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비가 가정 경제 파탄내는 '주범'

한국사회정책학회 국제학술세미나에서 한일 교육 연구 발표 ②

등록 2006.12.04 17:01수정 2006.12.0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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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정책학회·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일본사회정책학회가 공동주최한 '2006 국제학술대회'에서 한국과 일본의 교육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공교육의 국제 비교 분석>을 주제로 일본의 하시모토 겐지 교수와 한국의 김용일 교수가 발제를 했고 한만길(한국교육개발원) 박사와 정진곤(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교수가 토론에 나섰으며 박광준(일본 북쿄대학교) 교수가 진행을 맡았다.

한·일 최초로 공동으로 개최한 공교육의 국제비교분석 발표한 두 교수의 연구 논문을 발췌 1회에서 일본 하시모토 겐지(무사시 대학교) 교수의 '현대일본의 교육기회불평등과 평등을 위한 교육-사회정책'편을 게재했다. 이번 회에는 한국 김용일(한국해양대학교 국제대학) 교수의 '한국 공교육의 현황, 문제점 및 개선방향'을 요약 정리해 싣는다. <필자주>


a '공교육의 국제 비교 분석 ' 국제 학술 세미나 . (좌부터)한만길 박사, 김용길 교수, 박광준 교수, 하시모토 겐지 교수, 정진곤 교수.

'공교육의 국제 비교 분석 ' 국제 학술 세미나 . (좌부터)한만길 박사, 김용길 교수, 박광준 교수, 하시모토 겐지 교수, 정진곤 교수. ⓒ 한성희



한국, OECD 국가 중 사교육비 세계 최고

2006년 9월 교육인적자원부가 우리교육에 대해 내린 총평을 요약해보면 교육투자와 환경은 타 OECD 국가에 비해 열악하지만 교육 접근 가능성과 학력수준 같은 교육결과는 비교적 양호하다는 것이다. 열악한 교육환경은 공교육에 인색한 투자의 당연한 결과다.

그러면서도 모든 교육 단계의 취학률 및 고등학교 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만15세 학생들의 학업성취도(PISA)나 중학생의 수학·과학 학업성취도 역시 세계최고 수준이다. 교육투자를 많이 하고 교육여건을 개선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져봄직도 하다. 하지만 이게 문제해결의 다는 아니다 .


무엇보다 뿌리깊은 학벌주의는 우리 교육을 '양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무한대의 경쟁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여기에 취약한 사회복지 시스템, 노동시장의 비합리적인 관행, 승자독식의 풍조 등이 공교육의 현주소를 설명하는 핵심개념들이다.

한국의 공교육은 '저조한 공적투자와 과중한 사부담'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공적투자는 실로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정부부담은 학부모의 호주머니 돈에 의존하는 교육체제를 정착시켰으며 이런 상황을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일본·독일·영국·이탈리아·미국·프랑스·핀란드를 비교 대상으로 보면 한국이 사부담률이 38.7%로 가장 높다. 우리나라 교육비 사부담률은 OECD 국가 평균(11.9%)의 3배나 된다. 초·중등교육만 봐도 20.5%로 OECD 국가 평균(7.7%) 2.7배에 달한다. 고등교육 단계의 사부담률은 무려77%(OECD 국가 평균 28.6%)를 기록해 정상적인 상황으로 보기 어렵다.

이러한 막대한 사부담률은, 대학등록금이 가정경제를 압박하고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초래하는 등 계층간 소득격차 주요인으로 작용한다. 학교나 대학에 소득 재분배 효과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공교육비의 교육적·경제사회적 의미를 도외시한 채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비가 투자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공허하다 못해 허구적이다.

"세계 최고 교육비 투자"는 허구

a 김용길 교수

김용길 교수 ⓒ 한성희

그러나 OECD 국가의 평균 3배가 넘는 사부담률을 합쳐도 OECD 회원국의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초등(75.2%) 중등(92.1%) 고등(63%)) 돈으로 교육하고 있다. 속설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학교와 대학은 여전히 "값싼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엄청난 교육열을 생각할 때 교육에 대한 투자 역시 높은 수준일 거라고 속단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경제규모를 감안해도 정부는 열의나 기대에 걸맞는 투자를 하고 있지 않다. 교육열과 기대는 세계 최고 수준인 반면 중등교육을 제외하고 초등학교는 중간, 고등교육은 최저의 투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공교육재정의 구조적 취약성과 사교육비 문제는 국가 총량적 차원에서 우리 교육을 '고비용 저효율'의 늪에 빠트리고 있다.

교육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지름길은 학급당 학생 수를 낮춰주는 일이다. 이는 구미 선진국에서도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온 차별철폐조치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은 OECD 국가 평균과 비교해 초등학교 12.2명, 중등학교 11.4명을 더 수용하고 있다. 한 마디로 OECD 평균과 비교하여 절반 정도의 인력에 아이들의 삶과 배움이 유지되고 있다. 이런 비교 통계는 정부가 감추고 싶은 자료다.

