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마지막 카드, 개운치 않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두번 퇴짜맞은 대통령의 세번째 제안... 그 다음은?

등록 2006.11.27 10:13수정 2006.11.2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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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무현 대통령(자료사진).

노무현 대통령(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언론의 분석은 하나로 모아진다. 레임덕을 늦추기 위한 고육책이란 것이다. 이런 분석은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정 정치협상회의에 진정성이 담겨있다는 평가와 연결된다.

그럴 만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처지는 다급하고 절실하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비롯해 이재정 통일·송민순 외교부 장관 후보자 임명문제가 표류하고 있고, 국방·사법개혁안과 국민연금법·비정규직법 등이 처리되지 않고 있다. 새해 예산안 처리도 불투명한 상태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국정은 마비된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대선을 의식한 여야간 정쟁이 극심해지면서 국정 표류현상은 심화된다.

힘은 이미 약해져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고 열린우리당도 그렇다. 밀어붙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닐 뿐더러 그럴 힘도 없다. 차라리 주고받기를 통해 꼬인 실타래를 푸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여야정 정치협상회의는 노무현 대통령이 택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수다.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계산법'과 '복심'을 굳이 짚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개운치가 않다. 몇가지 점이 풀리지 않는다.

[궁금증①] 군소야당은 빼고 협상하려는 이유는?

우선 떠오르는 궁금증은 이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왜 군소야당을 배제했을까?


한나라당에게만 정치협상회의를 제안한 데 대해 민주·민주노동당은 당장 '제2의 대연정'이라며 맹비난하고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더구나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두 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왜 이런 사정을 무시했을까?

그래서 '전효숙 카드'를 사실상 포기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협상회의를 열자면 어차피 양보 카드를 내밀어야 하는 법. '전효숙 카드'가 그 1순위가 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되는 것.


이렇게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전효숙 카드'를 사실상 접었다면 민주·민주노동당을 향해 갈구하는 마음은 약화된다.

게다가 청와대는 정치협상회의 의제로 국정 현안 뿐 아니라 향후 국정운영방향을 제시했다. 1회성 협상 테이블로 끝내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점을 중시해서 보면 군소야당의 전략적 가치는 떨어진다.

여권에서는 정계개편 논의가 무성하다. 전면적이든 부분적이든 일단 시동이 걸리면 열린우리당의 규모는 축소된다. 설령 군소야당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해도 얻을 수 있는 표는 20표를 조금 넘는다. 과반수 표를 안정적으로 확보한다는 보장이 없다.

아무리 그래도 정치협상회의에 끼어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될 법도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민주노동당 간의 감정·노선의 골은 깊다. 한나라당만큼이나 협상이 쉽지 않은 상대다.

이런 상대를 정치협상회의에 모두 초대하면 다면협상을 해야 한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럴 바에는 한나라당만을 상대로 집중 협상을 하는 게 소득 면에서 훨씬 낫다.

[궁금증②] 여당발 정계개편은 어떻게 되는 거지?

얘기를 전개하다 보니 새로운 궁금증이 생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당발 정계개편을 피할 수 없다고 결론내린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이 의도했든 안 했든 정치협상회의가 가동되면 열린우리당의 입지는 극도로 좁아진다.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협상에서 열린우리당은 들러리 신세가 될 것이란 점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정치협상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열린우리당은 청와대는 물론 한나라당에도 각을 세울 수가 없다. 오히려 '공격 모드'를 '화해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정계개편의 동력이 약화 또는 상실된다. 열린우리당이 모색하는 정계개편은 '비노무현 반한나라당'을 축으로 삼고 있는데 이 축이 흔들려버린다.

뿐만이 아니다. 정치협상회의가 예상 외로 성과를 내면서 지속된다면 열린우리당은 정계개편의 시점마저 잃어버리고 노무현 대통령과 끝까지 함께 가야 하는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

양수겸장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정치협상회의는 정계개편을 막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계개편에 대비하는 이중 포석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여기엔 단서가 있다. 정치협상회의가 성사된다는 단서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바로 이 것이다. 이 단서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할 것인가?

[궁금증③] 세번째 퇴짜... 그 다음 카드는?

a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여야 대표 정치협상회의 제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여야 대표 정치협상회의 제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은 오늘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정치협상을 거부한다는 최종 입장을 정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노 대통령이 외교 안보라인 등의 인사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취해준다면 저절로 돌파구가 열린다, 꼭 청와대에서 만나 협의할 사항은 아니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없던 일'로 삼을 것인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그 순간 레임덕은 더 심화된다.

상황도 예사롭지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협상회의 제안은 사실 세 번째 제안이다. 지난해에 대연정 제안을 했고, 이달 초에 조건부로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제안한 바 있다. 물론 두 번 모두 퇴짜를 맞았다. 그리고 다시 세 번째 제안을 내놨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 매저키스트'가 아닌 이상 실패를 연거푸 자청할 이유는 없다. 그런다고 국정 표류 상황이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뭔가를 모색하고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이런 전망을 내놓는다. 한나라당이 정치협상회의 제안을 거부하는 순간 '국정 발목잡기' 정당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만큼 노무현 대통령으로선 밑져야 본전이라는 전망이다.

한편으론 맞지만 한편으론 틀리다. 그런 정치적 효과를 누릴 곳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이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선 그런 무형의 효과를 즐길 만큼 형편이 여유롭지가 않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주요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국정 마무리에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정치협상회의를 거부하는 순간 다른, 새로운 뭔가를 모색하고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다만, 기존 국정·의정 질서를 뛰어넘는 방안이 모색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조심스럽게 예견해 볼 수 있다. 정치협상회의가 기존 국정·의정 질서 속에서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카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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