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낡은 정계개편'을 넘어서자

[주장] 골리앗 정치 끝내고 생산주의 진보로 나아갈 때

등록 2006.11.28 11:27수정 2006.11.28 14:06
0
원고료로 응원
구약성경에 나오는 골리앗은 키가 3.8m에 이르는 거인이었다. 75㎏이나 나가는 갑옷을 입고 장대한 창칼을 휘둘렀다. 이에 주눅들은 이스라엘군의 공격은 지리멸렬했다. 그 때, 15세 소년 다윗이 나섰다. 사울왕이 하사한 갑옷을 마다한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기는 데 필요한 것은 날렵한 몸놀림과 돌멩이 5개 뿐이었다.

그리고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미국 국민들은 부시와 공화당을 심판했다. 민주당은 하원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상원·주지사 선거에서 모두 다수를 차지했다. 갤럽·CNN·ABC·USA투데이 등의 출구조사에서 일부 공화당 유권자와 부동층 유권자는 "부정부패와 오만한 태도 때문에 공화당을 버렸고, 이라크전쟁 때문에 부시를 버렸다"라고 밝혔다.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였던 톰 딜레이는 불법 정치자금으로 기소됐고, 마크 폴리 하원의원은 동성애 스캔들을 일으켰으며, 공화당 지도부는 이를 은폐 기도했다. 2번째 집권한 부시와 상하 양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오만이 결정적 패인인 셈이었다. 반면 민주당은 전통적인 당의 정체성을 기초로 이라크전쟁과 에너지·재정문제를 선거이슈로 삼아 정국을 주도했다.

a

부시 미 대통령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한 지 이틀 만인 지난 9일 하원의장으로 사실상 내정된 펠로시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를 만나 협조를 부탁했다. ⓒ 백악관 홈페이지

스웨덴의 9월 총선은 또다른 의미에서 음미해 볼 만하다. 선거 결과 보수당·자유당·중도당·기민당의 우파연합이 48%의 지지율을 얻어 46%를 얻은 집권 좌파연합을 꺾었다.

우파연합의 승리 요인은 캠페인 전략에 있었다. 먼저 대중적으로 민감한 이슈였던 실업률을 문제삼았다. 두번째, 4년 전 총선에서 급진적 시장주의 정책을 제시했다가 참패했던 우파연합은 '복지 체제의 큰 틀을 허물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미세개혁'으로 전략을 수정해 '중도' 노선를 선거 캠페인의 핵심기조로 정했다.

세번째,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승패의 분수령은 사민당의 오만이었다. 국민들은 요란 페르손의 대통령 전용기 도입과 청년실업 문제를 심각하게 여겼지만, 사민당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별다른 실업 대책을 내놓지 않았던 사민당은 투표일 10일 전에서야 민심을 읽고 뒤늦게 대책을 세웠다.

그러나 민심은 오만과 나태를 용서하지 않았다. 스윙 보우터 계층인 사무전문직과 전통적 사민당 지지층이었던 일부 생산직 노동자까지 사민당에서 등을 돌렸다. 결과적으로 2%의 패배였다. 우파의 기적적인 승리, 그것은 대중의 생존적 요구에 민감하게 대응했던 '깨어있는 정치'의 승리였다.

'좌파'도 '우파'도 한미FTA가 좋다?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이 대한민국 정치이다.

보수언론에 의해 '좌파'로 규정된 청와대가 한미FTA에 사생결단 식으로 나섰다. 소위 '집권 좌파정당'인 열린우리당은 당론도 정하지 못했고, 당 정책위 의장은 "북핵해결을 위해 한미FTA를 조속히 체결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거대야당 한나라당도 "한미동맹의 영속화를 위해 한미FTA를 차질없이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미FTA는 과연 무엇인가. 양국 정부는 "한미FTA가 개방과 경쟁을 통해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 모두가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이 FTA를 지렛대로 삼아 사실상의 경제통합을 추진하고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이식을 완수하겠다는 것'이 사안의 본질이다.

