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 건물에 연하의 미남자 출현

[세렝게티 옥탑에 서식하는 봄날 꼬냥이의 리얼 다큐멘터리③]

등록 2006.11.21 06:52수정 2006.11.22 19:4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세렝게티 옥탑의 휴일은 바쁘다. 일주일을 일요일같이, 일하지 않으려 마음만 먹으면 일년 내내 '동네 백조'나 다를 바 없는, 말 좋은 '프리랜서' 꼬냥이는 그날 그날이 제 하기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 옥탑 아래 사는 지상 거주인들에게는 그들만의 생활 주기가 있는 법. 그 주기란 월, 화, 수, 목, 금은 일하고 토, 일은 (환경에 따르지만) 대부분은 휴일로 보낸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지상 거주인들에게 일요일은 일주일의 피로를 풀고, 밀린 집안 일을 하는 시간이기에 옥탑은 바빠진다. 왜냐, 빌딩으로 꽉꽉 막힌 도시 환경에서 제대로 햇빛을 받고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옥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주일 동안 빨래를 밀어두었다가 일요일에 몰아서 하는 것은 어느 집이나 비슷한 풍경일 터. 세렝게티 옥탑은 일요일만 되면 하루 종일 울리는 초인종 소리 때문에 정신이 없다. 꼬냥이는 세렝게티 옥상 경비원으로서 일일이 확인하고 문을 열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

a

사이좋게 앉은 산삼이와 꼬냥이. ⓒ 박봄이

산삼이의 출현, 하늘이 내린 얼굴이로다

이 세렝게티의 거주인은 총 10가구. 목사님도 있고, 유명한 개그맨도 있고, 어여쁜 아가씨도 있고, 평범한 가정집도 있다. 또한 흐뭇한 산삼 청년도 있다.

그날은 일요일 오전, 아침만 되면 창문을 관통하는 징그러운 햇살에 억지로 눈을 떠야했다. 어찌나 햇살이 과격한지 일어나지 않으면 온몸을 말려버리겠다는 듯 집요하게 비춰대니 원.

시간을 보니 아침 12시. 오랜 세렝게티 옥탑 경비병으로서의 경험으로 보아 곧 있으면 초인종 소리가 천지사방에 울리겠구나 싶었다. 어서 일어나 거주인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한다.

정갈하게 채비를 하고 수련을 하듯 마음을 가다듬고 그들을 기다렸다.

'미레 미레 미시레도 라~ 도미라시 미솔 시도..♪'(지면으로 표현해야 하는 한계가 있기에 음악은 계이름으로 쉭쉭쉭)


복댕과 삼식은 거주인들의 방문에 '얼쑤~' 하며 무당 굿판이라도 벌인 듯 작두춤을 추고, 난 집나간 서방님이라도 오신 듯 맨발로 달려나갔다.

"누구요."
"1층에 이사를 왔소, 내 오래 묵어 색감 좋은 빨래를 광합성 하려 하니 문을 여시오."


보통 일요일 아침 가장 먼저 옥탑의 빨래줄을 점거하는 이는 3층에 사는 굿거리 장단 아주머니인데 오늘은 낯선 이의 방문이었다. 굿거리 장단 아주머니는 빨래 널러 올라왔다가 옆 학교의 경로잔치를 보고 혼자 흥에 겨워 춤사위를 추시다가 내게 들킨 과거가 있는 분이다.

뉘집 자식인지 정말 잘났다

와! 세상에 이렇게 잘생긴 남자도 있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꼬냥이는 원래 남자 외모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지 않은 관계로, 아무에게나 절대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저만의 철저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키 크고 마르고 눈 작고 성격 까칠하고 삐닥하며 샤프하고 인상이 강하고 악기에 능하며 까다롭고 건방진 포스를 물씬 풍기는 남자여야만 말을 섞어 준다.'


이것이 꼬냥이가 남성을 고르는 첫 번째 기준이다. 훗… 이런 말을 하면 물론 대부분의 이들은 혼자 살라고 한다. 살면서 내·외적 기준으로 100점을 받은 이는 록밴드 이브의 김세헌씨 뿐이다. 그렇기에 열심히 돈벌어 혼자 살든가 그 양반을 보쌈해 오든가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1층에 새로 이사왔다는 이 청년, 길쭉길쭉한 기럭지가 마치 산삼을 보는 듯 당당하고 오른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삐닥하게 말하는 투가 가히 '들자란 소녀 캔디'의 테리우스를 사뿐히 즈려 밟는 수준이 아니던가.

오! 세렝게티 옥탑에도 봄은 오는구나, 산삼을 캔 심마니의 심정으로 '심봤다'를 외치고 싶었다.

잘난 외모에 살림도 잘하고 동물도 사랑하는 산삼 중에 산삼, 백년산삼!

산삼이가 빨간색 빨래 '다라이'를 들고 옥상을 찾았을 때, 빨래를 하나 하나를 탁탁 신명나는 장단 맞춰 빨래 줄에 거는 모습은 숙련된 조교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하루 이틀의 솜씨가 아닌 듯 남은 한 방울까지 쫘악쫘악 짜서 말리는 폼이란…. 수려한 외모에 살림 솜씨도 좋은 산삼이.

평상에 앉아 물끄러미 산삼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이 심장도 따라서 두근두근하는 듯 했다. 뭐 이러면서 말 트고 친해지고 밥도 먹고 극장도 가고 그런 거 아니겠어~? 히히히.

"햇살이 참 좋네요. 와! 강아지도 있네요? 저도 키우는데…."
"앗, 그래요?"
"거기다 같은 슈나우저네. 잠깐 데리고 올라와도 돼요?"
"네, 그러세요." (암요, 암요, 히히)


영화에서 보면 강아지들을 통해 이루어진 사랑이 얼마나 많던가. 뭐 영화가 달리 영화인가, 얼굴 잘났고 살림 잘하고 동물도 사랑하는 남자. 이거 완전 백년산삼이네. 산삼이는 복댕, 삼식과 같은 슈나우저의 테리를 데리고 올라왔다. 짜식, 강아지 이름 짓는 센스도 참….

처음 만난 테리와 함께 뛰어 노는 복댕, 삼식. 평상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산삼이와 꼬냥이. 이건 기냥 영화인 거지 뭐.

영감같이 생긴 개 세 마리가 옥탑을 가로지르며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동안 산삼이와 꼬냥이는 세렝게티 옥탑 평상에 앉아 오래오래 긴 대화를 나누었고 오랜 만에 설레임도 살랑살랑 오는 것이 정말 뭔가 이루어질 듯한 이 기분.

산삼이는 부모님, 누나와 살고 있고 나이는 스물 일곱의 한 살 차이나는 동생이었다. 꼬냥이 일생에 연하는 없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뭐 어떤가. 살다보면 다짐도 가끔 깨지고 그런 거지 뭐. 꼭 산삼이의 외모가 너무나 수려해서 다짐이고 뭐고 내팽개친 건 절대 맞다. 훗!!

이렇게 젊은 청춘 남녀의 로맨스는 빨래 다라이를 사이에 두고 샤랄랄라~ 피어나는 듯 했다. 그러나….

이 치열한 세렝게티 옥탑의 로맨스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가련한 주인공들에게 닥칠 시련은?

두둥! 다음 기사에 계속….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10년 만에 8개 발전소... 1115명이 돈도 안 받고 만든 기적
  2. 2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3. 3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4. 4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5. 5 자식 '신불자' 만드는 부모들... "집 나올 때 인감과 통장 챙겼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