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116회

영원 속으로

등록 2006.12.01 16:45수정 2006.12.0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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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인가."

남현수는 혼잣말을 중얼거린 후 너무 오지까지 온다며 불평을 늘어놓는 현지 안내인에게 두둑한 팁을 지불해 되돌려 보내고서는 GPS 수신 장비로 다시 한번 좌표를 확인했다. 주위 풍경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잠시 몽환상태에 빠졌을 때 보았던 것처럼 주위가 검은 색으로 뒤덮여 있지도 않았고 이따금씩 새때들이 날아오르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내가 뭘 어쩌자고 이곳까지 왔을까."

남현수는 허무하게 웃음을 지었다. 남현수의 생각과는 달리 그곳에는 마르둑도 김건욱도 보이지 않았다.

'지구생명의 유전자와 하쉬의 유전자가 혼합된 새로운 생명이 탄생된다더니.'

남현수는 여지까지 접해보지 못한 괴물과도 같은 생물을 상상하며 홀로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하쉬의 외계인들이 축적한 지식까지 갖춘 생명이 이런 곳에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마 전 지구적 재앙이라며 큰 소동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남현수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나 평이했고 한가로울 따름이었다. 남현수의 눈에 유독 우람하게 솟은 나무 한그루가 눈에 띄었다. 그곳은 해당 좌표와 거의 동일한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남현수는 나무 가까이로 가 나무를 어루만졌다.

"끼루 끼루 끼루……"


나무속에서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자 깜짝 놀란 남현수는 성큼 뒤로 물러섰다. 그 노래 소리는 단순 했지만 아름다운 음정을 가지고 있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듯 했다. 남현수는 소리가 난 나무껍데기의 색이 조금 틀리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안에 뭐가 있는 거야?'


남현수는 단단한 나뭇가지를 주워 조심스럽게 나무를 찔러 보았다. 나무는 썩은 것처럼 금방 휑하니 구멍이 뚫려 버렸다. 그와 동시에 노래 소리는 뚝 끊겼고 남현수는 그 안에 가죽공과 같은 것이 오글거리는 것을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이게 뭐야.'

남현수는 나뭇가지로 그것들 중 하나를 끄집어내었다. 그것은 바닥에 툭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케엑!"

가죽공과 같은 그것은 짧고 작은 손과 발이 달려 있었으며 크기는 사람의 주먹보다 조금 작은 정도였다. 커다란 비취빛 눈에 작은 입을 가지고 마치 얼굴만 있는 듯한 그 생물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겨우 이런 하잘 것 없는 생물이 하쉬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단 말인가.'

그 생물은 뒤뚱거리며 다시 나무위로 올라가려 애를 썼다. 나무속에는 그와 같은 생물이 네 마리가 더 있었다. 남현수는 그것이 지구생명의 유전적 특징을 물려받아 지구의 환경에 온전하게 적응하게 된 하쉬의 생명임을 알 수 있었다. 나무 위로 올라가려는 놈을 다시 넣어준 뒤 남현수는 이런 생명체가 더 있나 싶어 해가 질 때까지 사방을 돌아 다녔다. 하지만 더 이상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겨우 네 마리의 하잘 것 없고 약한 생명이 하쉬의 생명을 이어주며 지구의 환경에 적응한 생명인 셈이었다. 남현수가 마음만 먹는 다면 그 생명들을 금방이라도 없애버릴 수도 있었다.

'꿈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로서 하쉬의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았던가.'

남현수는 자신이 밟고 서 있는 땅을 둘러보았다. 외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작은 생명체가 자신의 몸으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몸 안에 똬리를 튼다면 그것만큼 기분 나쁜 일도 없을 거라고 남현수는 생각했다. 하지만 남현수는 직감적으로 그런 생명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약하디 약한 저 네 마리의 생명뿐이었다.

모든 것은 남현수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는 마르둑이 말해줬듯이 분명 지구의 생명 그 자체였다. 이제 그에게는 온전히 지구의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한 이 낯선 생명체들을 놓아두느냐 마느냐의 선택이 남아 있었다. 지구 생명의 유전자를 지닌 하쉬의 생명체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모른 채 여덟 개의 눈을 말똥말똥 뜬 채 남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12월 4일 마지막회가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12월 4일 마지막회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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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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