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몽골 김치축제 참가기

몽골 대통령궁의 영빈관과 울란바토르 시내 풍경

등록 2006.11.22 18:08수정 2006.11.2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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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구

현재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시는 이혜식 박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영빈관은 지어진지 40년이 지난 건물이라고 했다. 실제로 둘러보았더니 그간의 보수상태가 좋지않아서 그런지 건물 외관과 내부시설들 여기저기 낡고 고장난 부분들이 있었다.

창문틀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학교 창틀을 보는 느낌이었다. 실리콘이 대중화되기 전에 쓰이던 창틀 마감재, 흔히들 "빠데"라고 부르던 물질로 마감되어져 있는 창문틀과 창문턱은 몇번 덧칠했던 부분들이 대부분 다시 벗겨진 채 긴 세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듯 했다. 제일 심각한 것은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나오는 물이 황톳물이라는 사실이었다. 이곳 몽골의 물사정이 좋지않아서 물 속에 석회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고, 게다가 건물 내부의 배관들이 너무 오래되고 녹이 슬어서 탁수가 나온다고 하니 수돗물인데도 양치하는 것이 영 마음 놓이질 않았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대통령궁(청와대)의 영빈관에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으니 여기 몽골에 와서 대통령궁의 영빈관에 머물수 있게 된 건 정말 특별한 행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청와대 영빈관에 일반 국민들이 가서 숙박하기가 어렵듯이 이곳 몽골에서도 일반 국민들 중 이 곳 영빈관에 올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소수이고 제한적일 거라 생각하니까 모든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어제밤에 경호실 장교로부터 몇가지 주의사항을 전달받았다. 영빈관 앞 언덕 위의 건물이 대통령궁이므로 사진촬영은 금지되고, 심지어 촬영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그쪽 방향으로 향하게 하지도 말고, 야간에도 위쪽 건물을 향한 창가에서 스트로보를 켜고 사진을 찍거나 하지말고, 영빈관 주위를 짧은 반경으로 산책하는 것은 괜찮지만 언덕 위의 대통령궁으로 올라가지는 말 것 등의 경호와 관련한 주문들이었다. 그러한 주의사항은 당연히 일국의 대통령궁이기도 하고, 특히 경호부대 군인들이 엄중히 지키고 있는 상황이기에 충분히 신경을 쓰고 조심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침식사에 대한 안내나 소식, 전달이 없었다. 우리가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방에서 서성이거나 현관으로 오르내리는 것, 그리고 영빈관 주변을 짧은 반경으로 맴도는 것 외에는 별로 선택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혜식 박사가 어제밤에 궁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오늘 아침 상황에서는 몽골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빈관에 근무하는 직원들과 몽골 현지인들은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9시가 넘었는데도 사람이 데스크에 있는 여직원 한사람 밖에 안보였다. 그 여직원도 아직 제복을 입고 있지않았다. 그 데스크 담당 여직원과 바디랭귀지로 손짓 발짓을 동원해서 여러 번 물어서야 아침식사를 준비해 주겠다는 뜻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윽고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있다는 연락을 받고 대연회장에 한켠에 준비된 테이블에 앉아서 메뉴를 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홍당무를 채 썰어서 소금간을 약간 하고 약한 식초물로 살짝 절인 듯한 붉은색 야채와, 몽골식인 것 같은 둥근 소시지 세조각, 버터 한조각, 우리나라의 요플레와 같은 유제품 한 개, 우유 같은 음료 한잔 뿐이었다.


그래서 빵을 좀 줄 수 없냐고 영빈관직원과 또 다시 여러 차례 의사소통을 시도한 끝에 데워지지 않아 차가운 식빵을 몇 조각씩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실 수 있냐고 힘겨운 의사소통 시도 끝에 제공해 주겠다는 답을 듣고나서 30분 정도가 지나자 직원이 커피를 들고 나왔다.

