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 몇 명이 역사 바꿀 수 있나
학문으로 뉴라이트 반박하겠다"

[뉴라이트 '교과서 파동'③- 인터뷰] 이광국 4·19민주혁명회 부회장 "폭력 사태는 유감"

등록 2006.12.04 21:55수정 2006.12.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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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광국 4.19 민주혁명회 부회장.

이광국 4.19 민주혁명회 부회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우리도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잘못을 학문적으로 반박하겠다."

이광국 4·19민주혁명회 부회장은 지난 30일 교과서포럼(상임대표 박효종) 심포지엄에서 일어난 폭력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이 부회장은 4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원인이 어떻든 간에 몸싸움 일어난 것은 유감"이라며 "의도된 게 아니었다"고 밝혔다.

@BRI@이 부회장은 "그날(30일) 신문을 보고 4.19단체 회원들이 흥분해 전화를 많이 했고 직접 사무실로 찾아온 사람들도 많았다"며 "즉석에서 포럼을 들어보고 항의하러 간 것인데 몸싸움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저 쪽(교과서포럼) 이영훈 교수가 먼저 (회원들 쪽으로) 가서 몸싸움의 도화선이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심포지엄 행사장의 폭력사태가 결과적으로 교과서포럼의 일방적인 교과서 개정 추진 탓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날 6차 심포지엄이었는데 4.19혁명을 학생운동으로 폄하하면서 4.19단체를 초청 한 번 하지 않았다"며 "우리가 4.19를 어떻게 보는지 초청해 토론했으면 6차 심포지엄과 같은 해프닝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4.19단체들이 후속 대책으로 세미나를 준비 중"이라며 "우리도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문제점을 학문적으로 반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이광국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교과서포럼에서 사법 책임 묻겠다면, 우리도 대응하겠다"


- 지난 30일 교과서포럼 행사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과정이야 어쨌든 폭력을 행사한 것 자체에는 반대하는 국민들이 많은데.
"원인이 어떻든 간에 그런 몸싸움이 일어난 것은 유감이다. 우리 의도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 날 (교과서포럼) 6차 공청회가 있다는 것을 신문을 보고 알았다. 많은 회원들이 흥분해서 전화했다. 4·19단체에서 알고 있느냐고 해서 우리도 몰랐다고 했다. 직접 사무실로 찾아온 회원들도 많았다. 4.19 관련단체가 3개 있는데 교과서포럼에서 시안 만드는 과정에서 연락온 게 있는지 서로 확인해보니 전혀 없었다. 즉석에서 버스 2대로 포럼을 들어보고 항의하러 갔는데 몸싸움이 일어났다."


- 안병직 교수 등 교과서포럼 관계자들은 폭력행사에 대해 사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데.
"법적 대응을 해오면 그 때 우리도 법적 대응하겠다. 폭력사태라는데, 우리가 볼 때는 항의하는 과정에서 이영훈 교수가 먼저 (회원들쪽으로) 갔다. 그게 몸싸움의 도화선이 됐다. 우리 회원들도 나이 드신 분들 중에 다친 분들이 있다."

- 회원들이 왜 그렇게 흥분했다고 생각하나.
"그날이 6차 심포지엄이었는데 4·19혁명을 학생운동으로 폄하하면서 4·19단체를 초청 한 번 하지 않았다. 우리가 4·19를 어떻게 보는지 초청해 토론했으면 6차 심포지엄과 같은 해프닝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임의단체가 아니다.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공법단체인데, 근대사를 평가하면서 그 주역들에게 어떠냐고 한번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 들어보니 (4·19가 학생운동이라는 데) 교과서포럼 멤버들이 다 동참한 것도 아니다. 밀실에서 자기네끼리…."

"4·19는 혁명, 5·16은 쿠데타로 이미 역사 정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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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 교과서포럼에서는 4·19혁명의 초기 주체세력이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학생운동으로 규정한 것 같은데, 인정할 수 없나.
"2·28 대구고등학생 시위, 3·15마산 의거가 일어나면서 김주열 학생의 최루탄 사망사건이 4·19의 도화선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단순한 학생운동이 아니라는 것은 국민들이 다 아는 사실 아닌가.

학생들이 주도해서 일어났지만 나중에는 정권퇴진 운동으로 번졌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 국민이 다 들고 일어난 혁명이었다. 수유리국립묘지에 가 보라. 당시 희생됐던 180여명 중에 일반인들이 더 많다. 이를 학생운동을 폄하할 수 있나. 이미 역사적으로 4·19는 혁명, 5·16은 쿠데타로 정리됐다. 이제 와서 학자 몇 명이 역사를 뒤바꾸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초안에 보면, 4·19 이후 좌파적 학생세력이 등장하면서 오히려 사회가 혼란해졌다고 쓰고 있다. 4·19를 계기로 '체제위협세력'이 등장했다면서, 혁명이 5·16군사쿠데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서술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주장일 뿐이다. 4.19혁명이 성공한 뒤 학생과 일반인들이 경찰서를 접수해 청소도 하고 사회질서도 유지해 나갔다. 그 다음에 정권이 바뀐 거다. 약간의 혼란이 있기는 했지만 4·19 때문에 5·16이 일어났다는 주장은 동의할 수 없다. 그 당시 나도 고등학생이었고, 경무대 앞에서 하복부 관통상을 입었다.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뉴라이트 내부에서도 (4·19는 학생운동이라는 주장이)전체 의견이 아니라는 성명을 냈지 않나."

- 교과서포럼에서는 끝까지 대안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한다. 만약 '4.19학생운동'의 주장이 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당연히 대응하고 있다. 이미 성명서를 냈고, 후속대책으로 4·19민주혁명회와 희생자유족회, 혁명공로자회 3개 단체가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다.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잘못을 학문적으로 반박할 것이다. 물론 뉴라이트도 토론회에 참가하라고 초청장을 보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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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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