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으로 보지 않고 생명으로 보았으면!"

인문고에서는 '참교육활동'을 어떻게 하나?

등록 2006.12.09 15:50수정 2006.12.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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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학교 정원에 쌓인 낙엽들- 저 낙엽들 속에서 또 하나의 희망의 씨앗이 자라고 있으리라.

학교 정원에 쌓인 낙엽들- 저 낙엽들 속에서 또 하나의 희망의 씨앗이 자라고 있으리라. ⓒ 안준철

교정에 들어서자 낙엽이 수북이 쌓인 작고 아담한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고,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정원 쪽으로 발길을 내딛었다. 내가 방문한 곳이 기독교 계통의 여학교여서 그랬을까? 나는 흡사 기도라도 하듯 무릎자세로 꿇어앉아 정원에 나뒹구는 낙엽 하나를 주워들었다.

낙엽에는 구멍이 서너 개 뚫려 있었다. 벌레들의 먹이가 되었음직한 그 구멍을 통해 교정에 심어진 나무들과 학교 건물을 들여다보았다. 낙엽을 눈에 가까이 댈수록 구멍 너머의 풍경들이 커 보였다. 그 커다란 동그라미 속으로 한 여학생이 뛰어들었다. 나는 얼른 눈에서 낙엽을 떼면서 아이에게 물었다.

"학교 도서관이 어디야?"
"저기 저 건물 보이시죠? 그리고 가시면…."
"으응. 고마워!"


@BRI@내가 도서관을 찾은 것은 그곳에서 참교육실천발표대회(이하 '참실대회')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참실대회'란 전교조의 존재이유라고도 할 수 있는 참교육실천사업의 성과를 보고하고 공유하는 마당이다. 조합원의 여부를 떠나서 학생을 사랑하는 교사들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교육발전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자리인 것이다. 특히 공립 중학교의 경우, 학교단위로 치러지는 '분회참실대회'가 전교조만의 사업이 아닌 학교 전체 행사로 자리매김한 학교들도 상당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참교육인가? 이전의 교육은 모두 거짓이었다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교육행위 일체를 모두 거짓으로 보지는 않는 점에서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지만, 평가(입시)가 교육과정을 역으로 규정하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교육은 뒷전이고 오로지 대학입시(그것도 소수의 선택된 아이들을 위한)에만 목을 매달고 있는 암울한 현실에 대해서는 '그렇다'라는 대답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절망할 일은 아니다. 아니, 교육과 관련을 맺은 사람이라면 절망이란 단어를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희망 찾기를 해야 한다. 눈물로 마른 흙을 적셔서라도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워야한다. 교육의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땅에 떨어진 낙엽 한 장, 그곳에 상처처럼 뚫린 작고 어두운 구멍을 통해서라도 동그라미 속에 온전하게 살아 있는 한 소녀를 만나야 한다.

a 교장선생님의 격려사를 경청하고 있는 순천매산여고 전교조 선생님들

교장선생님의 격려사를 경청하고 있는 순천매산여고 전교조 선생님들 ⓒ 안준철

지난 목요일(7일), 단아하게 잘 꾸며진 학교 도서관에서 열린 순천매산여고 '분회참교육실천발표대회'는 "형식적인 행사가 아닌 진정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고 모색하는 알찬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격려사로 막이 올랐다. 전교조 행사에 학교장이 격려사를 해주는 모습도 이제는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지만, 왜 그랬는지 나는 찔끔 눈물이 나올 뻔 했다.


