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진돗개 '중복이' 이야기

등록 2006.12.13 10:33수정 2006.12.1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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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중복이

중복이

여자들 수다 메뉴 중에 가장 기본은 식구들 이야기입니다. 이 집 저 집 가릴 것 없이 새끼들에 관한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다 마지막엔 '개 새끼' 얘기로 넘어가게 되었지요. 양수리 사는 후배 집엔 진도개 잡종 두 마리가 있답니다.


8살 된 암놈 중복이 그리고 중복이 새끼 붓돌이. 중복이란 이름이 하도 희한해 작명 배경을 물었더니 중복이의 일생이 나오더군요. 중복이는 후배 앞집에 있는 카페에서 살던 놈이랍니다.

@BRI@은행 지점장으로 명퇴한 사람이 운영하던 카페였는데 IMF로 그만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서울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하기 때문에 중복이를 데리고 갈 수 없었던 부부. 옆집에 사는 후배한테 와서 중복이을 맡아 달라고 사정사정 했겠지요.

2년 전 키우던 진도개 순이가 동네 염소를 두 마리나 해치워 없는 살림에 염소 값으로 무려 수십 만원의 거금을 물어줬던 후배. 개한테 하도 질려 다시는 안 키우겠다고 작심을 했지만 옆집에서 늘 보던 중복이를 박절하게 거절할 수는 없더라나요.

주인이 떠난 후 중복이는 한 달 동안이나 주인 집 현관문 앞에 엎어져 꼼짝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영리한 놈이니 그 이별의 슬픔을 어찌 쉽게 삭일 수 있었겠습니까. 중복이 엄마는 평소에 영리한 중복이를 무진장 예뻐했답니다.

"중복이가 태어난 집의 주인이 얼마나 무지막지한지 중복이를 얻으러 그 집에 가보니 강아지 세 마리 이름이 초복이, 중복이, 말복이더라고요. 이름이 하도 흉칙해 데려오자마자 이쁜 이름으로 붙여줬더니 아 이 놈이 거절을 하는 거예요."

새로 지은 이름을 부르면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놈이 중복이라고 부르면 그제서야 시키는 대로 말을 들었답니다. 할 수 없이 그때부터 중복이로 굳혀졌는데, 이 놈이 얼마나 영리한 놈인지 혀를 내두를 사건이 터졌습니다.

"1년에 두 번씩 새끼를 낳으니 감당할 수가 있어야지요. 새끼 9마리를 낳은 놈에게 그랬지요. '중복아 이렇게 새끼를 많이 낳으면 너를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더니 그 다음 날 감쪽같이 새끼가 없어진 거예요.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기에 '중복아, 새끼 어쨌니'하며 애간장을 끓였더니 아, 다음날 어디서 새끼 9마리를 몽땅 물어다 놨더라고요."


똥을 싸도 꼭 한군데에 그것도 똥싼 자리를 흙으로 덮을 만큼 정갈한 중복이. 집 주변이 돌밭이라 뱀들이 우글거렸는데 중복이가 온 뒤론 집 근처에 얼씬거리는 뱀들이 신기하게 없어졌다고 합니다.

"중복이 놈이 얼마나 웃기는 놈인 줄 알아? 이 놈이 내가 집을 비울 때마다 다른 집에 가서 외식을 하고 와. 그런데 밥을 먹고는 밥그릇까지 갖고 오는 거야. 집 마당에 밥 그릇 수가 무려 8개나 뒹굴더라니까. 나중에 보니 건너 편 식당에서 밥을 뺏어 먹고는 그릇까지 집어 온 거지. 그 집 개들 대부분이 중복이 새끼거든. 그러니까 제 밥이지 뭘. 하하하!"


a 중복이 새끼 붓돌이

중복이 새끼 붓돌이

꼬리가 붓처럼 말아 올라가 붓돌이라 이름 지었다는 중복이 새끼는 수놈이랍니다. 모자간 사고는 안치냐 했더니 어림도 없다네요. 붓돌이가 행여 덤비려고 해도 으르렁거리며 물어뜯으려 해 붓돌이가 에미 곁에 얼씬도 못한답니다.

혹시라도 낯선 사람이 집 근처에 얼씬하면 어찌나 사납게 짖어대는지 현관문 잠그지 않아도 중복이만 있으면 걱정이 없다나요. 그렇게 사나움을 떠는 놈이 일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친척이나 지인들에겐 '멍멍'은커녕 꼬리를 흔들고 트위스트를 추며 열렬하게 환영한다니 이쯤 되면 개가 아니라 개의 탈을 쓴 '사람' 수준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중복이와 붓돌이의 사진은 후배 딸 홈피에서 퍼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중복이와 붓돌이의 사진은 후배 딸 홈피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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