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아름다운 '녹촌분교 월드컵'!

마석의 작은 분교에서 벌어지는 '마석이야기'

등록 2006.11.21 20:56수정 2006.11.2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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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마석에 위치한 녹촌분교 운동장에선 힌두교의 주술적 의미가 담긴 외침과 함께 휘슬이 울렸다.

축구장을 가로지르는 선수들의 피부색은 달랐지만 축구공에 대한 집착은 같았다. 축구공을 따라 뒹굴기도 하고, 공을 뺏으려고 상대편 선수의 허리춤을 끌어안으며 반칙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누구 하나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는다.

관중석에서는 네팔 전통악기를 이용한 응원전이 시작되고, 곧이어 춤판이 벌어지면 더 이상 누가 이기고 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날 녹촌분교 운동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경기는 마석 이주노동자 축구팀인 에베레스트 FC와 수동교회의 친선경기.

a 네팔전통악기인 마들과 마스리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네팔전통악기인 마들과 마스리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현재 마석 이주노동자 축구팀인 에베레스트 FC의 홈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녹촌분교.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변화가 필요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이주노동자들과 소외지역 공공미술사업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몇몇의 젊은 예술가들이 있었다.

애당초 녹촌분교 운동장은 온통 자갈밭이었다. 이 곳에서 축구를 하려면 반드시 '피를 볼' 각오를 하고 해야 할 정도였고, 여기저기 커다란 돌덩이가 박힌 채 솟아 있기도 했다. 이는 축구를 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물론, 아이들에게는 더욱 위험한 환경이었다.

운동장의 자갈을 맨손으로 골라내고 삽으로 돌덩이를 파내 흙바닥으로 만든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들과 소외지역 공공미술사업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몇몇 젊은 예술가들이었다. 이후 이들은 녹촌분교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조금씩 꾸며가기 시작했고 조그만 분교는 마을 사람들의 휴식공간, 문화, 여가활동의 장으로 바뀌어갔다.

기능을 상실했던 배수시설을 보수하고 화단에는 아이들과 함께 벽화를 그려 넣었다. 또 거의 방치됐던 등나무 휴식 공간의 바닥은 타일로 디자인하고 조그마한 음악상자도 들여놓았다.


a 지난 9월 녹촌분교 아이들과 예술가들이 화단을 꾸미고 있다

지난 9월 녹촌분교 아이들과 예술가들이 화단을 꾸미고 있다 ⓒ 마석이야기 프로젝트


'에베레스트FC 기증'이라고 적힌 이주노동자들이 손수 만든 농구대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제일 높은 농구대의 백보드는 자개농의 일부이며 가운데 백보드는 밥상을 이용한 것이다. 이들은 이것을 '세계최초의 가구 농구대'라고 자랑했다.

모나주(32·네팔) 에베레스트FC의 주장은 "예전에 우리는 못 살고 하니까 학교 주변에 와서 쓰레기를 버리고 더럽혔다"며 "그 때는 선생님들이 싫어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미소를 짓는다.


이명원 녹촌분교 교장은 "이주노동자들의 쉴 수 있는 공간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시도가 좋은 것 같다"며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 놀 수 있어 기쁘고 아이들이 직접 학교를 꾸미고 만들면서 즐거워해 기쁘다"고 말했다.

이렇듯 녹촌분교는 마석가구단지 주민들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소리없이 말하고 있었다.

'마석이야기' 프로젝트란?

'마석이야기' 프로젝트는 '아트인시티 2006'에서 운영하는 소외지역환경개선을 위한 공공미술사업의 일환이다.

문화적 환경이 부족한 마석가구단지 지역에 예술가들이 창의적인 예술 활동을 통해 녹촌분교의 시설물들을 설치, 보수했다. 분교를 중심으로 여러 프로젝트들이 추진되고 있기도 하다. 마석이야기는 이처럼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고 주민간의 통합을 이루는 요소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마석이야기' 프로젝트의 총감독인 양철모씨(31)는 4년동안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아 온 사진작가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녹촌분교 운동장에서 축구라는 문화행위를 통해 이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는 모습을 보며 좀 더 확장된 개념을 고민하게 되었다.

양씨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이 시점에서는 지속성이 가장 중요하다. 약 7000만원이라는 돈으로 이 프로젝트를 해 왔다"며 "이 돈이 밀물처럼 왔다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분위기로 간다면 이는 마석 사람들에게 폭력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프로젝트 내내 주민들 스스로가 이 문화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진행해 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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