낳은 거야?"
"응, 며칠 전에 보니까 갑비 배가 좀 부른 거 같고 젖꼭지가 좀 달라 보이더라. 그래서 임신했나 생각했는데 임신 했었나 봐."

그러자 수능 시험을 앞둔 딸아이가 그러는 거였다.


"안 그래도 어젯밤에 계속 끙끙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난 그 소리가 무슨 소린가 했는데 갑비가 새끼 낳는 소리였나 보네."

딸아이는 지난해에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올 한 해 동안 집을 떠나서 서울에서 공부를 하다가 수능 시험을 앞두고 집에 돌아온 참이었다.


우리집 삽살개 '갑비', 수능 전 날 새끼를 낳다

움푹하게 굴을 파고 그 안에 새끼를 낳았네요.
움푹하게 굴을 파고 그 안에 새끼를 낳았네요.이승숙
바쁘게 학교 갈 채비를 하던 나는 속으로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딸이 오자마자 갑비가 새끼를 낳았고 또 새끼를 낳은 곳이 딸이 자는 방 뒤라서 꼭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징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이들도 역시 그런 기분이 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들 입을 조심했다. 내 집 안에 찾아온 복이 섣불리 입을 놀려서 달아날까 봐 다들 조심하는 것 같았다.

우리 집에는 개가 세 마리 있다. 순종 삽살개 암컷인 '갑비'와 삽살개 변이종인 '순돌이' 그리고 갑비가 우리 모르게 시집 가서 낳은 '찌질이'가 있다.

갑비는 삽살개보존회의 공인을 받은 순종 삽살개이지만 순돌이는 인정을 받지 못한 변이종 삽살개이다. 순돌이 부모는 순종 삽살개인데 이상하게 털이 없는 변이종 순돌이가 나왔다. 그래서 순돌이는 순종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호부 호형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갑비는 딱 한 번 임신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우리 집에는 진돗개 황구가 있었는데 갑비랑 그 황구가 눈이 맞아서 새끼를 낳았다. 찌질이는 그 때 태어난 갑비의 새끼다.

찌질이는 갑비가 낳은 9마리 새끼 중에서 제일 약하고 못 생긴 놈이었다. 그래서 누구도 탐을 내지 않아서 우리가 거두게 되었다.

그 놈은 아무리 정을 주어도 사람 곁에 오지 않는다. 사람 근처에서 빙빙 돌기만 하지 곁에 와서 애정 표현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찌질이는 이름도 없다. 자신감이 없고 열등감에 싸여 있는 사람처럼 늘 찌질하게 놀아서 우리는 그 놈을 찌질이라고 부른다.

"갑비야, 애 썼다. 배고프지? 이거 먹어라"

'찌질이'입니다.  갑비는 찌질이를 몰아내고 찌질이 집에서 새끼를 낳았더군요.
'찌질이'입니다. 갑비는 찌질이를 몰아내고 찌질이 집에서 새끼를 낳았더군요.이승숙
아들을 학교까지 태워다 주면서 내내 궁금했다. 갑비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을까? 지난번처럼 9마리 낳았을까 궁금했다. 딸애도 궁금한지 내게 물었다.

"어머니, 갑비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을까요?"
"글쎄다. 지난번에 9마리 낳았는데 이번에도 그 정도 안 낳았을까?"

"그렇게 많이 낳아요?"
"그럼. 개는 젖꼭지가 10개 정도 될 걸? 그러니 9마리 정도 낳아도 다 젖먹일 수 있어."

"집에 가시면 몇 마리 낳았는지 확인해 보세요. 궁금해요. 그리고 어머니 지난번에 갑비가 새끼 낳았을 때 미역국 끓여서 주셨잖아요. 이번에도 끓여 주실 거예요?"

"그럼 끓여 줘야지. 미역국 말고 북어 국물 우려서 줄 거야. 읍내 시장통에 보니까 명태 대가리랑 뼈 팔더라 그거 사다가 푹 고아줘야겠다."
"그래 주세요. 힘들었을 텐데 잘 먹여 주세요."

순종 삽살개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나 털이 없어서 인정받지 못한 '순돌이'입니다.
순종 삽살개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나 털이 없어서 인정받지 못한 '순돌이'입니다.이승숙
아들을 학교에 들여보내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렀다. 그리고 일명 '개보약'이라고 불리는 명태뼈 모아놓은 것을 샀다.

집에 돌아오자 말자 가마솥에 물을 붓고 명태뼈를 고기 시작했다. 한참을 끓이자 구수한 국물이 우러나왔다. 뼈 고은 물을 개밥그릇에 담고 갑비에게 갔다. 갑비는 누워서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갑비야, 애 썼다. 배고프지? 이거 먹어라."

그러나 갑비는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이 아침에 챙겨준 사료도 입에 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머리를 개집 안으로 들이밀고 갑비 입 근처에 개밥 그릇을 놓아 주었다. 그러자 갑비가 고개만 돌려서 뼈 곤 물을 혀로 핥아먹기 시작했다.

갑비는 쉬지도 않고 한참 동안 뼈 고은 물을 다 먹었다. 그리고 명태뼈들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몸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새끼들이 젖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불편한 자세 그대로 밥을 먹는 거였다.

좋은 일이 우리집에 찾아올 것이란 '믿음'

새끼를 낳고 첫 밥을 먹고있는 '갑비'입니다. 까탈스럽지 않고 너그러운 순둥이입니다.
새끼를 낳고 첫 밥을 먹고있는 '갑비'입니다. 까탈스럽지 않고 너그러운 순둥이입니다.이승숙
갑비가 새끼를 낳은 곳은 맨 땅에 헌 리어카를 뒤집어 놓은 곳이다. 갑비는 땅을 파서 오목하게 해놓고 그 안에 새끼를 낳아 놓았다. 맨 땅이라 차가울 거 같아서 남편이 짚을 수북하게 넣어주었지만 갑비는 짚은 다 걷어내고 맨 땅에다 새끼를 그대로 두었다. 그래서 걱정이 된 남편이 혹여 추울까봐 헌 이불을 가져다가 리어카를 덮어 주었다. 그래도 내내 안심이 안 되는지 자꾸 들여다보았다.

"여보, 개는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하잖아. 그기는 옴폭하게 쏙 들어간 곳이라서 안 추울 거야. 갑비가 다 알아서 하겠지. 그냥 둬도 괜찮을 거야."

이틀이 지나도록 갑비는 굴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오는 눈치였는데 드디어 밥 먹을 때 굴 밖으로 나왔다. 갑비가 밖에서 밥을 먹는 동안에 굴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새끼들을 들여다보았다.

새끼는 모두 7마리였다. '옹옹옹옹' 거리면서 서로 엉켜 있었다. 아직 눈도 뜨지 않았다. 갑비는 가끔씩 귀를 기울이는 듯하면서 밥을 먹더니 다시 굴 안으로 들어가 새끼들을 끼고 누웠다. '옹옹' 대면서 어미를 찾던 새끼들이 머리를 들이밀면서 어미 품으로 파고 들어갔다.

갑비가 새끼를 소리 소문 없이 낳자 우리집 식구들은 마음 속으로 작은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수능 시험 하루 전에 새끼를 낳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좋은 징조로 보았다. 더구나 갑비는 제 집을 놔두고 딸아이 방 근처에서 새끼를 낳았다. 그래서 우리 집 식구들은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은 안 했지만 마음속으로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좋은 일이 우리를 찾아올 거란 믿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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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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