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 돕는 개구리

[둠벙 이야기 3] 개구리 울음소리는 둠벙이 깨어나는 소리

등록 2006.12.03 08:27수정 2006.12.0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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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2월 초순, 입춘이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몇날 며칠 따사로운 볕이 대지를 뒤덮었습니다. 얇게 깔려 있던 둠벙의 살얼음마저 녹이고 있었습니다. 그 볕에 감사하며 나는 둠벙 바로 옆에 세워놓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부엽토와 쌀겨를 이용해 거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언 땅이 조금씩 풀려나가고 있었지만 아직 밭을 일구기에는 일렀습니다. 하지만 비닐하우스 안의 흙은 부드러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 또 다른 비닐 터널을 만들어 상추나 시금치 등을 갈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일손을 놓고 가만히 귀 기우려 보았습니다. 분명 개구리 울음소리였습니다. 둠벙 쪽이었습니다. 아직 언 땅도 채 풀리지 않았는데 벌써 개구리가 나왔단 말인가?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여름 내내 무논에서 수없이 들어왔던 개구리 소리와는 또 달랐습니다. 한여름의 개구리들이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이라면 이른 봄 개구리들은 실내악처럼 잔잔했습니다. 짱짱한 얼음 속에 잠들어 있던 둠벙이 이제 마악 깨어나는 소리였습니다. 겨우내 어떤 미세한 소리는 물론이고 꼼지락거리는 생명체조차 느낄 수 없었던 둠벙이었습니다. 그저 바람 소리만 떠돌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이른 봄 개구리 소리는 생명이 움트는 소리였습니다. 움터 오르는 새싹을 볼 때처럼 어떤 생명력이 느껴져 왔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 가며 둠벙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둠벙 가까이에 다가가기도 전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딱 멈췄습니다.

그 다음날에도 역시 둠벙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숲속 부엽토에서 혹은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마 악 깨어난 수컷 개구리가 암컷 개구리를 부르는 소리 같았습니다.


"자식들, 잠깐 기달려라, 어디 낯빤대기 줌 보자."

이번에는 녀석들의 모습을 붙들어 놓기 위해 캠코더와 디지털 카메라를 동원해 조심스럽게 접근해 보았습니다. 살금살금 다가가 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전 날처럼 둠벙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음반의 전원을 끌 때처럼 갑자기 개구리 울음 소리가 멈췄습니다.


눈으로 둠벙 구석구석을 훑어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개구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은 막대기로 수생식물들이 녹아 있는 수풀을 들춰 보았지만 개구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풀 깊숙이에 납작 엎드려 몸을 숨기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며칠쯤 지났습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이른 봄바람은 여전히 차가웠고 비닐하우스 안에는 상추며 시금치 싹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a 살얼음 속에서도 끄떡없는 개구리알

살얼음 속에서도 끄떡없는 개구리알 ⓒ 송성영

2월 하순, 둠벙에는 살얼음이 얇게 깔려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살얼음 속에서 생명이 움트고 있었습니다. 개구리 알 이었습니다. 열흘 전쯤에 들렸던 개구리 울음 소리는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소리가 분명했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울음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사랑을 맺기 위한 노래, 세레나데였던 것입니다. 그 사랑의 결실로 개구리 알이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경칩을 열흘쯤 앞두고 있었습니다. 개구리가 땅에서 나온다는 경칩인데 이상기온 현상 때문에 예전보다 일찍 알을 낳았는지도 모릅니다.

a 우리집 곰순이와 올챙이 알 관찰하는 아이들

우리집 곰순이와 올챙이 알 관찰하는 아이들 ⓒ 송성영

2월 하순. 내내 둠벙은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했지만 개구리 알은 끄떡없었습니다. 우리 집 개 곰순이와 아이들도 둠벙으로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물가에 머리를 맞대고 연필로 개구리 알을 그렸고 이 산 저 산 뛰어다니던 곰순이 녀석은 둠벙에 코를 박고 벌컥 벌컥 목을 축입니다.

"아빠 개구리 알 먹어 봤어?"
"아니."

"개구리는?"
"먹어 봤지."

"맛이 어뗘?"
"그냥 고기 먹는 맛인 거 같았는디, 다 잊어 버렸어."
"개구리를 왜 먹어?"
"그때는 먹을 게 별로 없었고 개구리들이 엄청 많았거든."

