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스러운 성품이란 어떤 것일까?

[서평] 제임스 레이첼즈의 <도덕철학의 기초>

등록 2006.11.30 13:22수정 2006.11.3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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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임스 레이첼즈의 <도덕철학의 기초>.

제임스 레이첼즈의 <도덕철학의 기초>. ⓒ 나눔의집

제임스 레이첼즈의 <도덕철학의 기초>는 ‘도덕이란 무엇인가?’로부터 ‘바람직한 도덕이론이란 무엇인가?’까지 열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게는 네 개의 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부에서는 도덕개념을, 제2부 ‘메타윤리학의 이론들’에서는 윤리 상대주의(문화 상대주의와 윤리적 주관주의)와 윤리 절대주의를, 제3부 ‘규범윤리학 이론들’에서는 목적론적 윤리이론(‘이기주의’와 ‘공리주의’를 중심으로)과 의무론적 윤리이론(‘칸트의 윤리이론’과 ‘사회계약론’을 중심으로)을 각각 다루고 있으며 제4부 ‘새로운 윤리의 모색’에서는 칸트주의와 공리주의에 대한 대안 윤리로서 여성주의 윤리이론과 덕의 윤리를 내놓고 있다.


각각의 부가 끝나는 지점에 역자의 해설을 붙여놓은 것은 이 책의 친절한 점이다. 정리가 잘되어 있어 본문을 읽고난 후 이 해설문을 읽는다면 한결 이해하는 데 수월할 것이다.

‘이기주의’는 ‘심리적 이기주의’와 ‘윤리적 이기주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심리적 이기주의의 입장에서만 보면 인간은 진정으로 이타적일 수는 없다. 이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적 이기주의’는 각 개인이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 책은 각각의 지지 논거와 반박 논거를 동시에 제시하여 줌으로써 읽는 이가 여러모로 생각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그리고 이러한 양면의 조명을 통하여 해당 이론의 한계를 밝혀주기도 한다.

흔히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일컬어지는 ‘공리주의’의 접근 방식을 ‘안락사’와 ‘인간 이외의 동물’을 사례로 들어 설명하는 부분은 공리주의를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된다.

우선 ‘안락사’의 경우 기독교적 전통의 교리에서 보면 “죄가 없는 사람을 고의적으로 죽이는 것은 항상 옳지 않다”는 규칙에서 잘못된 것이지만, 공리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선택이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어떤 행위가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게 되는가?’ 등등의 물음을 거쳐 안락사는 도덕적으로 옳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벤담은 공리주의자들이 신을 자비로운 창조자로 인식하는 관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종교적 가르침은 비난 없이 공리주의적 시각을 인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88쪽)

‘인간 이외의 동물’의 경우에는 어떨까? 전통적 교리에서 보면 동물은 이성적 존재도 아니고 영혼도 없으며 도덕적 존재도 아닌 다만 인간의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한 개체에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이성적인 존재인지 아닌지는 문제의 중심에 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비록 그것이 동물일지라도 그 개체가 행복과 불행, 즐거움과 고통을 경험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이다.


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혁명적인 것은 동물의 이익도 중요하다는 사상이다. (중략) 공리주의는 이런 기본 가정(인간만이 도덕적으로 고려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에 도전하면서 도덕 공동체의 범위를 확장해서 우리의 행위에 의해 영향을 받는 모든 피조물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7쪽)

제9장 ‘절대적 도덕규범이란 존재하는가?’에서는 원폭 투하를 명령한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과 이를 반대한 엘리자베스 앤스콤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가 있다’는 앤스콤의 핵심적인 주장도 함께 들려준다.

칸트의 ‘정언명령(定言命令)’이라는 개념을 ‘가언명령(假言命令)’과 비교하면서 풀어주기도 한다. 즉 도덕적 요구는 ‘가언적-만약 당신이 무엇무엇을 원한다면, 그것을 해야만 한다는’이지 않고 ‘정언적-당신은 이러이러한 것을 해야만 한다는’이라는 것이다.

칸트는 우리에게 욕구가 있기 때문에 가언적 “당위”가 가능한 것처럼, 정언적 “당위”는 우리에게 이성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정언적 “당위”가 이성적 행위자에게 구속력이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이성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칸트에 의하면 정언적 당위는 모든 이성적 인간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원칙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원칙을 “정언명령”이라고 명명했다. (227쪽)

제10장 ‘칸트와 인간 존중’에서는 범죄자의 처벌에 대한 칸트와 공리주의자 간의 입장차를 확인할 수 있다. 칸트의 입장에서는 범죄자가 고통을 받는 것은 마땅한 일로 여겨지지만, 공리주의자의 입장에서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 단지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 이외에 다른 선한 목적에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를 고려하게 된다. 그래서 공리주의자는 범죄자의 ‘처벌’보다는 오히려 ‘치료’ 쪽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의 입장이 각별한 점은 사람들을 이성적 존재로 대하라는 사상과 처벌을 연결시킴으로써 응보주의 이론에 새로운 깊이를 부여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제11장 ‘사회계약사상’에서는 ‘자연 상태’에서 ‘사회계약’으로 이행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특히 ‘자연 상태’와 ‘사회계약’ 그리고 ‘사회계약론의 도덕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맥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어서 ‘죄수의 딜레마’와 ‘도덕에 관한 사회계약론의 이점’ 그리고 ‘시민불복종의 문제’ ‘사회계약론의 난점’ 등을 다룬다.

제4부 ‘새로운 윤리의 모색’에서는 대안 윤리로 내놓고 있는 제13장 ‘덕의 윤리’를 관심 있게 읽었다. 313쪽 상단에는 앞에서 논의되었던 윤리적 이기주의, 공리주의, 칸트의 이론, 사회계약론을 각각 한두 문장으로 압축해 놓고 있어 앞서 본 내용들을 좀더 선명하게 해 준다.

앤스콤은 근대 도덕철학자들이 집중해 왔던 의무, 책임, 옳음 등의 개념들로부터 벗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접근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핀콥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덕의 성격적 특성을 드러내는 “습관적”이라는 말을 보완하여 미덕과 악덕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할지 또는 피해야 할지 결정할 때 참고하는 자질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미덕’과 ‘도덕적 미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준다.

미덕을 습관적인 행위에서 나타나는 성격적 특성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으면 좋은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도덕적 미덕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으면 좋은 덕목이다. (315~316쪽)

책에서는 여러 미덕들 가운데서도 ‘용기’, ‘관대함’, ‘정직’,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충실’을 예로 들어 논하고 있는데 특히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충실’ 부분은 흥미를 일으킨다.

‘덕 이론’은 ‘성품’에서 출발한다는 측면에서 일정한 의미를 주고는 있지만, ‘우리가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방법이 불명확하다’는 등의 문제가 있어서 그 자체로 완전한 이론이라기보다는 총체적인 윤리이론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고 저자는 결론짓는다. 그러면서 옳은 행위에 대한 적절한 개념과 그와 관련된 덕스러운 성품이라는 개념을, 두 개념 모두에 공정을 기하는 방식으로 조화시킬 수 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제임스 레이첼즈 / 펴낸날: 2006년 9월 20일 / 펴낸곳: 도서출판 나눔의집 / 책값: 1만 5000원

덧붙이는 글 * 지은이: 제임스 레이첼즈 / 펴낸날: 2006년 9월 20일 / 펴낸곳: 도서출판 나눔의집 / 책값: 1만 5000원

도덕 철학의 기초

제임스 레이첼즈 지음, 김기덕 외 옮김,
나눔의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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