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 '친환경국가'? 모르시는 말씀

[해외리포트]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1위... 국제사회 비난의 표적

등록 2006.11.30 10:17수정 2006.12.0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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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greenhouse gas)는 국경이 없다. 영토, 영해와 마찬가지로 영공에 대한 권한은 해당국가에 있지만, 온실가스는 그런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지구는 하나. 이웃국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너무 많아 대기 중 가스의 농도가 짙어져도, 하늘에다 만리장성을 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막아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환경친화적인 국가로 알려진 호주가 뜻밖에도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1위 국가로 밝혀져서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게다가 온실가스 발생의 주된 요인이 되는 석탄수출 1위 국가라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환경 때문에 이민도 받지 않는다더니...

a 세계최대의 석탄수출항구인 뉴카슬 항에서 석탄수출 반대 시위 중인 그린피스 선박.

세계최대의 석탄수출항구인 뉴카슬 항에서 석탄수출 반대 시위 중인 그린피스 선박. ⓒ 그린피스 제공

어디 그뿐인가.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의 재난을 막기 위해 1997년 출범한 교토의정서에 서명하지 않는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과 호주다. 이쯤 되면 호주가 정말 친환경국가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호주는 오랫동안 '지구의 마지막 파라다이스'라고 불려왔다. 그런 평판의 저간에는 청정공기와 청정해역을 유지할 수 있는 많지 않은 나라 중의 하나라는 측면이 크게 작용했다.

한반도의 35배나 되는 광활한 국토에 2천만 명 남짓한 인구가 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호주정부는 산업화를 통한 경제적 이득을 포기하면서까지, 환경오염의 여지가 있는 산업은 철저하게 규제했다. 풍부한 지하자원 덕분에 그런 정책을 오랫동안 견지할 수 있었다.


호주가 '국가이기주의'라는 맹비난을 받으면서도 이민의 문호를 좁히는 이유도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환경운동가들은 호주의 적정인구를 현재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구증가와 환경오염은 정비례한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세계정상급 환경보호정책... 국내선 환경선진국


실제로 호주의 환경보호정책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가 환경정책을 잘 운용하려면 법적인 뒷받침이 필요한데 호주는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경쟁적으로 환경보호법(The Environment Protection Act)을 입법하여 발전시켜왔다.

1974년에 발효된 환경보호법이 구체적인 사례다. 지하수 및 운하 관리법, 원자력 관리법, 해저오염물질 관리법, 오염물질 수출입 관리법, 오존보호법(Ozone Protection Act) 등.

a 시드니 올림픽 당시 화제가 됐던 그린 앤드 골든 벨 개구리.

시드니 올림픽 당시 화제가 됐던 그린 앤드 골든 벨 개구리.

그렇다고 호주의 환경정책을 정부가 주도하는 건 아니다. 1000개도 넘는 환경보호단체의 적극적인(혹은 극성스런) 활동이 또 하나의 축을 이루는 것. 그들의 활동이 크게 부각됐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은 호주가 세계 톱클래스의 친화경국가라는 평판을 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환경 올림픽(Green Olympic)'을 내세운 홍보작전이 주효했던 것. 전 세계에서 몰려온 외신기자들이 스포츠 소식 못지않게 호주의 환경정책을 보도하는 일에 열을 올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멸종위기에 몰렸던 '그린 앤드 골든 벨 개구리(Green &golden bell frog) 구출작전'이었다. 개구리 수백 마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1천만 호주달러 이상의 손해를 감수하고 테니스 경기장과 태권도 경기장의 위치를 변경한 것.

밖에 나가면 망신당하는 호주의 환경정책

금년 11월 한 달 동안 열린 여러 국제회의에서 호주는 환경문제로 국제사회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그것도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등에서 난타 당하다보니 환경선진국의 자부심을 갖고 있던 호주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첫 번째가 11월 12일부터 1주일 동안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였다. 무려 168개국이 서명한 도쿄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아 정식 초청국가도 아닌 옵서버 형식으로 참가한 이안 캠벨 호주 환경장관은 미국, 캐나다 대표와 함께 비난의 표적이 됐다.

11월 18-19 양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에 참가한 존 하워드 총리와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도 온실가스배출 문제와 관련해서 곤욕을 치르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하워드 총리(2007년 APEC 의장)는 "2007년 APEC의 최우선과제가 청정에너지 개발 및 온실가스배출 억제방안 구축이 될 것"이라면서 한 발짝 물러섰다.

