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어머니 만난 'K86-1269'

[인터뷰] 입양아 출신 순천향대 교환학생 브렛씨

등록 2006.12.12 14:38수정 2006.12.12 16:1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브렛(이인우).

브렛(이인우). ⓒ 강진영

"한국을 떠나 미국 양부모님 집에 도착한 때가 바로 제가 태어난 순간이었어요. 입양은 헝클어진 한 아이의 인생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순천향대학교(충남 아산)에는 황색 피부와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특별한 미국인이 있다. 그 주인공은 어눌한 말투로 "안녕하세요"를 외치는 브렛(미국 오하이오·23).

3살 때인 1986년 미국 오하이오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가 올해 8월 순천향대학교 교환학생이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

브렛씨는 자신을 'K86-1269'로 기억한다. 'K86-1269'은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될 때 이름 대신 받은 인식표 번호.

브렛씨가 어렵게 한국을 찾았지만 처음에는 입양 당시 기록을 찾는 게 매우 힘들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하는 기관이 여럿이기 때문.

수소문 끝에 찾은 입양 기록 문서에 적혀 있는 한국 이름은 '이인우'. 입양 당시의 낡은 문서에는 해맑은 한국 아이가 웃고 있었다.


브렛씨는 미국인 가정에서 성장하면서도, 항상 한국에 있는 어머니를 찾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한국 가족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BRI@그래도 브렛씨는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모색하던 중 뜻밖에 지인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내 딱한 사정을 듣고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의 한국인 교수님이 순천향대학교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추천해 주셨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브렛씨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 홀트아동복지회에 문의했다. 운 좋게도 홀트아동복지회가 보관하고 있던 입양 서류에는 어머니의 이름과 당시 주소, 본적이 남아 있었다.

결국 브렛씨는 11월 중순, 20년간 기다리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꿈에 그리던 어머니를 만나는 순간 눈물이 울컥 났다. 보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내 정체성에 혼란을 안겨준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컸기 때문인 것 같다."

a 브렛(이인우)의 입양 당시 모습.

브렛(이인우)의 입양 당시 모습. ⓒ 홀트아동복지회

20년만에 아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는 '인우'를 입양 보낸 후 다시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입양 단체에서 정보를 얻을 수 없어 결국 찾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어머니를 만난 후 브렛씨는 한국어 공부에 더 매달리고 있다.

"어머니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한국말이 서툴러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음에 만날 땐 꼭 마음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브렛씨가 한국어 공부를 하는 이유가 어머니와 원활하게 의사소통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한국어 교육원에서 수강 중인 외국학생들 중 유난히 한국어 공부에 열의를 보이는 브렛씨의 꿈은 공연 연출가. 브렛씨는 졸업 후 공연 연출가로 성공한 뒤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입양되었지만 슬퍼하지 않고, 어머니를 찾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생활했다. 결국 어머니를 찾게 됐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겠다는 꿈을 이루었다."

브렛씨는 입양과 관련, "내가 미국으로 입양되지 않고 살았다면 지금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이지만, 어렸을 때 혼란스러웠던 정체성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은 입양아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브렛씨는 자신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입양아들에게 현실에 비관하지 말고 꿋꿋하게 생활 한다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전했다.

a 입양 당시 'Information' 문서 중 일부. 'K86-1269'는 인식표 번호.

입양 당시 'Information' 문서 중 일부. 'K86-1269'는 인식표 번호. ⓒ 강진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4. 4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5. 5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