그렇게 긴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니 10시가 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좋은 숙소에 머물게 된 것이 행운이기는 했지만 막상 의사소통이 되지않는 곳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도 없는 상황이 되니까 갑자기 막연한 답답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몽골의 대통령궁 옆이라서 안전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한된 영빈관 주변과 1층 로비와 배정된 방만을 왔다갔다 맴돌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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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구

더구나 이곳 영빈관의 근무자들은 출근시간이 늦은 모양이었다. 영빈관에 근무하는 몽골인 직원들은 9시 30분을 넘기고나서 10시가 되어가자 하나 둘 씩 나타났었다. 아마 출근시간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그런데 영빈관직원들은 현관으로 들어오면서 모두들 입구에 설치된 둥근 기계에다 차례로 그 신고있는 신발을 넣었다가 빼내곤 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다 들어오고 나서 현관으로 나가 보았다. 그 신발 닦는 기계를 살펴보니 초대형 구두솔을 회전하는 원통에 돌려감아 놓고 출입하는 사람들이 구두를 편하게 닦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장치였다.

아마 먼지가 많은 몽골의 특성상 출입하는 사람들의 신발 먼지를 닦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영빈관의 배려인 것 같았다. 호기심에 나도 신고 있던 구두를 그 기계(?)에 한번 넣어 보았다. 나는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솔에 살짝 닦여지는 느낌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사무총장 실종(?) 사건

그러고 있는 중에 김치를 담그러 와 주신 교민 두 분이 나타나서 그나마 말이 통하는 상대가 늘어나게 되었다. 영빈관 위의 대통령궁 옆 건물에서 김치를 담그기로 되어 있어서 그 건물의 잠겨진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데도 복잡한 의사소통의 과정을 몇 번 거쳐야 했다. 김치와 관련해서는 내일 있을 공식 김치행사를 위해 몽골의 이혜식 박사의 농장에서 생산한 배추를 전날 가져와서 이미 소금물에 절여놓았다고 한다.

무 채, 고춧가루, 기타 갖은 양념 등을 버무려 만든 김칫속까지 김치 담글 준비를 다 해 놓았다고 한다. 배추 속에 양념을 버무려 넣는 것은 윗 건물의 문을 열어주면 하기로 하고 일단 영빈관 로비의 소파에 앉아서 휴식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에 두 분과 현재의 몽골사회에 대해, 그리고 현지 교민사회 등에 대한 궁금함을 조금씩 풀어나가면서 대화의 꽃을 피웠다. 같이 있던 후배 김봉협과 나는 영빈관 밖으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며 산책을 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산이 있고 나무들이 무성한 숲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습기가 없는 듯 거친 땅에 나무들도 거의 없는 낮은 언덕이 대부분이었다. 경호대원이 사진촬영을 제한하는 상태에서 한바퀴 돌아보다가 다시 로비로 돌아갔다. 김치 담그는 일은 조금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올라가서 김치 담그는 것을 보니 우리 한국에서의 김치와 다르지 않았다. 배추 속과 함께 노란 속잎을 한입 받아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다시 로비로 내려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빈관 직원으로부터 점심식사가 준비되어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고, 그 즈음에 우리의 이혜식 박사께서 대통령궁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들을 찾았다. 그리고 이 박사의 능숙한 안내를 받으면서 점심식사가 준비된 방으로 들어갔다(이혜식 박사가 영빈관 내의 몽골인 직원들과 시원스럽게 대화를 하면서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점심메뉴는 드디어 몽골인들이 오랫동안 먹어온 양고기요리가 준비되었다. 아침에 먹었던 차가운 홍당무 채 약한 초절임 볶음이 다시 나왔고, 파프리카 볶음, 부드러운 양고기찜, 몽골식 빵, 홍차 등등.

그런데 식사를 시작하려는데 언젠가부터 오명록 사무총장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때 맞춰 이 박사님은 전에 대통령궁을 지키는 경호부대원들이 대통령이 기거하는 건물 주위를 이유없이(?) 배회하는 사람들, 혹은 함부로 허락받지않고 사진을 마음대로 찍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격리시켜 놓기도 했었다는 이야기를 했고, 우리들은 '혹시…?' 하는 걱정을 동시에 하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오명록 총장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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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구

그렇게 확인되지 않는 걱정을 하면서 점심식사는 시작되었고 식사하는 도중에 오 사무총장의 신변을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염려섞인 논의가 계속 되었다. 나는 기다리다가 카운터로 가서 담당 여직원(영어를 조금 알아들었다)에게 상황설명을 하고는 김치를 담그는 윗 건물에

연락을 해서 오 총장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여직원은 전화를 몇 번 시도하다가 전화를 받지않자 옆에 있는 남자 직원을 올려보내서 찾아보도록 지시를 해 주었다. 다시 오찬장으로 돌아가서 식사를 하는 도중에 이 박사는 우리에게 몽골의 현재 상황, 우리나라와의 국가적 제휴 등에 대한 이야기, 미래적 비전 등 여러가지 다양한 말씀을 해 주었다.