문제는 정부가 정도를 외면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녀교육을 위해 한 일을 다한 걸까?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 점수는 우수할지 모르나 인간교육 측면에서는 중병을 앓는 게 현실이다. 우수한 점수 또한 너무나 큰 희생의 대가다. 대학입시로 대표되는 경쟁일변도의 교육풍토, 가파르게 서열화된 학교와 대학체제, 학벌을 매개로 한 '승자독식'의 사회구조 역시 꿈적도 하지 않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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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희

학벌 위주의 사회는 특정학력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권력을 집중시킨다. 이런 속성 때문에 학벌은 집요하게 학교와 대학의 서열을 요구한다. 게다가 그 순위변동에 온갖 신경을 곧추세운다. 결국 이 게임은 학벌의 '승리'로 마감된다.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정해진 순위변동을 용납하지 않는다. 변화의 요구를 자신이 누리는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간헐적인 도전과 응전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배학벌의 네트워크가 한층 공공연해진다. 결국 이 같은 악순환으로 인해 사회의 역동성과 변화 가능성은 철저히 봉쇄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럼에도 우리는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보다 비(반)교육적인 경쟁을 부추기는 움직임을 계속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10여년 간 정부가 추진해온 시장만능론적 교육개혁이다. 특히 자사고 도입이나 특목고 확대 등과 같은 학교정책은 고교서열화를 조장하고 비(반)교육적 경쟁은 중학교 단계, 나아가서는 초등학교와 유치원 단계까지 확대하고 말았다.

학벌주의가 하루아침에 해소되리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학벌주의가 우리의 공교육을 왜고, 각종 문제를 야기시키는 '주범'이라는 인식하에 국가적 차원에서 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교육비 문제만 하더라도 학벌을 매개로 한 경제권력, 정치권력, 사회문화 권력의 독(과)점 현상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현재와 같은 조건에서라면 그 누구라도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하여 지배학벌의 지위를 확보하려 들 것이다.

지배학벌로 편입되기 위한 비(반)교육적인 경쟁의 과정에서 경제력이 있는 부유층은 사교육 시장을 동원하여 주도적으로 대응한다. 중간층은 이를 악물고 뒤쫓아간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마땅한 대처 수단이 없어 절망하게 된다.

교육비에 가정 경제 파탄-국가와 기업이 풀어야 할 과제

자녀교육으로 인해 가정경제가 파탄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 한국의 교육 현실이다. 정부는 과중한 사부담에 의존하고 있는 교육재정 구조의 취약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경제부처 관계자들은 '그럴 여력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로서 관료들에게 맡겨놓아서는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영국 노동당 정부의 노력과 성과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은 보수당 집권 시절 공교육 재정 감축을 목표로 한 시장만능론적 교육개혁으로 인해 1990년 4.2%까지 떨어졌다. 1970년대 중반과 비교하면 GDP 대비 무려 2.5%에 육박하는 재정 감축이 이뤄진 것이다. 이에 노동당은 1997년 선거에서 '빠른 시일 내에 GDP 대비 5%를 상회하는 수준에서 공교육재정을 확보해 나가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승리한 뒤 5년째인 2002년에 그 약속을 지켰다.

우리의 고등교육은 '세계 최고의 사부담률'과 'OECD 국가 중 세계 최저 수준의 투자'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투자에 있어서는 정부가 솔선수범하고 특별히 기업의 대학에 대한 지원을 이끌어내야 한다. 투자에는 인색하면서 불평불만만 일삼는 기업의 모습은 우리교육은 물론 경제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복지시스템 개선과 함께 교육문제 풀어야"
[인터뷰] 김용일 교수

-일본과 우리의 교육 현실은 단어만 다르다 뿐이지 결국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악순환 되고 있는데.
"맞는 말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더 교육 서열화가 심각하며 이 상황이 고착화 돼 있다. 우리나라도 이대로 가면 일본의 뒤를 따라갈 것이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그들은 삶의 만족을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교육망국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정교한 기획을 통해 교육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왔다. '학교선택권'을 보장하는 등 공교육에 시장적 기제를 도입하면 산적한 교육문제가 금방 풀릴 것 같이 말한다.

그렇다면 지난 10여년 간 교육개혁이 변화를 이룩하지 못한 원인이 어디 있는가? 취약하기 짝이 없는 복지 시스템과 누적적인 과소투자 상황에서 공교육 재정감축이 과연 바람직할까?

사회복지 시스템의 견실성 정도는 교육의 문제를 푸는 일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 교육투자를 늘리고 교육여건을 개선해서 공교육을 강화해야 세계적 수준의 지식교육과 인간교육이 가능하다. 시시하고 빛이 나지는 않지만 이것이 교육의 정도라는 점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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