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 사상검증, 면접위원의 자격을 묻는다

[유창선칼럼] '국가관' 내세운 폭력은 있을 수 없어

등록 2006.11.28 09:32수정 2006.11.2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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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진은 강의를 듣고 있는 사법연수원생들(이 기사와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은 강의를 듣고 있는 사법연수원생들(이 기사와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최근 치러진 사법시험 면접시험에서의 '사상검증' 문제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이번 사법시험에서 '부적격자'로 의심돼 심층면접을 받은 2차 합격자 26명 가운데, 7명이 최종 탈락하였다. 사법고시에서 면접시험 탈락자가 지난 10년 동안 단 1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전례없는 결과이다.

이같은 변화는 법무부가 인성평가를 중시하여 그동안 요식행위로 여겨졌던 면접시험을 대폭 강화해 나가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번 면접시험 과정과 결과는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단지 면접시험을 통한 탈락자 수가 늘어난 것 때문만은 아니다. 심각한 것은 면접의 내용이었다.

'주적' '북핵문제' 등이 단답형 질문인가

1단계 면접에서 "주적(主敵)은 미국이다"라고 대답했던 한 응시자는 26명에 포함되어 심층면접에 회부되었다. 이 응시자는 심층면접에서 "주위에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을 들은 걸로 답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다"며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핵은 우리나라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던 응시자도 심층면접을 받아야 했다.

두 응시자 모두 심층면접에서 탈락되지는 않고 구제된 것으로 알려지기는 했다. 7명의 최종 탈락자 가운데 '국가관'이 문제가 되어 탈락한 사람이 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유사한 질문들의 사례가 많았을 것임을 생각한다면, 이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응시자들의 정치적 견해나 현실인식에 따라 다양한 판단이 가능한 사안에 대해, 면접위원들이 특정 답변을 요구하는 듯한 분위기는 분명 문제가 있다.


우리의 '주적' 문제나 '북핵문제'에 대한 판단은 몇 마디의 단답형 답변을 통해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어느 하나의 답이 절대적으로 맞는 것이라고 강요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전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한 견해들 사이의 논쟁이 계속되어온 문제들이다. 오늘날 북한을 '주적'으로만 규정하는 데에도, 북핵문제의 책임을 전적으로 북한에게만 묻는 데에도 무리는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런 질문들을 통해 응시자의 국가관을 판단하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회내에 존재하는 사고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모습으로 생각된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우리 사회는 갈수록 다원화되고 있고 다양한 가치과 이념, 사고가 존재하고 있다. 거기서 어느 한 방향의 것이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것들은 배척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진보적인 사람도 보수적인 사람도 동등한 법조인

a <법률저널> 사이트 사법시험 '합격자 토론방'에 올라온 '심층면접' 관련 댓글들.

<법률저널> 사이트 사법시험 '합격자 토론방'에 올라온 '심층면접' 관련 댓글들. ⓒ <법률저널>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할 수 있는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한다. 법조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법조인력이 보다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각들을 균형있게 반영하며 통합하는 법조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관'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를 강요하는 사법시험이 된다면 이같은 기대는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같은 면접시험을 책임진 기관이 법무부라는 점에서 문제는 간단치않다.

정부기관이 사법시험 응시자들에 대한 국가관 확인을 통해 적격성 여부를 결정하는 상황이 계속될 때, 법조인력은 특정 정권의 입맛에 맞는 국가관을 가진 사람들로만 충원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법조인력은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도,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도 모두 동등하게 대우받으며 충원되어야 한다. 법치의식이 부재한 사람이라면 국가관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특정 사안에 대해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응시자들보다, 면접시험을 맡은 면접위원들의 적격성을 의심하게 된다. 냉전시대의 해묵은 '주적' 개념을 들먹이며 대한민국의 '주적'을 묻는 것도 그렇고, 북핵문제에 관한 생각을 묻는 것도 참으로 부적절해 보였다.

응시자보다 면접위원의 적격성이 더 의심스럽다

도대체 40분간의 면접을 통해 한 사람의 국가관과 윤리의식·인성을 평가하고 결론내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단순히 지식이나 표현력 등에 대한 측정이면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의 면접을 통해 한 인간의 내면을 '적격'과 '부적격'으로 판정내리는 행위는 참으로 무모한 일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또 하나의 폭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러워해야 하는 일이다. 국가관의 문제가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원했던 사법개혁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면접시험을 통해 특정 가치를 강요하고 인간의 내면을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사법개혁에 역행하는 일이다. 사법시험 면접시험의 재고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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