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주몽>, 시청자에게 '예의'를 지켜라

시청률 매달리는 연장방송 이제 그만...여운 남는 종영 보고 싶다

등록 2006.12.06 17:00수정 2006.12.0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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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회 연장방송에 들어간 드라마 <주몽>

20회 연장방송에 들어간 드라마 <주몽> ⓒ MBC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이형기 '낙화' 중에서


만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친구와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볼 때면 우리의 술자리는 거의 밤 9시 전에 끝난다. 친구가 <주몽>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서둘러서 소주 한 병씩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들은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방영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다.

딱히 좋은 일도 없고, 아이들은 공부하기 바쁘고, 젊은 친구들이 짝지어 자기들끼리 수다떠는 TV 프로그램들 속에서 그나마 우리 같은 세대가 흥미를 느끼는 건 <주몽>이나 <대조영> <연개소문> 같은 사극뿐이다. 방송사간의 시청률을 의식한 때문인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의 인물들을 조명한 이런 사극들은 뉴스 빼고 볼 수 있는 유일한 드라마다.

주몽은 처음 탄탄한 구성을 보여 많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해모수와 금와왕의 우정, 한나라와 다물군 그리고 부여와의 대립, 대소와 주몽간의 갈등, 주몽과 소서노와의 잔잔한 멜로까지 실제 역사와는 다른 이야기의 전개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일 뿐이라는 시청자들의 지지를 업고 40%가 넘는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연장 방송을 한다느니 안 한다느니, 출연배우가 안 하겠다니까 방송사의 고위간부가 설득을 하였다느니 그런 이야기가 들리면서부터 극적인 긴장감이 떨어지더니 어제(57회/12월5일) 방송 분부터는 늘어질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동안에도 계속 반복되는 납치, 감금, 잠입, 발각의 이야기 구성이 질리게 하더니 57회 방영 분에서는 다시 주몽이 현토군에 정보를 캐러 들어갔다 발각되지만 탈출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웬 비금선이라는 신녀가 나타나 금와왕에게는 '부여가 망한다'는 소식을 들려주고, 주몽에게는 새로운 나라의 왕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며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기 위해서는 '옛조선의 유물 세 가지를 얻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게 한 회분의 대강의 스토리다.


연장 방송 소식 들릴 때부터 긴장감 떨어지기 시작

@BRI@나를 포함함 많은 시청자들은 도대체 언제 주몽이 건국을 할 것인지, 주변의 부족들을 복속하는 과정에서의 난관 극복과 갈등 해소 등의 이야기를 보고 싶은데 주몽은 아직도 부여와, 어머니와 부인, 소서노 사이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방송사가 시청률의 노예가 되어 인기 드라마를 연장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조금 잘 나간다 싶으면 시청자를 볼모로 삼아 예정에도 없던 연장을 하고 때론 작가나 배우들과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작가의 상상력이란 그리 무한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작가는 처음에 구상을 할 때 예를 들어 방송 60회 분이면 그 안에 꽉 짜맞추어 스토리를 구성하고 계획을 짠다. 그러나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방영이 늘어나게 되면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갑자기 최초 구상에도 없던 생뚱맞은 사건을 집어넣거나 스토리를 반복함으로써 방영분을 맞추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5일 방영된 57회에서 주몽이 늪에 빠져 허우적댈 때 소서노가 구해 주던 장면 같은 것은 그 동안에도 수없이 되풀이 되었다. 갑자기 스토리를 끼워 맞춰야 하는 작가로서는 소재가 빈곤할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기대를 하고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로서는 실망이 아닐 수 없다.

하긴 시청률이 20%만 되어도 잘 나가는 드라마일 텐데 40%를 넘어섰으니,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 20%를 넘는다는 확신이 없다면 비록 주몽의 시청률이 떨어진다 해도 방송사로서는 연장의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란 원래 중독성이 강해서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야기가 늘어져 지루해지더라도 시청자들은 습관처럼 TV를 틀어놓고 보게 된다. 그렇지만 스토리 전개에서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줄게 되고, 타성에 젖어 있다 같은 시간대에 다른 드라마에 흥미를 느끼면 그 쪽으로 옮겨가게 된다. 까짓 것 보기 싫으면 보지 않으며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지 모르지만, 많은 시청자와 출연배우와 작가가 원하지 않는 연장 방영이라면 그것은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다.

시청률만 매달리는 드라마 제작 이젠 그만

작가의 상상력이 동이 났다면 여기에서 일단 끝내고 쉬면서, 그래도 아쉬움이 남고 다른 상상력으로 계속하고 싶다면 스토리를 만들어 시즌으로 나누어 구성을 하든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야 지친 작가와 배우들을 쉬게 하고, 무엇인가를 구상해 놓고 대본을 쓰며 방영되기를 기다리는 다른 작가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방송사는 시청률을 먹고 사는 곳이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래도 많은 시청자들은 좋은 드라마를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시청을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무엇을 배우고 교훈을 얻는다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흥미 위주의 드라마라 할지라도 소재가 빈곤하고 타성에 젖게 되면 지루함을 느끼고, 그 드라마에 느꼈던 저간의 좋은 이미지마저 상실하게 된다.

당초의 60회 분에서 20회를 연장한다고 하니 거의 3분의 1을 보태는 셈인데, 극적인 긴장감을 얼마나 더하고 소재가 얼마나 풍부해질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주몽이라는 드라마가 완결되기 전에 이전과는 다르게 친구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술을 더 마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라는 게 다 그렇지 뭐."

언제쯤 이런 이야기 하지 않고 여운이 남는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될까. "끝이 있으므로 해서 / 완성됨이 있으므로 해서 / 오늘 이 세상의 고통은 모두 아름답다"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구지만, "끝이 있으므로 해서 완성도가 높아서 주몽을 보는 내내 즐거웠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 그래도 월·화요일에는 주몽이 있어서 즐거웠는데…"라고 아쉬워하는 것과, "주몽, 요즘 스토리 전개가 왜 그래?"하며 불만을 쏟아내는 것 중 어느 것이 나을 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순전히 시청자들의 판단의 몫이며, 그렇지 않게 만드는 건 방송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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