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치한 교사가 되고 싶다

행복한 실천을 위한 작은 분회 이야기

등록 2006.11.21 13:38수정 2006.11.2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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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교사의 존재이유는 아이들입니다

교사의 존재이유는 아이들입니다 ⓒ 안준철

'지각이 잦은 아이들을 어떻게 할까?'

교사에게 이것은 결코 하찮은 문제가 아니다. 철학자에게 '인생이란 무엇일까?' 라는 물음이 하찮은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교사는 어차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귀찮거나 시시하게 느껴지면 큰일이다. 그것은 철학자가 사색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아이들과의 유치한(?) 언쟁이나 감정싸움은 교사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종의 숙명 같은 것이다. 만약 하루 종일 고상한 품격을 유지하면서 학처럼 살고 싶은 교사가 있다면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아이들을 포기하면 된다. 아이들이 어찌되든 상관하지 않는다면 굳이 애를 태울 필요도 없으리라.

하지만 그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다. 교사의 잔소리를 싫어하면서도 무관심하면 또 무관심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소행이다. 그러니 만약 지금 이 시대에 햄릿이 교사가 되어 학교에 나타난다면 이런 독백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유치해질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지난 토요일,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분회참교육실천발표대회(이하 분회참실대회)'가 열렸다. 분회란 학교단위의 전교조 조직을 말한다. 그러니까 분회참실대회란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한 해 동안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유치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자리라고나 할까. 방과 후 술좌석에서 푸념 섞인 어조로 내뱉던 이야기들을 교육 안으로 끌어 들여 머리를 맞대고 교사와 학생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자리라고 해도 좋겠다.

a 정범석 교사

정범석 교사 ⓒ 안준철

간단한 의식이 끝나고 첫 발표자로 나온 정범석 교사는 반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한 인터넷 학급 카페 활용 사례를 소개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정 교사는 지난 해 '큰 맘 먹고 장만한'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 것이 인터넷 학급 카페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아이들과의 추억을 한 장이라도 더 담기 위해 분주하게 셔터를 눌러댄 것이 자그마치 4백장을 넘게 찍었습니다. 사진을 현상하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지요. 대부분 모둠별로 찍은 사진들이기 때문에 현상을 하려면 족히 2천장은 넘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머리에 떠오른 것이 바로 우리 분회 카페인 효산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도 인터넷 학급 카페를 만들면 되겠다 싶었지요."


그날로 정교사는 인터넷을 잘 안다는 학생들을 골라 운영자로 임명하고 '자유게시판', '공부방', '알림방', '아름다운 글방' '앨범', '끝말 잇기방', '한줄 메모장' 등, 여덟 개의 방을 개설한다. 이렇게 방을 만들어놓자 처음에는 제법 관심을 보이고 훈기가 나는 듯하더니 여름이 되면서 시들해지고 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주로 '싸이'를 이용해서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카페'는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단다.

그래도 정교사는 포기하지 않고 멀티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취향에 맞는 카페의 모습들 갖추기 위해 여러 차례 변신을 시도했다. 그는 "아이들이 자주 찾아주어야만 나눔도 생기고, 소통도 되고, 교육도 이루어진다!"라고 확신하면서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 올리기 위해 태그 연습도 열심히 했다.

정교사는 올해도 인터넷 학급 카페를 운영하면서 이런 저런 일들을 겪었다. 애쓰게 올린 사진이나 글들이 대여섯 명의 조회수로 끝이 날 때는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설익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방식을 얻어가고 있다. 그는 이렇게 발표를 갈무리했다.

"소수이긴 하지만 더러 카페에 올린 글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아이, 진한 감명을 받았다는 아이들도 있고, 비록 행사사진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반 아이들 모두와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카페에 올린 동영상과 글들을 독서 시간과 2ㆍ3학년 '문학수업'시간에 보조 자료로 유익하게 활용하였으니, 아쉽기는 하지만 작은 수확은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사제동행 산행 이야기

a 강이구 교사

강이구 교사 ⓒ 안준철

두 번째 발표자로 나온 강이구 교사는 전교조 순천사립지회 문화부장으로 일하면서 사제동행 등반대회를 기획한 장본인이다. 기존 등반대회가 전교조 조합원들의 친목과 단합을 도모하는데 뜻이 있었기에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 사제동행 참교육 등반대회를 제안했다고 했다. 그는 제자와 함께 산에서 보낸 하루를 이렇게 회상했다.

