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운동권인지 '꼭' 살펴보세요!"

[작은 사회, 대학의 선거를 말한다 1] 대학에서도 정체성 논란과 보수화 바람

등록 2006.11.23 09:59수정 2006.11.23 09:59
0
원고료로 응원
역사적으로 대학과 사회는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따른다. 근래 우리 사회는 보수 세력과 진보세력의 갈등, 정치 냉소주의와 탈정치적 현상 등의 모습을 보여 왔다. 정체성에 따른 구분 짓기와 냉소적인 탈정치화 '작용'에 대학사회는 어떤 '반작용'을 하고 있을까? 최근 대학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총학생회장 선거를 통해 현실을 살펴본다.

대학에서도 문제는 정체성?

올해 5․31 지방선거에선 '마니페스토', 즉 참 공약 운동이 선거의 화두였다. 마니페스토는 후보자가 내세운 공약의 구체성과 실현가능성을 바탕으로 투표를 하자는 운동이다. 그러나 정체성과 정치노선에 따른 편 가르기 문제는 사회를 넘어 대학 내에서도 불거지고 있다. 학생운동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고 있고 한총련 등에 대한 학생들의 거리감은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너 아니면 나, Yes 아니면 No

운동권과 비운동권 혹은 반운동권의 경합은 매년 치러지는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양상이다. 각 학교 게시판에서 한총련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 비권 혹은 반권 지지자들은 '학생회가 학외 정치활동보다는 학내의 복지 문제에 더욱 신경 쓸 것'을 요구하지만, 운동권 지지자들은 '기존 운동권이 보인 모습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면서도 '사회의식 없는 대학생은 그 의미를 잃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처음처럼 고고싱' 선본은 '탈정치, 先복지, 다원주의'를 내세우고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비운동권 학생회"를 지향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선거 팸플릿에서 "주의! 아참, 운동권인지 아닌지도 '꼭' 살펴보세요!"라며 '준비된 비운동권'임을 내세웠다.

하지만 서울대 '평화지킴이'나 'my PRIDE SNU' 선본은 "'처음처럼 고고싱'은 학생회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학생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복지의 틀 안에 가두고 있다"며 "복지도 중요하지만 (대학생이) 불의에 눈감고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다른 대학의 선거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한양대학교 선거에 나온 '열정plus' 선본은 지난 11일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자유게시판에 올린 '열정plus 정체성에 답변드립니다'는 글에서 "운동권에서 붙여준 이름은 비운동권이며, 대학 내 탈정치화가 아닌 정치적 중립을 주장합니다"라고 밝혔다. 이화여대에서도 매년 총학선거가 되면 기독교 계열의 비권 후보와 운동권 후보 간의 대결 구도가 이어진다고 한 재학생은 전했다.


앞 다투는 복지 공약, '시대의 반영' vs '참문화의 상실'

1970~1980년대에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하던 대학사회의 문화는 1997년 외환위기 후 청년실업이 만연하면서 급속히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회의 보수화 바람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각 대학의 총학생회장 후보들은 통일‧민족‧민주 등 거대담론보다는 학생들의 취업이나 복지에 비중을 둔 공약을 주로 내세우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이화in 이화' 선본의 공약 중 40%는 도서관 내 공기청정기 설치나 휴대폰 무료 충전기 확대설치 등 복지 관련 내용이다. 상대 선본인 'Beginning 이화'도 이화복지장학금 기준 개선, 과자자판기 설치나 수면실 설치 등 복지 공약을 많이 내세웠다.

중앙대학교의 'Wing For You' 선본의 경우 사물함이나 열람실 등 도서관 편의 시설 개선, 중앙대 학생들을 위한 의료비 공제, 강연 사업 등 복지, 교육, 문화 사업 공약이 50%에 이른다. '의혈 Revolution' 측은 도서관의 전면 리모델링, 제 1회 전국 대학 지식포럼, 의혈예술무대 개최 등 공약을 내세웠다.

다른 대학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학생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실현될 경우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공약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이러한 모습은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지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구자순(정보사회학) 한양대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분자화 현상이 나타남에 따라 연대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공동체적 문화가 없어지고 있다"며 "현실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사회사상이 확립되지 못하는 건 더욱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북대 기계공학부(02학번)에 재학 중인 김재윤씨는 "대학생들의 탈정치화는 개인주의를 넘어선 이기주의로, 결국에는 사회적 무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라 했다. 한양대 02학번(화학공학 전공) 이미선씨는 "공약으로 후보를 평가해야 하며, 이념이나 정체성에 따른 편 가르기 현상은 구시대적인 발상이자 중세의 마녀사냥과 같은 논리"라고 말했다.

보수, 상아탑에 침투했으나...

최근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보수 성향 혹은 비운동권 출신의 총학생회 구성을 목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기존 보수주의자를 '올드 라이트(Old Right)'로 규정하고, 이들이 부정부패를 일삼는 무리들과 자신들을 차별화하는 데 실패해 결국 수구 기득권 세력으로 매도당하게 되었다며 선을 그었다. '뉴 라이트'(New Right)는 '도덕성과 투명성, 나눔 정신과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개혁운동을 생활화하자는 보수'라고 자신들을 규정했다.

하지만 부산대, 경희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 선거에 자금을 지원하고 '뉴라이트 전국연합' 선거학교를 통해 선거전술 교육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들은 도덕성과 투명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경희대 02학번 박유현(국제경영)은 "선거운동부터 정치세력이 개입돼 은밀한 뒷돈이 오간다는 것은 학생회가 정치세력에 예속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선거운동본부에서 이를 명확히 밝히고 학생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규철씨는 부산대학교 자유게시판에 올린 '뉴라이트 선거 개입에 관한 짧은 생각'이란 글에서 "요즘 총학 선거를 보면 기성세대 선거와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의문을 던졌다.

덧붙이는 글 | 총 3부 중 1부 기사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총 3부 중 1부 기사 송고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4. 4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