국제 통상협상은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해야 하는 원칙이 있고 협상은 상호적이라지만, 상대가 미국이다. 오스트레일리아가 '투자 조항'에서 투자자가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정부제소권' 부분을 뺀 것과 같은 지혜가 필요한데, 중간선거 이후 보호주의적인 미국 민주당 주도의 의회가 쉽사리 한국을 위해 양보를 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지금까지만 해도 한미FTA는 큰 불공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이 잃을 것은 너무 많고 분명한 데에 반해 얻어낼 것은 너무 적고 불투명하다. 농축산·투자·의약품, 금융, 문화와 미디어·공공서비스·지적재산권 등 FTA 협상의 핵심 의제에서 우리는 온통 미국에 내어줄 것밖에 없다. 정부가 처음부터 4대 선결조건을 보장하는 바람에 심각한 불평등을 전제로 해서 협상 아닌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한미FTA가 이대로 체결된다면, 한국은 미국의 국익과 국제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경제체제로 귀결될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FTA는 그간 1997년 체제 아래에서 진행되어 온 자산과 소득의 양극화·산업 양극화와 대한민국의 국제투기금융지대화를 부추길 것이고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협상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 협상팀과 국회 FTA특위를 이해당사자를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둘째, 투자자 제소권과 통상협정의 우선권을 제거하고 국내법을 우선하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셋째, 공공서비스와 국민의 건강권 등 공공성을 굳건히 지켜내야 한다. ▲넷째, 협상시한에 쫓기지 말고 불공정한 협상 자체를 보이콧하는 강공 카드를 내미는데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선거 때만 되면 사상의 적이고 이념의 적으로 돌변하던 여야가 한미FTA에는 똑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기성정치, 여야 정당정치에는 이념과 노선도 자신이 대표하는 계층도 민본정책도 없다. 정책은 행정부에 있고 경제관료들에게 있으며 '미국의존 성장제일주의'라는 교리를 전파하는 보수언론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골리앗, 그것은 거대 여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방후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끌었던 '성장주의 보수적 관료집단'과 '미국의존 보수언론'까지 포함하는 '보수레짐'으로 이해된다.

a

지난 10월 제주 서귀포시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4차 본협상 전체회의에서 한국측 김종훈 수석대표와 미국측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낡은 정계개편에는 감동이 없다

7.26 재보궐선거에서 참패를 면치못한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급기야 정계개편론이 불거져 나왔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반복되는 정계개편 논의는 '권력을 위한 부적절한 선거공학' '열린우리당의 비겁한 생존방식'이라고 국민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먼저 민주당과의 합당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통합신당론은 전형적인 지역주의 연합전술로 보인다. 국민들은 이미 2002년에 선거공학적 정계개편이 아니라 국민참여경선과 후보 단일화를 통해 '신선한 정치'를 경험한 바 있다. 단순히 다시 민주당과 합쳐서 '서부벨트'를 복원하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치적 퇴보로 여겨질 것이다.

대통령세력을 포함한 제 정파가 합의하여 '오픈 프라이머리'라는 마당에 '외부 선장'을 영입한다는 당 리모델링론도 정부여당을 비토하는 국민들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 대권과 의회권력을 주었는데도 원칙을 어기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무능한 집권세력이 반성을 하기는 커녕 권력연장에 매달리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통합신당도 아니고 당리모델링도 아니라면 길을 어디에 있을까. 현재의 대통령 지지도, 정당 지지도와 무당층의 구조를 보면 국민의 분노와 열망이 어디에 맺혀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도와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10% 수준으로 급락했다. 그사이 한나라당은 40%를 웃도는 정당지지도를 구가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7%, 민주당 7%, 산술적으로 3당의 지지도를 합산해도 한나라당의 절반 수준이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예뻐서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민심은 집권세력을 '때리고' 있다. 반면 무당층은 33%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과거 정치무관심층인 20대가 주종을 이루었던 무당층의 구조는 지금 30~40대가 70%를 차지하고 있다. 민심은 기성정치와 다른 그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97년 체제 하에서 국가의 역할은 축소되었다. 시장과 효율, 경쟁력과 유연성 담론이 선진화의 미명하에 한국사회의 지배자가 되었고, 정당과 정부는 자신을 선택한 지지층의 요구와 열망을 외면하고 약속을 위반하기에 급급하다. 반면 교육과 주거·보건의료·노부모부양·복지와 고용에 있어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이 시대의 가장들은 의탁할 곳이 없다.

부동산 대란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앗아갔다.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가장들은 아이들의 꿈을 지켜줄 수 없다는 자괴감에 지쳐간다. 꿈을 지켜줄 정치세력이 없고 국가가 없다는 것은 한 마디로 '정치적 공황'이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정치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의 정치개혁이 지역주의 극복을 기치로 선거제도와 정치자금제도에 국한되었다면, 정치혁신은 기존의 정치구조 즉 국민대중과의 소통을 외면한 보수적 여야대결 구조를 문제삼는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계개편이 기득권의 이합집산이라면, 소망되는 정치혁신은 권력의 주인인 국민이 정치혁신의 수요자로서 대중의 삶의 풍요를 목표로 한 정책경쟁의 정치를 지향한다.