그런 상황, 곧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찔끔 눈물이 나올 뻔한 순간들은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특히 실천사례발표자로 나온 여덟 분의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수줍은 듯 겸손한 모습으로 한 해 동안 아이들과 함께 실천한 수업내용이나 생활지도 사례를 소개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버렸는지 아닌 척하고 물기를 닦아내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시간의 제약이었다. 한 해 동안 이루어진 긴 이야기들을 10분 이내로 정리하여 발표하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아쉬움이 크게 남아 본 행사를 마치고 뒤풀이자리로 옮겨 2시간 넘게 얘기를 나누고도 모자라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한 권의 작은 책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자료집을 마치 소설 책 읽듯이 독파한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지면관계상 그 내용을 다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문 너머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얼른 저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싶다!"


a 발표하는 오금식 교사(국어)-이것은 무엇을 그린 것일까? 이에 대해 학생들의 대답은 다양했다. 정면에서 본 빈방, 키보드, 액자, 위에서 본 자동차, 미니쉘초콜릿, 사각 전등갓, 스티커 붙인 편지 봉투 등. 한 학생은 ‘문이 굳게 닫힌 방이고, 문 너머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얼른 저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발표하는 오금식 교사(국어)-이것은 무엇을 그린 것일까? 이에 대해 학생들의 대답은 다양했다. 정면에서 본 빈방, 키보드, 액자, 위에서 본 자동차, 미니쉘초콜릿, 사각 전등갓, 스티커 붙인 편지 봉투 등. 한 학생은 ‘문이 굳게 닫힌 방이고, 문 너머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얼른 저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 안준철

국어를 가르치는 오금식 교사는 '논술 기초를 다지기 위한 창의성 계발 수업의 실제'라는 제목으로 실천사례를 발표했다.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논술에 대한 오 교사의 일반적인 인식은 다른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령, '논술은 살아가면서 보고 느끼고 겪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얼마나 창의적이며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느냐를 측정하는 도구'라는 생각이나, '논술 지도를 아무런 변화 없이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을만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지만 논술에 대해 공교육에서 만족할만한 교육서비스를 받지 못한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학교에서의 논술 교육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라는 대목이 그렇다.

하지만 논술 수업 현장에서의 오 교사의 접근법은 색다르고 신선했다. 그런데 그 참신하고 독특한 접근이 가능했던 것은 학생들에 대한 오 교사 특유의 애정 어린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것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오 교사의 말을 직접 들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10대 청소년들은 매우 활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아무 말 없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도 끝종만 쳤다하면 떠들고 고함을 치는 것을 보면 학생들에게 주입식수업 방식이 얼마나 큰 형벌과 같은 것인지 알게 됩니다.

그런 수업을 지속해온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되지요. 그러기에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게 하고 활동하게 해주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수업방식입니다."


아마도 오 교사는 수업을 통해서 어떤 결과에 이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업 과정 속에서의 흥미나 자유로움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하루 10시간 이상 딱딱한 의자에 앉아 교사가 하는 말을 받아 적거나 집중해서 들어야만 하는 일종의 형벌에 가까운 기존의 수동적인 수업형태로 어찌 학생들에게서 역발상의 창의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런 능력은 학생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고 하지 않은가.

"광고나 영화, 드라마 등 대중매체들에서 나타나는 상징성과 비유성은 어느 문학작품에 비해 손색이 없습니다. 오히려 충격적인 이미지나 빼어난 영상 속에서 발견하는 미적, 함축적 의미들은 문학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감동을 선사하지요. 게다가 학생들은 문자화되어 있는 정보보다 그림이나 영상화 되어 있는 정보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여 기대되는 학습 성취 효과가 매우 높습니다."

오 교사가 단순한 그림이나 영상자료를 사용하여 논술을 지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단순한 그림이지만 그 그림을 보고 생각해낸 것들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학생들은 친구들의 예상치 못한 기발한 대답에 놀라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업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고 자발적으로 사고하는 것들이 갈수록 익숙해졌습니다.

한 학생은 그 그림을 보고 '문이 굳게 닫힌 방이고, 문 너머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얼른 저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싶다.'고 해서 저를 놀라게 했는데 그 아이는 장학반 학생이 아니라 일반반 학생이었습니다."


한 아이의 참신하고 놀라운 발상에 나 또한 감동이 되어(혹시 자신이 그런 유사한 상황 속에 처해 있어서 놀라운 상상력이 발휘된 것은 아닌지 생각도 해보면서) 다시 한 번 찔끔 눈물이 날 뻔했다가 문득 머리에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아, 이 학교에도 우열반이 편성되어 있구나. 아무리 훌륭하신 선생님이라도, 아무리 따뜻한 격려사를 해주신 교장선생님이라도 이 문제는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구나."