한국과 몽골은 1990년도에 수교했고 이미 16년이 넘었다고 한다. 양고기를 우리나라의 갈비찜처럼 만든 고기요리와 빵을 같이 먹는 점심이 그리 먹기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특유의 양고기 냄새와 향취가 적응하기 쉽지는 않았지만 몽골을 생각하고 이해하며 먹자니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물론 아침식사 보다는 훨씬 좋았다. 멤버 중에서 양고기를 먹지 못하는 분이 있었지만 곁들여 나온 빵과 야채 등을 먹으면서 이후의 일정에 대한 계획을 들었다. 결국 영빈관 직원에게 빵을 더 달라고 하는 부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 오 총장이 혈색 좋은 모습으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모두들 어떻게 된 거냐고 시선집중을 하자 오 총장이 멋쩍은 듯 한마디를 했다. "위의 김치 담그는데 가서 절인 배추 나르는 것 등을 도와주다가 연락받고 내려왔죠."

우리는 모두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약간 허탈한 웃음을 동시에 머금고 말았다. 공유상 방정환 재단 상임이사의 한마디, "다행이네 그려, 우린 (군대에) 잡혀간 줄 알았지 뭐야…?"

몽골 대통령궁의 영빈관, 일반일들이 들어오기도 어렵지만 안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기도 또 울란바토르 시내로 나가기도 어렵고 힘든 곳이었다.

일정상 내일 울란바토르 시내로 나가기 위한 차편을 알아보았는데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또 다시 막막한 대기상태가 되는 것 같아서 다들 표정들이 좋질 않았다. 한번 들어오기도 어렵지만 나가고 싶을 때 나가기도 어려운 대통령궁 영빈관. 그래서 다시 1층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진을 찍다가….

그런데 갑자기 이혜식 박사께서 로비로 들어와서 각자 짐을 다 정리해 가지고 현관으로 모이라고 했다. 울란바토르 시내로 나가는 차편이 갑자기 확보되어서 바로 나가야 한다고. 나가기 쉽지않은 이곳을 일단 벗어나야겠다는 일행들의 공통적인 심리상태가 확인되었고 각자의 방으로 가서 급히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일단 큰 가방에 그냥 다 집어넣고 간편한 짐 작은 것들만 손에 한 두개씩 들고 현관으로 다 모였다. 영빈관 현관 밖을 보니 갤로퍼 차량이 한 대 서 있었다. 몽골의 위생감독관인 여성공무원의 차편으로 울란바토르까지 가기로 된 것이다. 언제 다른 차편이 준비될지 모르기 때문에 일행이 모두 타기에는 좁은 차 안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다 같이 안도의 숨을 내쉬고 꽉꽉 채우며 올라탔다. 그리곤 울퉁불퉁한 몽골의 도로를 마치 말을 타듯 다시 달려서 강변을 지나 수도인 울란바토르로 갔다.

강물이 약간 누렇고도 회색빛을 띤 채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석회질이 많은 토양의 특성상 수돗물로 정수를 한다 해도 석회질 성분이 다 걸러지지 않는다는 감독관의 설명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석회질이 잔존하고 있는 물이라면 필터를 통해 거르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몽골인들의 건강상태가 나쁜 몇가지 이유 중 하나의 원인이 바로 수돗물 등의 식수라고 했다. 여러 선진국들의 다른 기술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인 것 같았다. 같이 동행한 후배 김봉협이 "전기분해든지 다른 방법으로든지 수돗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어요. 방법을 찾는다면 좋을텐데 ..." 라고 말하며 걱정스러워 하는 눈빛을 혼탁한 강물에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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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구

