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불가촉민'의 아버지, 암베드카르

[서평] <암베드카르 평전>

등록 2006.12.15 14:46수정 2006.12.1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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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맥

얼마 전 <암베드카르 평전>을 읽었다. 책 자체보다는 '간디와 맞선 인도 민중의 대부'라는 소제목에 더 끌린지도 모르겠다. 인도하면 간디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비폭력주의자로서 간디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런 간디에 맞선 사람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또 인도에 문외한인 내게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나 사실 책을 읽는 내내 여러모로 어려움을 느꼈다. 인도의 역사나 문화에 친숙하지도 않을 뿐더러, 암베드카르에 대해 들어본 적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 전반에 걸쳐 나오는 용어들은 번역을 거쳐 순화됐다고는 하지만 상당히 어려웠다. 그렇지만 성취감도 들었다.

책은 불가촉민을 위해 투쟁하고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자유를 얻고자 투쟁한 지도자 암베드카르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익히 알려져 있다. 카스트 제도란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등 네 가지 다른 계급으로 나눠지는 전통 인도사회의 신분제도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흔히 아는 인도의 신분제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네 단계의 계급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최하층 집단이 있다. 이들은 카스트 바깥의 인간, 즉 불가촉민(Untouchable) 혹은 달리트라고 불렸다. 불가촉민들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과 접촉할 수 없었고 식사는 물론 대화도 할 수 없었으며 같은 컵으로 물을 마실 수도 없었다. 게다가 대중교통수단, 공동우물 등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을 밖에서 사람이나 동물의 시체를 처리하거나 화장실 청소 등 비천한 일을 하며 살았다. 힌두사원 출입도 금지되었으며,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의 가내하인이 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런 극단적인 대우는 많이 사라졌다. 또한 인도가 독립한 후 법률적 차원에서 불가촉 제도는 사라졌다.

@BRI@암베드카르는 1891년 인도의 작은 시골도시에서 불가촉 군인의 자제로 태어났지만, 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식민지 주민으로서 받은 차별은 불가촉민으로서 받은 차별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라 생각하고 평생토록 불가촉민의 지도자로서 살아갔다.

그는 달리트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였으며 이에 관한 많은 책을 남겼다. 또한 인도에서 가장 억압받는 집단의 해방을 위한 자유투쟁에도 힘썼다. 이는 반식민지 투쟁보다 더 의미가 넓은 해방운동이었고 새로 건설될 국가형태에 초점을 맞춘 투쟁이었다.

암베드카르는 달리트의 지도자를 넘어 인도 전체의 국민적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는 영국 식민통치하의 다른 엘리트 민족주의자들과는 다른 의미의 국민적 지도자였다. 암베드카르의 사상은 평생에 걸친 활동을 비롯해 카스트, 이슬람, 소수집단, 파키스탄, 여성문제 등에 관한 많은 저술과 수필, 민주주의적 독립 인도 건설 과정에서 수행한 역할 등에서 잘 나타난다.


인도에서 암베드카르는 흔히 간디와 대비된다. 그들의 동상에서 상반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간디의 동상은 인도 빈민의 상징인 도티를 걸치고 물레를 돌리는 모습이다. 빈민과의 일체감을 나타내려는 것이지만, 인도의 전통적인 촌락공동체의 정신적 낙후성에 대해서는 낭만적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그에 반해, 암베드카르 동상은 더 서구적인 모습이다. 전통적인 인도 역사의 유산에 맞서 달리트의 권리를 주장하고, 브라만 민족주의를 비롯한 문화 민족주의를 거부하며, 인도 계몽운동이 절정에 달한 모더니즘 시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간디는 힌두교라는 사회 기본 골격을 유지한 채 평등사상을 도입하려고 했다면, 암베드카르는 힌두교라는 전통을 거부한 해방운동가였다. 간디가 식민지배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투쟁했다면, 암베드카르는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을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힌두교라는 전통을 거부한 암베드카르의 민족운동은 전통 민족주의자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특히 브라만 전통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그는 간디와 대립했다. 힌두교의 틀에 뿌리를 둔 간디의 개혁은 달리트의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에 대해 암베드카르는 달리트들에게 개종을 호소했다. 1935년 10월 예올라 대회에서 그는 개종 결의를 제안하며 "나는 힌두교도로 태어나서 불가촉제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나는 힌두교도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불교로 개종한 암베드카르와 민족주의자들의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 나중에 독립 인도에서 암베드카르는 불교가 해방의 힘이라고 믿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알고 있던 간디와 인도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간디보다 암베드카르가 더 존경받고 세상 사람들에게 기억돼야 할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인간적인 계급사회에서 하층민이라는 신분을 뛰어넘어 인도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인도 전통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힌두교의 계급사회를 부정한 그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레닌 동상이 파괴됐지만, 이와 달리 암베드카르의 동상은 지금도 짓밟히는 인도인들에게 숭배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책 표지에 쓰인 말("간디의 시대는 인도의 암흑기였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암베드카르는 당시 간디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간디를 신랄하게 비판한 인물이었다. 그는 결코 간디를 진정한 개혁가로 보지 않았다. 암베드카르는 간디가 카스트제도에 묶인 힌두교의 수호자이자, 진보가 아니라 과거로 회귀를 유도하는 공상적 낭만주의자라 생각했다.

힌두주의 안에 불가촉민을 포함하려 간디가 벌인 일련의 법적․사회적 조치들과 운동에 맞서, 그에 내재된 허구성과 잠재된 폭력성에 일침을 가한 암베드카르의 통찰력과 지도력은 여전히 인도 민중의 가슴에 깊이 남아 있는 듯하다. 지금도 인도에는 간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암베드카르가 지적한대로 여전히 인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시한폭탄은 계층과 계급 간 갈등이다.

'인도의 아버지'가 간디라고 한다면, '인도 천민의 아버지'는 암베드카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의 아버지'라는 타이틀도 간디보다 암베드카르에게 어울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덧붙이는 글 | <암베드카르 평전>, 게일 옴베트 저, 이상수 역, 2005, 필맥

덧붙이는 글 <암베드카르 평전>, 게일 옴베트 저, 이상수 역, 2005, 필맥

암베드카르 평전 - 간디와 맞선 인도 민중의 대부

게일 옴베트 지음, 이상수 옮김,
필맥,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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