그래서 잠깐 우울했는데 아이들이 '나만의 속담 만들기'를 한 내용을 보고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내 입가에 웃음이 찾아왔다.

'동북공정 욕하면서 사학과는 정원 미달'
'잠만 자는 것보다 뛰다 넘어지는 게 낫다.'
'검은 색 속에 무지개 있다.'
'맛있는 식당 손님 수로 알지만 진정한 친구 사람 수로 알 수 없다.'

오 교사는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교육의 방법을 바꿔야하는 것은 이제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논술을 대비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감추어져 있는 학생들이 창의력을 계발해 주는 것이냐 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앉아서 배운다는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야하고, 교실 수업의 주인공은 학생이어야 합니다"라는 말로 발표를 갈무리했다.

"상품으로 보지 않고 생명으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a 국화반 아이들과 이시근 선생님

국화반 아이들과 이시근 선생님 ⓒ 안준철

수학 담당인 이시근 교사는 과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해마다 국화일기를 쓰고 있다. 학교에서 국화반 아이들과 함께 국화를 기르면서 일어난 일들을 적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전교조 순천사립지회장 일도 맡아서 하는 바람에 같은 조합원이자 후배교사인 서인환 교사가 더 많은 일을 했다고 한다. 이 교사는 '국화 기르기'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정리했다.

"너무 힘들어 남에게 권장할만한 일은 못되지만 아이들을 길러내는 일과 같은 성질이어서 해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국화를 기르다보면 한 생명을 길러내는 것이 이렇게 긴 시간의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게 되지요. 우리 교사들이 자신들을 그렇게 공을 들여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겠지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국화를 생명으로 보지 않고 상품으로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꽃 한 송이라도 상품으로 보지 않고 생명으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찔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말이 나에게는 이렇게 윤색되어 들려 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교사도 그런 뜻을 담아 말을 했겠지만 말이다.

"한 아이라도 상품으로 보지 않고 생명으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이 교사가 쓴 국화 일기를 모두 소개하고 싶다. 어디 그뿐인가? 도덕수업시간에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기를 이용하여 현대사회의 도덕문제와 환경문제 등을 흥미 있게 접근한 백희영 선생님. 주입식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역사과 수업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아이디어 발굴에 힘쓰고 계시는 오선화 선생님.

담임수당을 털어 아이들의 생일을 일일이 챙겨주고, 공부에 지친 아이들의 숨통을 튀어주기 위해 가끔 주말을 반납하고 사랑하는 제자들과 동반산행을 떠난다는 정대형 선생님.

a 여럿이 함께 하는 '참교육실천발표대회' 자료집 표지

여럿이 함께 하는 '참교육실천발표대회' 자료집 표지 ⓒ 안준철

학교생활 추억 만들기 사진 공모전 등을 통해 즐겁고 행복한 학교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는 정형구 선생님. 동료교사들의 원활한 발표를 위해 자신에게 할애된 '달라지는 2008년도 입시 설명'을 1분만에 끝내며 자료집을 봐달라고 말한 멋진 김형우 선생님 등의 이야기를 짧은 두어줄 글로 접어야하는 마음이 아쉽기만 하다.

성경에는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우리에 두고 길을 떠나는 예수의 이야기가 나온다. 행사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우연히 장학반 이야기가 나와 "그것은 결국 똑똑한 학생 몇 명 골라 서울대학교를 보내려는 것 아니냐?"고 합석하신 선생님들이 무안할 정도로 열을 올리다가 문득 머리에 떠올린 그림이다.

요즘 교육에 대한 이상을 말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희망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그것을 나는 '역설적인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다. 씨앗을 뿌릴 땅이 척박할수록 더욱 깊이 삽질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삽질을 쉬지 않고 하고 계시는 순천 매산여고 선생님들에게 고개 숙여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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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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