2001년, 교토의정서 서명을 철회한 부시 미국 대통령도 비난의 화살을 피해갈 수 없었다. 미국은 세계 온실가스의 39% 이상을 배출하는 최악의 국가. 이를 두고 앨 고어 전 부통령은 "이라크전쟁과 환경문제를 다루는 부시와 하워드가 마치 보니&크라이드(영화 <우리에겐 내일이 없다> 주인공으로 나온 갱단) 같은 행태를 보인다"고 비아냥거렸다.

총리와 외무장관, 환경장관이 해외에서 공격을 당하는 동안 피터 코스텔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안방에서 망신을 당했다. 11월 18일부터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선진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똑같은 내용으로 회의참가 대표들과 시위대의 비난을 동시에 받은 것.

가뭄, 홍수, 산불 등 자연재해의 주범은?

a 가뭄으로 메뚜기가 극성을 부리는 호주.

가뭄으로 메뚜기가 극성을 부리는 호주. ⓒ TWT

호주는 이산화탄소 발생의 주범인 석탄수출 1위 국가다. 그런데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 태양복사열이 대기권 밖으로 방출되지 못하여 지구의 기온이 올라간다. 바로 그 온실효과가 지구온난화의 주된 원인이 된다.

거기에서 파생되는 대표적인 피해사례가 가뭄, 홍수, 산불, 해수면 상승 등이다. 호주가 현재 겪고 있는 자연재해가 고스란히 그것과 일치한다. 그것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어, 토탈환경센터의 제프 엔젤 소장은 '자연의 복수' 또는 '부메랑 효과'라고 말한다.

지구남반부의 여름인 지난 11월 16일, 시드니 지역의 최저기온 8.3℃. 1905년 이후 101년 만에 기록된 최저기온이다. 이날, 시드니 인근에 위치한 블루마운틴에는 폭설이 내렸다. 더욱 기이한 현상은 블루마운틴 한쪽에서는 한여름의 불청객인 산불이 번져서 2주가 지난 지금까지 불길을 잡지 못한 상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호주의 가뭄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중남부 호주의 젖줄 같은 메레이-달링 강이 거의 바닥을 드러낼 정도다. 오죽하면 가뭄피해에 시달리는 농민들이 나흘에 한 명 꼴로 자살을 하겠는가. 한편 호주국영 abc-TV는 "지금의 상태는 호주가 강수량을 기록하기 시작한 1892년 이후 최악"이라고 보도했다.

최근 호주연방준비은행(RBA)은 가뭄으로 인한 농산물가격 앙등에서 비롯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이자율을 올렸다. 그럼에도 2006년 농산물 생산량이 50% 정도 감축될 것으로 예상되어 이자율이 한 번 더 올라갈 것이라고 금융전문가들은 예측한다.

국민 "환경 위해서라면 세금 더 내겠다"

11월 7일 <시드니모닝헤럴드>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참여한 호주인 91%는 환경문제가 기상이변의 주된 원인이라고 답했고, 63%는 필요한 경우 환경세금을 납부하겠다고 답변했다. 또한 비슷한 숫자의 응답자가 "환경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정당에 투표하겠다"고 답변했다.

환경문제가 호주의 최대 정치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 지난 11월 25일에 치러진 빅토리아 주 선거에서 환경문제와 노동문제를 선거이슈로 삼은 노동당 스티브 블랙 주 총리가 3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선거에서 녹색당이 강세를 보인 것도 환경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a 시드니의 환경오물을 자연에다 버리지 말라고 캠페인을 벌이는 제프 엔젤 TEC 소장.

시드니의 환경오물을 자연에다 버리지 말라고 캠페인을 벌이는 제프 엔젤 TEC 소장. ⓒ 윤여문


지난 11월 3일, 시드니에서는 대규모 환경 관련 시위가 열렸다. 시위현장에서 만난 토탈환경센터 제프 엔젤 소장은 "호주정부가 환경정책을 국내와 국외의 2중 기준(double standard)을 적용하는 것은 난센스다. 지구가 한 덩어리이기 때문에 자연재해는 함께 당한다"고 강변했다.

그는 이어서 "호주 자연재해의 최대요인들인 엘리뇨 현상과 지구온난화 등은 온실가스배출과 직접 관련이 있다"면서 "남극 상공의 오존층 파괴로 피부암 발생 1위의 국가인 호주가 교토의정서에 서명하지 않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엔젤 소장은 지구온난화문제 연구로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학자다. 그가 기자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시위대열의 선두로 나가서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친 구호가 오랫동안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온실가스는 국경이 없다. 지구는 하나다. 그 지구가 앓고 있다. 지구의 복수가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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