"조계산 등반을 하면서 먼저 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를 힘들게 했던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자 김 군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사귄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귀가가 늦어진 이야기며, 마음을 잡고 공부하려고 해도 학교 분위기 때문인지 공부가 잘 되지 않는다는 말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제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a 분회참교육실천발표대회

분회참교육실천발표대회 ⓒ 안준철

그때 산을 함께 오른 제자와 지금도 자주 만나고 있다. 단 한 번의 산행이 사제간의 관계를 이렇게 끈끈하고 돈독하게 만들어놓을 줄은 미처 몰랐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강 교사의 마지막 말이 퍽 인상적이었다.

"김 군은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잠시 방황을 했을 뿐 큰 문제가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함께 산을 오르면서 대화를 나누었기에 과거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참교육이란 어떤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이런 작은 실천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지각생과 함께 걸어서 등교(혹은 하교) 하기

세 번째 발표자로 나온 이석호 교사는 지각이 잦은 학생의 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때로는 서너 시간씩 함께 걸어서 등교하거나 하교한 다소 이색적인 사례를 소개했다.

"3월에 반을 맡고 나서 아이들이 계속해서 적게는 서너 명, 많게는 하루에 약 열명 정도가 매일 계속해서 지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매로 잡으려 했으나 매는 면역이 생겨 더 이상 체벌로는 아이들이 교화되지 않았고, 사실 심하게 체벌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습니다."

이 교사는 지각생을 지도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출근 시간에 학생의 집을 방문하여 함께 걸어서 등교하면 어쩔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함께 등교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다보면 지각하는 습관을 근본적으로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이다.

a 이석호 교사

이석호 교사 ⓒ 안준철

거의 매일같이 상습적으로 지각을 하는 학생이 그 첫 대상이 되었다. 이 교사는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아침 6시 정각에 집을 출발하여 빠른 걸음으로 약 1시간 정도 걸어서 학생의 집에 도착하였다. 학생의 집이 가까워지면 전화를 걸어 등교 준비를 하도록 하였고, 학생이 집에서 나오면 함께 대화를 나누며 학교까지 다시 1시간 정도 걸었다.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충분한 시간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도 좋았다고 했다.

방과 후에 같이 걸어서 하교를 하기도 했다. 광양에 사는 학생은 장거리 통학생으로 지각을 자주했는데 광양까지 가서 함께 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방과 후에 걸어서 같이 하교를 했다. 처음에는 걸어서 광양까지 간다고 하였으나 좀 지나친 감이 있어서 중간까지 걸어갔다가 헤어졌다.

시외 지역인 낙안면에 사는 학생도 역시 통학생으로 걸어서 함께 등교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방과 후에 약 4시간 동안 함께 걸었다. 그런데 갓길도 없고 보안등도 없는 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차량들 때문에 위기감을 느끼기도 했다. 학생집 근처에 도착할 무렵 일을 마치고 트럭을 타고 귀가하는 부모님을 만났는데 학생이 큰 사고를 저지른 줄 알았는지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여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눈에 띄게 생활태도가 달라지긴 했지만 자신의 지각생 지도방법이 문제가 있음을 시인했다. 우선 걸어서 함께 등교할 경우 아침에 땀을 흘리면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곤란을 겪기도 했다. 아침시간에 많은 일을 하는 교사에게는 학생과의 동행 등교가 너무 과중한 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스스로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또한, 지각생들을 지도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신경을 쓰다보니 문제학생 위주의 학급운영이 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기도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의 시행착오(정말 그것이 시행착오라고 해도)가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아름다운 시행착오라고나 할까?

a 교육의 꽃은 아이들입니다

교육의 꽃은 아이들입니다 ⓒ 안준철

마지막 발표는 내 차례였다. 그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대신 자료집 작은 이야기 모음에 실린 한 편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부족한 글을 마칠까 한다.

'(…) 나는 끝내 더 이상 앨범을 만들 그 모든 의욕을 깡그리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앨범 제작에 기울여야할 시간과 노력을 우리 반 아이들의 생활지도에만 전념해야 했었고 정직하지 못한 아이들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에서도 또한 헤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당연스레 지속적인 학급 앨범 제작에 관한 나의 자랑스러운 의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고, 그 다음해인 올해(2006년)에는 담임 신청까지도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이 제 탓이요, 또 제 탓입니다.

(…)
이제 또 시작하렵니다…
모든 것을 잊고 아니 모든 것을 밑거름으로 하여
비온 뒤의 땅이 더욱 단단해진다는 초심의 진리를 안고
나에게 주어진 아이들을 위하여 처음부터 다시!!'


동료교사가 쓴 이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했던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아, 그는 다시 유치한 교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아이들을 포기해야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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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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