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순이는 '개밥'에 유혹 당하지 않는다

한미FTA 추진하는 정부, 과연 이 깨달음을 알고 있을까

등록 2006.12.04 18:19수정 2006.12.0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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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우리 집 개, 곰순이 녀석이 부쩍 컸습니다. 아이들 몸집만큼이나 자랐고 힘도 그만큼 세졌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낑낑거리며 겨우 들어 안을 수 있을 만큼 굵은 나무토막에 목줄을 연결해 놓았는데 그걸 굴리고 다닐 정도로 힘이 엄청 세졌습니다. 말귀도 썩 잘 알아듣습니다.


"나 밭에 갔다 올게 잉. 전화 오믄 밭에 있다구 혀."

@BRI@뒷밭으로 나설 때마다 아내에게 신고를 하고 나서는데 녀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줄에서 빠져나옵니다. 노루처럼 펄쩍 펄쩍 뛰면서 따라옵니다. 평소에는 목줄에 묶여 얌전히 있다가도 밭에만 가면 흥분을 합니다. 녀석이 설마 밭에 간다는 말을 알아듣는 것일까요?

그래서 그냥 장난삼아 마루에 걸터앉아 "밭에 간다"고 내뱉었더니 녀석이 앞발을 치켜들며 낑낑거리기 시작합니다. 분명 밭에 간다는 말을 알아듣는 것이었습니다. 녀석에게는 밭이 자유의 공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네 산책길에 나설 때는 목줄을 사용하지만 밭에 나갈 때는 목줄을 풀어줍니다. 녀석은 새끼 때부터 밭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녔습니다. 밭을 두르고 있는 산을 온통 헤집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밭에 나서면 맘껏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 역시 밭에 가면 자유롭습니다. 밭에는 생활의 목줄 같은 전화도 없고 컴퓨터도 없습니다. 나무와 물과 흙이 전부인 공간에서 별 생각 없이 일만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일하다가 힘들면 한여름에는 그늘 아래나 물가에, 날씨가 쌀쌀하면 볕 잘 드는 풀밭에 쪼그려앉아 생각을 비울 수 있어 또 좋습니다. 점심을 훌쩍 넘겨도 배고프지 않았습니다. 아마 녀석도 밭에 가면 그런 자유를 누리는 모양입니다.


a 밭에나 산에 갈때는 목줄을 풀어 놓습니다.

밭에나 산에 갈때는 목줄을 풀어 놓습니다. ⓒ 송성영

"곰순아! 곰순아! 집에 가자!"

녀석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산마루 저 멀리에서도 쏜살같이 내달려옵니다. 그런 녀석을 무한정 풀어 놓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못됩니다. 녀석은 동네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일이 없지만 녀석이 풀려 있는 것 자체를 무지하게 싫어하는 거시기네 외할머니에게 발각되면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내가 깊은 산속 암자와 같은 밭에서 돌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컴퓨터에 묶이게 되면 녀석도 묶여 있어야 합니다. 거시기네 외할머니는 두 뼘 정도 길이의 짧은 줄에 개를 묶어 놓고 기르는데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올라치면 곧장 깨깽거리는 비명 소리로 뒤바뀝니다. 그야말로 개 패듯이 패기 때문입니다. 고양이조차 묶어 놓고 기르라 성화인 거시기네 외할머니는 곰순이가 자신의 집 마당에 무단침입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집 마당에서 노는데 그것조차 눈에 가시로 여깁니다.

곰순이 녀석은 순순히 묶이지 않습니다. 묶어 놓을 때마다 애를 먹습니다. 산이나 밭에서 부르면 득달같이 달려오지만 개집 앞에서 부르면 절대로 다가오는 법이 없습니다. 주변을 맴돌며 실실 눈치만 봅니다. 묶여야 한다는 것을 빤히 알기 때문입니다. 개 밥그릇에 아무리 맛있는 것이 있다 해도 다가오질 않습니다. 고기 덩어리로 유혹해도 소용없습니다.

a 동네 산책 길에 나설때는 목줄을 사용합니다.

동네 산책 길에 나설때는 목줄을 사용합니다. ⓒ 송성영

그렇다고 멀리 달아나지도 않습니다. 마당 한가운데서 발라당 누워 버립니다. 묶이기 싫다는 무언의 시위입니다. 어쩔 수 없이 녀석의 목살을 잡아당겨 강제로 묶어 놔야 합니다. 거시기네 외할머니와 한바탕 전쟁을 벌이지 않으려면 녀석을 묶어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묶여 있는 곰순이 녀석에게 고기를 주면 맛있게 잘 먹습니다. 하지만 허겁지겁 고기를 먹고 있는 도중에도 목줄을 풀어 놓으면 고기 덩어리는 뒷전입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당을 펄쩍 펄쩍 뛰어다닙니다. 맛있는 고기 덩어리보다는 목줄에서 풀려나는 게 더 좋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묶여 있는 것보다는 쫄쫄 굶더라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것이 훨 낫기 때문입니다.

'한미FTA 협정' 또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한미FTA 협정으로 잠시 몇 덩어리의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 '유혹의 협정'에 묶여 평생을 후회하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미 미국이 던져 준 '개밥' 같은 '달콤한 구호물품'으로 반세기 넘게 꽁꽁 묶여 있질 않았습니까?

좀더 먹겠다고 달려들었다가는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는 걸 알고 있는 곰순이. '한미FTA 협정'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곰순이의 깨달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나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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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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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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