내 어린 시절에는 먹을 것이 별로 없어서 통통한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 먹기도 했습니다. 그때 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사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 개구리 알을 먹고 또 개구리를 통째로 삶아 먹고 있습니다. 먹을 게 별로 없어서 먹는 게 아니고 좀 더 많이 먹기 위해, 몸보신을 위해 먹고 있습니다.

a 알에서 마악 깨어난 올챙이들

알에서 마악 깨어난 올챙이들 ⓒ 송성영

3월 초순. 경칩이 지나면서 개구리 알이 눈에 띄게 커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개구리 알이 올챙이가 되기까지 기온에 따라 20~30일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3월 하순, 춘분이 지나자 알에서 나온 올챙이들이 꼬물꼬물 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수백 개의 음표가 찍혀 있는 악보가 살아 움직여 화창한 봄날을 연주하는 것 같았습니다.

올챙이들이 꼬물거리기 시작할 무렵 이른 봄에 만들어 놓은 거름을 넣고 채소밭을 갈았습니다. 채소밭을 갈아 비닐하우스 안에서 키운 모종을 옮겨 심고 또 다른 씨를 뿌렸습니다. 그 무렵 무더기로 떼 지어 있던 몸집이 커진 올챙이들이 알집에서 벗어나 여기 저기 무리지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a 한여름 올챙이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한여름 올챙이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 송성영

하지만 여름 문턱으로 다가갈수록 둠벙의 올챙이들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대부분 올챙이들은 천적들에 의해 잡아먹히고 살아남은 녀석들은 둠벙 위에 떠올라 어쩌다 그 모습을 보일 뿐이었습니다.

온도와 먹이가 얼마나 충분한가에 따라서 올챙이에서 개구리가 되는 기간은 2~3개월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마가 끝나갈 무렵, 앞다리가 쑤욱 뒷다리가 쑤욱 나온 참개구리 녀석들이 하나 둘씩 그 모습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수천 개의 알 중에서 수백 마리의 올챙이가 되어 다시 여러 천적들에게 잡아먹히고 겨우 살아남은 녀석입니다. 수억 개의 정자 중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말입니다.

채소밭이 푸르게 변할 무렵 제법 뒷다리가 통통해진 녀석들이 둠벙 가로 뛰쳐나와 농사일을 도와 주기 시작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는 채소밭은 벌레들이 아주 많습니다. 벌레들은 농약이 없는 맛있는 채소들을 아주 잘 먹습니다. 나 또한 맛있는 채소를 먹기 위해 벌레들을 잡아 줘야 합니다. 벌레들이 다 먹기 전에 거의 매일같이 채소밭에 나와 손으로 잡아 줍니다. 하지만 손으로 잡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a 채소 밭에 가장자리에 보이기 시작한 참개구리

채소 밭에 가장자리에 보이기 시작한 참개구리 ⓒ 송성영

마저 잡지 못한 벌레들은 개구리들이 잡아 줍니다. 나는 벌레들을 잡아먹지 못합니다. 하지만 벌레들이 채소를 맛있게 먹는 만큼이나 개구리들은 벌레들을 아주 맛있게 먹습니다. 만약 채소밭에 농약을 쳤다면 개구리들은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개구리들이 몸을 숨길 풀숲도 없어질 것이고 잡아먹을 벌레들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벌레들을 다 잡아 줄 만큼 개구리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벌레들이 너무 많아 올해 채소 농사가 시원찮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은 있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둠벙에서 자란 개구리들을 비롯한 또 다른 천적들이 더 많이 늘어 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채소밭의 벌레들은 그만큼 적어 질 것입니다.

결국 나와 개구리는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돕고 사는 존재인 것입니다. 농사짓는 나는 둠벙을 만들어 개구리들이 알을 낳고 올챙이들이 성장 하게 될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또한 개구리들은 그 보답으로 농사일을 도와주는 것이지요.

덧붙이는 글 | 지난 1년 반 동안 둠벙을 관찰해 왔습니다. 앞으로 둠벙에 얽힌 얘기들을 계절별로 올릴 계획입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1년 반 동안 둠벙을 관찰해 왔습니다. 앞으로 둠벙에 얽힌 얘기들을 계절별로 올릴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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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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