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는 아직도 국경을 맴돌고 있을까?

[서평] 강영숙 장편소설 <리나>

등록 2006.12.14 10:58수정 2006.12.1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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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탈북 가족을 만난 것은 단 2번뿐이다. 한번은 탈북 가족으로 이루어진 여성 합창단이었고, 또 한 번은 <리나>의 작가 강영숙씨가 독자와 만나 대화하는 시간에 탈북학교장과 함께 온 최금희라는 탈북여학생이었다. 다행히 그녀들은 나름대로 상처를 딛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탈북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자 기꺼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고 표정도 밝았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탈북 가족은 정신적 공황과 상처. 이질적인 문화적 충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또 다른 이방인으로 사회적 변방에 따돌려진 변방인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통일을 이룬지 10년이 넘은 독일조차 동독과 서독 간의 경제, 사회, 문화적 차이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채 진통을 앓고 있는데, 통일의 전초전조차 이루지 못한 대한민국은 여전히 자기 틀에 갇혀 막연하고 낭만적인 환상만 좇고 있다.

강씨는 그런 우리의 환상을 탈북자들을 다룬 소설 <리나>를 통해 여지없이 깨뜨리고 있다.

<리나>는 유일한 분단국가인 북한주민이 이상향인 P국을 향해 국경을 넘는, 이른바 탈북가족 이야기이다. 작가 강씨는 <리나>를 집필하기 전 실제 리나 또래였을 탈북 여학생 최금희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곧 자신이 늘 다루던 주제의 연장선에 북한 이탈 주민이 서 있음을 알게 되었다.

@BRI@강씨는 국경을 넘는 22명 중 탈북자 가족 중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족에게서 분리된 채 제3국을 떠도는 '리나'라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연재물을 썼고, 곧 책으로 엮였으며, 그 작품으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처럼 특별히 실제 인물을 염두에 두고 썼다거나, 탈북자들에게 전부터 유난스러운 관심이나 애정을 지녔던 것은 아니다. 강씨는 탈북자란 특별한 소재를 통해서 체제와 자본, 지식과 정보의 격차, 자의로 선택할 수 없었던 국가나 성별이 한 개인에게 가져오는 수많은 배제의 현장, 일정한 선과 틀 밖으로 밀려난 변방인의 분노를 낱낱이 드러내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한참 멋이나 부리고 자기감정에 충실할 나이인 16살 사춘기 소녀, 키가 작고 갸름한 얼굴, 이마에 노란 여드름이 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주인공 '리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황제처럼 떠받들며 길러진 아이들과 전혀 다르다.


그녀의 부모는 전통적인 남아선호 사상에 젖어 있어 남매에게 똑같이 위험이 닥쳤을 때 딸인 그녀를 방패막이로 사용할 준비가 항상 되어있다. 이미 리나는 가정에서 보살핌과 사랑에서 배제된 소외감을 맛봐야 하는 변방인이었다.

언제든 버리거나 버림받을 준비가 된 잉여인간 리나는 자기 스스로 부모를 버린다. 국경을 넘을 때 도와준 남자를 따라가느라 부모와 함께 들어가려던 이상향인 P국행을 포기한 것이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악질 브로커에 불과했던 그 남자는 인신매매업자에게 소녀를 팔아넘기고, 그녀는 함께 국경을 넘었던 외국인 삐와 첫날밤을 치르기 위해 매일 매일 지어낸 이야기를 해주며 풀려날 날을 기다린다.

자기 스스로 선택하거나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깨달은 '리나'는 도망치기 위해, 때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또 살기 위해 살인과 매춘, 도적질과 같은 일들을 마다지 않는다.

그러나 이쯤에서 우리는 공동체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솔직하게 되짚어봐야 한다. 나 자신은 집단의, 사회의, 혹은 국가의 변방에 세워둔 누군가의 존재를 잊지는 않았는지,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전가하며 나와는 무관하다거나, 내게는 거대한 바위를 깨뜨릴 힘과 능력이 없다며 자포자기하지는 않았는지.

작가는 미화된 시선으로 그들을 본다거나, 동정심을 유발시킬 그 어떤 장치도 없이, 까칠하고 건조한 문체로 변방인의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그려낸다. 하지만 그 건조한 문체의 행간마다 담긴 한숨과 죄책감, 절망감과 고독을 독자들이 간파할 수 있다면 작가 역시 '리나'와 다르지 않은 아픔을 느꼈으리라는 사실이 파동처럼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아무도 울지 않는다'는 시링의 창녀촌, 폭발사고로 늘 잿빛 오염물질이 덮여있는 버려진 죽음의 땅을 떠돌다 또다시 국경을 향해 가는 리나, 그녀는 "또 허벅지만 굵어지겠군. 내가 가진 건 튼튼한 다리뿐이지"라고 자조적으로 중얼거리지만 결단코 삶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멀리 어둠을 지나 파도처럼 몰려오고 있는 듯한 드넓은 국경이 보였다. 다시 국경에 서자 오히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리나는 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평원 위에 일렬로 서서 국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스물두 명의 탈출자들이 보였다. (중략) 잠시 후 리나는 다시 뒤를 돌아다봤다. 스물두 명의 탈출자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리나는 또다시 저만치 앞 허공에 푸른 둑처럼 펼쳐져 있는 국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국경에 선 리나, 언젠가는 국경을 넘어 피안의 나라에서 고단한 어깨를 내리고 깊고 달콤한 잠에 빠지게 될까?

리나 - 개정판

강영숙 지음,
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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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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