승마의 기분이 한참 달아오를 때쯤 이윽고 울란바토르 시내의 한 작은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 앞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호텔 바로 왼쪽에 남양주회관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바로 앞 도로에 있는 대형 도로 입간판에 국내의 모 생활용품회사의 눈에 익은 샴푸 등의 제품들이 심하게 먼지낀채 흐릿하게 붙어있었다. 우리가 묵게 될 숙소 앞에 있는 이 도로가 바로 남양주거리였던 것이다. 남양주회관 앞에는 한국으로부터 방문을 한 이석우 남양주시장의 방문을 환영하는 플랙카드가 선명하게 저녁 노을을 받으며 걸려있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도로, 포장 상태가 너무 좋지않아서 도로 바닥의 교통표지 선들이 잘 보이지않는 상태인데도 몽골인들은 쌩쌩 달리는 차량들 사이를 잘도 오가며 건너다녔다. 그런 뿌연 먼지 사이로 다니는 차들과 사람들을 보면서 이해하기 힘든 규칙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전해들었다. 차량이 서지않고 달려오면 도로를 건너던 사람이 서고, 사람이 멈추지않고 길을 건너면 차량이 급정거를 하는 등의 나름대로의 복잡한 규칙이 있다는 것이었다. 중앙선만 희미하게 보일 뿐인 왕복 4차선 도로를 현지인들처럼 횡단할 용기가 나지않을 것만 같았다.

배정된 방에 짐을 풀어놓고서 아직 남아있는 해를 아쉬워하다가 택시를 타고서 시내방문을 하기로 했다.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않는 택시기사에게 우리의 목적지를 두 세 번에 걸쳐서 반복하고 다짐을 하고 출발했지만 곧 우리는 택시기사와 심각한 갈등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급회전과 급정차 등을 일삼는 과격한 그리고 무표정인 몽골의 택시운전사와 한 차 안에 있다는 것이 나중에는 공포심까지 배어나게 했다. 잡을 수 있는 것은 다 잡은 채 우회전, 좌회전 등의 중요한 의사전달이 포기되면서 손짓발짓으로 겨우 유턴까지 해 가면서 목적지와 비슷한 곳에 내렸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서 시내의 상점과 특유의 거리 공중전화를 바라보았다. 울란바토르의 시내에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같은 공중전화가 없다.

허가를 받은 사람들이 일반 전화기에 무선기능을 추가한 개인(?)공중전화기들을 손으로 들고 다니면서 길가는 행인들에게 전화를 쓰라고 영업(?)을 한다. 그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서 생계를 영위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금 여유가 생기면 조그만 부스를 사서 공중전화영업을 하면서 껌, 담배 등의 기호품들을 같이 판매하기도 하였다.

또 울란바토르에서는 시내버스 중 상당수가 전기로 가는 전기버스였다. 자유로운 바퀴가 달려있지만 지붕의 전기선과 떨어져서 갈 수는 없는 전기버스. 몽골의 전기버스는 옛날 서울 거리의 전차와도 비슷해서 조금만 개선된 방안을 준비한다면 한국, 서울에서도 도입해 볼만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들기도 했다. 그런 낯선 풍경 등을 보면서 한블럭 정도를 걸었고, 편의점인 가게에 가서 간단히 과일과 음료수, 그리고 과자류를 조금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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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구

그리고 나서 공유상 상임이사의 지난 여름에 몽골을 찾았을 때의 여행의 기억을 더듬어서 한인상점 한군데를 찾아갔다. 가서 들은 현지 한인업소 사장의 얘기는 우리들로 하여금 긴장과 걱정을 많이 하게 만들었다. 이른바 한국인을 상대로 한 강도행위, 혹은 그와 비슷한 수준의 "린치"에 대한 이야기였다. 고가의 카메라 등을 소지한 한국인이 한 두 명만 따로 다니면 바로 '표적'이 된다는 말이었다.

한국사람들이 달러 등의 현금을 많이 소지하고 다니고, 현지 몽골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몽골에서도 통제가 어려운 부랑아들에 의해 강도를 당하게 되면 금품 등 소지품도 빼앗기고 집단폭행을 당해서 심하게 상처를 입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일주일 정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까지 듣고 나서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살폈다.

우선 카메라를 겉옷 속에다 넣었고, 다섯명이 같이 꼭 붙어 다녀서 단체임을 분명히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몽골인들만 가는 재래시장들은 현지 풍습 등에 대한 관심과 사진 자료를 남겨놓고 싶은 마음 때문에 한번 들러보고 싶었지만 가지않고 참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숙소까지는 걸어도 되는 거리였는데도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다들 자기도 모르게 서두르고 있었고 말도 줄어든 상태였다. 그렇게 어둑어둑 저물어가는 울란바토르의 탁한 하늘 아래에서 어느새 또 하루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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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곳들을 다닌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서 비슷한 삶의 느낌을 가지고 여행을 갈만한 곳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사회적 문제점들이나 기분 좋은 풍경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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