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업자라도 2년 전에 해고시키겠다"

비정규법안을 바라보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시선

등록 2006.12.02 14:52수정 2006.12.0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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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민주노총 소속 1만여명은 1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비정규직법안 무효'를 주장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다수 참가했다.

민주노총 소속 1만여명은 1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비정규직법안 무효'를 주장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다수 참가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2년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준다고? 행여라도. 웃기는 소리들 한다. 열악한 용역업체들이 우리를 정규직으로 해줄 수 있겠나. 도시철도공사와 계약이 만료되면 그냥 떠나가는 업체들이 우리를 어떻게 책임지나."(이덕순·57·여성연맹 서울지역 여성노동조합 지하철차량기지 청소용역 지부장)

"통과된 비정규직법안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나락으로 내모는 법이다. 안 그래도 많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앞날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됐다."(김소연·37·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기륭전자분회장)


435만 5천명. 전체 여성 임금노동자(644만명)의 68%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국회가 지난달 30일 비정규직 노동3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법·파견근로자보호법·노동위원회법)을 통과시킨 가운데 이에 반발하는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20대부터 중장년층 여성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공장 제조업에 종사하던 젊은 여성부터 지하철 청소를 담당하는 중년 여성들까지, 점차 증가하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반영하는 듯했다.

이들은 비정규직법안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다 죽이는 법"이라고 일축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2년 고용 이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법안 내용에 대해 "웃기는 소리 말라"고 코웃음을 쳤다.

지하철 청소원 "법안 통과되던 날 잠도 안와"


a 이덕순 여성연맹 서울지역 여성노동조합 지하철차량기지 청소용역 지부장

이덕순 여성연맹 서울지역 여성노동조합 지하철차량기지 청소용역 지부장 ⓒ 오마이뉴스 이민정

이덕순 지부장은 "법안이 통과되던 날 밤 잠이 오지 않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내가 사업자라도 비정규직 근무 기간이 2년을 넘으면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겠다"며 "해고시키고 새로운 비정규직 인력을 채용하지, 왜 정규직으로 채용해주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지하철 청소 경력 5년인 그는 지금은 청소일을 그만두고 3년째 노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 지하철공사가 입찰을 통해 3년 단위로 용역업체를 정하면, 업체는 대부분 중년 여성인 청소원을 고용한다. 지난해 5월 계약이 만료됐고, 내년 7월부터 비정규직법이 적용된다.


이 지부장은 "비정규직 2년 고용 이후 사유제한을 꼭 둬야 한다"며 "많은 동지들이 2년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단결 투쟁에 나서야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일 뿐"이라고 우려했다.

이 지부장은 "그나마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열악한 환경이 개선됐지만, 1년 365일 쉬지 않는 지하철 청소는 동지들에게 큰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설립 5년째인 노동조합은 점심시간 한 시간 확보 등 근무환경 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단다.

그는 "지하에 잠시 들르는 승객들조차 지하 공기가 나쁘다고 하는데, 하루 8-9시간씩 머물러야 하는 우리는 한 번 감기가 들면 낫지도 않는다"며 "비정규직이라 자리를 비울 수도 없어 병원도 제대로 못 가지만 하소연 할 곳도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호텔방식 청소'라고 하면서 역사 바닥에 광내는 작업도 해야 한다. 힘센 기계를 누르고 있자니 어깨가 결리고 너무 힘들다. 쉬는 시간도 없고, 하루 종일 기계를 잡고 있어야 한다. 하루에 몇십만 승객들이 왕래하는 바닥을 반짝반짝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 동지들이 말도 못하게 혹사당하고 있다."

하지만 주당 48시간 일해 시간 외 수당까지 합친 한 달 월급은 90만원 정도. '월급을 올려달라', '청소물품이 잘못됐다'는 불만을 나타내면 곧바로 업무에 대한 지적이 들어와 청소한 곳을 다시 쓸고 닦아야 하는 무언의 '처벌'이 따른다.

법안 통과 당시 국회 앞을 지키고 있었던 이 지부장은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고 하는데, 기가 막히더라"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냐, 국회의원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사업주를 위한 법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장 노동자 "이제 정규직 뽑는 회사 없을 것"

a 김소연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기륭전자분회장

김소연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기륭전자분회장 ⓒ 오마이뉴스 이민정

김소연 분회장은 "이제 정규직을 뽑는 회사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비정규직법은 노동자에게 '회사의 불법파견을 보고도 2년 동안 아무 말 하지 말라'는 뜻"이라며 "고용 의무가 생기기 전에 어느 노동자가 회사의 불법을 고발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 분회장은 저임금, 손쉬운 해고 등의 이유를 들어 비정규직 채용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회사가 불법파견업체로 지적받기 전에 합법적인 도급으로 전환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채용할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작업복만 바꿔 입혀놓고 실제로는 원청업체가 관리한다"고 기륭전자를 꼬집었다.

기륭전자는 지난해 8월 서울관악지방노동사무소로부터 불법파견을 지적 받았다. 하지만 직접고용을 요구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량 해고됐고, 180여명의 생산라인 여성 노동자들은 그때부터 투쟁을 시작했다. 대부분 생계가 어려워 지금은 40여명만 남아있다.

김 분회장은 "임금이 적은 생산라인은 대부분 여성"이라며 "몸이 아프다고 조퇴하면 회사는 '차라리 집에서 영원히 쉬어라, 너 말고 사람 많다'고 하니, 제대로 쉴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비정규직 법안은 정작 비정규직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법안 통과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고, 조합원들의 부모님들이 '너희 이제 정규직 되는 것이냐'며 전화를 했더라. 언론이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열심히 싸웠는데, 더 힘들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회사는 분명 '직접 고용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할텐데…."

그는 지난 2002년 기륭전자에 입사해 현재 해고된 상태다. 그와 조합원들이 비운 자리는 또다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채웠다. 그는 "답답하다"며 "그 분들도 잘못된 것을 알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해고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미 투쟁기간이 1년이 지났는데, 파업까지 해봤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며 "비정규직 법안은 통과됐지만, 과연 조합원들에게 희망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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