혁신정치, 그것은 지역주의를 포함한 낡은 기득권 정치, 87년 체제하의 여야대결정치, 97년 체제하의 신자유주의 일방통행 정치를 거부하고, 민본민주-민생부국-민족평화번영의 기치하에 대중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새로운 유형의 선진정치이다.

혁신정치는 지역주의와 역지역주의를 비판한다. 권력의 성격을 민생으로 하기에 호남과 영남의 지역정치세력에게 귀속되지 않는다. 혁신정치는 '여야 대결주의'를 거부한다. 정치의 본질을 민본으로 하기에 지지계층에 조응한 정당체제 선진화를 달성하고 노선과 정책으로 승부한다. 또한 관료-재벌-언론 중심의 보수레짐과 혁신정치와의 관계를 생산적 갈등관계로 정립한다.

따라서 개헌과 관련해서는 민주헌정주의와 미국식 대통령제, 정당체제와 관련해서는 다당제, 의회개혁과 관련해서는 의회의 입법권 강화와 정당정치 강화, 선거제도와 관련해서는 정책전문화에 근거한 비례대표제 확대 등을 표방한다.

a

열린우리당은 지난 11월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공개적인 여권 정계개편 논의를 시작했다. 김근태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등 의원들이 의총장에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생산주의적 진보를 준비할 때

평화진보개혁의 대위기는 본질적으로 진보개혁의 사명을 이행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다. 대중의 삶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중시킨 죄가 제도정치권 진보개혁세력의 본죄이다.

87년 이후 제도권에 진출한 진보개혁세력, 현재의 열린우리당 뿐 아니라 2004년 선거에서 원내 3당으로 진출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을 포함해서, 제도권 평화진보개혁세력은 무능의 수레바퀴를 걷어차지 못했다.

무능한 열린우리당은 각종 선거결과를 통해 탄핵되었다. 그렇다면 어떤식으로든 재편되어야 마땅하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도 예외일 수 없다. 집권을 위해 또는 어떤 유력 대권주자 중심으로 헤쳐모이라는 말이 아니라, 노선과 정책을 중심으로 교집합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의 재편을 이행할 내부동력도 없고 기득권의 해체를 환영하는 분위기도 내부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를 가로막는 1등공신은 기득권이다. 집권여당 원내1당이라는 프리미엄, 지역정당이라는 기득권, 진보를 독점하는 선민주의. 작은 기득권들이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면서 공생하는 기형적 구조이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러한 구조로는 삶의 정치를 현실화할 수 없다. 혁신이 수반되지 않는 정계개편은 공학이고 도태된다. 평화진보개혁정치의 대통합과 혁신은 내부와 외부의 혁신세력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 내부의 혁신세력은 정책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북 햇볕정책 강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전환 추진, 국제 평화주의와 이라크파병연장 반대, 한미FTA에서의 불공정협상 반대, 민간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국가주도의 저가 아파트 공급, 비정규직 보호와 적극적노동시장 정책 강화, 거대자본의 사회적 책임강화, 공공서비스와 복지일반을 위한 재정확대 등 민족과 민생문제에 있어서 뚜렷한 입장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

시민사회운동으로 대표되는 외부의 혁신세력은 바야흐로 연대운동을 고조시키고 있다. 최근 시민사회 운동은 크게 두 가지로 발전하고 있다.

하나가 전통적인 민생개혁이슈를 중심으로 한 네거티브운동으로서 '반FTA운동'이 대표적이다. 광범위한 민중-시민연대를 발전시키고 있다. 두 번째가 정책혁신을 중심으로 한 포지티브운동으로서 경실련의 '아파트값 거품빼기 시민운동'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포지티브운동은 일부 정책전문집단의 정책창안운동과 적극적 정책공약감시운동인 메니페스토 운동 등으로 시민사회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적 연대가 필요하다. 통치 효율을 위한 대연정이나 집권을 위한 상층연합보다는 민주주의와 민생정책에 기초한 '아래로부터의 대연대'가 필요하다. 생산주의란 따라서 평화진보개혁의 자기혁신을 이른다.

생산주의는 바로 혁신의 내용 즉, 정치혁신과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노선을 중심으로, 궁극적으로 사회전체의 높은 생산성과 개개인의 삶의 풍요를 추구하는 '삶의 정치'를 말한다. 생산주의적 진보, 이상이 아닌 현실을 준비할 때이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7,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게 뭔 일이래유"... 온 동네 주민들 깜짝 놀란 이유
  2. 2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3. 3 팔봉산 안전데크에 텐트 친 관광객... "제발 이러지 말자"
  4. 4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5. 5 공영주차장 캠핑 금지... 캠핑족, "단순 차박금지는 지나쳐" 반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