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115회

영원 속으로

등록 2006.11.30 16:42수정 2006.11.3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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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지구의 생명이시여! 그럼 하나 되는 날까지 편안히 있기를 바랍니다!

남현수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남현수가 앉아있는 곳은 대학 캠퍼스의 벤치였고, 지나가는 몇몇 학생들은 대낮부터 식은땀을 흘리며 낮잠에서 깬 남현수를 알아보고서는 킥킥거리기도 했다.


'그 놈의 사이코메트리 증폭기인가 때문에 뇌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남현수는 땀으로 축축해진 몸을 뒤척이며 서둘러 연구실로 돌아가 문을 잠그고 오후 강의를 모두 휴강으로 처리하고서는 옷도 벗지 않고 간이침대에 몸을 뉘었다.

남현수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새벽녘 문틈으로 무엇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로 인해서였다. 너무 오래 누워 있어 허리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던 터라 남현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희미하게 빛이 들어오는 문틈을 보았다. 그곳에는 신문하나가 바닥에 길게 펼쳐져 있었다. 남현수는 신문을 받아보지 않았던 터라 이상하게 여기며 신문을 주워들고 불을 켰다. 밝은 불이 남현수의 시신경을 잠시 마비시켜 남현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신문지를 구겼다가 책상에 아무렇게나 펼쳐 놓았다.

'외계인의 지구 순회는 사기극'

남현수는 눈에 확 들어오는 기사제목을 접하고 해당 기사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1년간의 외계인 지구순회는 각국의 여러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세계의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며 대중에게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파할 이벤트를 마련하느라 꾸민 치밀한 기획이었으며, 그 배후로서 미국의 천문학자 브라운 박사, 독일의 지질학자 슈바르츠 박사, 일본의 공학박사 이시무라 박사, 한국의 인류학자 남현수 박사가 지목되고 있다. 이들은 각기 이러한 지적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남현수는 읽은 신문은 <데일리 연예>라는 비교적 공신력이 떨어지는 신문이었다. 이 신문은 전혀 근거 없는 소문도 기정사실화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고, 외계인 사기극의 출처도 미국의 한 이름 없는 3류 주간지에서 발췌한 것이었다.


'누가 여기서 내 이름을 보고 던져 넣은 것이군.'

남현수는 신문을 구겨 쓰레기통에서 던져버리려다가 기사에 있는 마지막 한 줄을 보고서는 흠칫 놀랐다.

'한편 남현수 박사는 연구를 위해 곧 케냐로 출국할 예정이라며 본지와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터무니없는 기사였지만 남현수는 묘하게 자신의 일정이 이미 잡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남현수의 눈에 하단에 이런 제목의 한 줄 광고도 눈에 띄었다.

'김건욱씨 연락요망 케냐 SE 102X-XXX-35XXXXXXX'

'김건욱? 케냐? 케냐로 거는 국제전화 번호인가?'

남현수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한참 후에 신호가 가더니 딱딱한 어조의 음성이 들려왔다.

"즉시 케냐로 오십시오.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남현수가 뭐라고 말을 할 틈도 없이 전화는 뚝 끊기고 말았다. 남현수가 다시 해당 번호를 눌렀지만 전화는 신호음도 없이 다시 연결되지 않았다.

'나도 케냐로 다시 가려던 참이었어. 그런데 어딘지 알 수가 있나.'

남현수는 다시 침대로 가 벌렁 누운 후 눈을 감았다. 순간 남현수는 다시 벌떡 일어나 한 줄 광고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건 케냐에 연결되는 국제전화 번호가 아니야.'

남현수는 지도 컴퓨터를 켠 후 세계지도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에 접속하여 남쪽 방향의 좌표 7자리와 동쪽 방향의 좌표 8자리를 광고에 나온 숫자로 입력했다. 화면에 뜬 지구본이 한 바퀴 핑그르르 돌더니 정확히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곳은 케냐 내륙의 어느 외딴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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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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