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들의 즐거운 점심시간

광주이주여성지원상담센터 '한국요리강좌'에 가다

등록 2006.12.15 19:01수정 2006.12.1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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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인순 자원봉사자가 장을 보러 가는 나랑토야씨에게 시장거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인순 자원봉사자가 장을 보러 가는 나랑토야씨에게 시장거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서영화

그녀들의 한국요리 교실

13일 오전 11시, 광주시 서구 화정1동에 있는 광주이주여성지원상담센터. 열다섯 명 남짓한 이주 여성들이 김인순(61) 자원봉사자의 한국요리 강좌를 열심히 듣고 있다. 이날 메뉴는 참치를 넣은 김치찌개와 갈치구이. "선생님, 참치가 뭐예요?"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던 홍 풍(21)씨가 물었다. 선생님은 쉽게 이해시키려 화이트보드에 참치 통조림을 그렸다.

"오늘 할 일이 많아요. 시장에도 가야 하고 쌀도 씻어야 하고. 근데 누가 시장에 갈래요?" 선생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나랑토야(27)씨, 마이(22)씨, 루엔마이(29)씨, 모이(28)씨 등 네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생님은 그들에게 시장거리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갈치를 설명할 때는 혹시나 잘못 살까 싶어 말을 천천히 하며 화이트보드에 갈치를 그린 뒤 그 옆에 숫자 4를 썼다. "갈치 4마리 토막 내서 사와야 해요. 가능하면 큰 걸로 4마리요. 알겠죠?" 진지한 눈빛으로 설명을 듣던 몽골 출신의 나랑토야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BRI@광주이주여성지원상담센터는 매주 수요일, 이주여성들의 한국 적응을 돕기 위해 한국요리강좌를 연다. 전 동신여고 가정교사인 김인순씨가 요리강좌를 맡고 있다. 이날은 그 전 주에 이어 열린 두 번째 강좌. 이상옥 이사장은 "이주 여성들이 장 보는 방법을 배워 한국 생활을 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직접 시장에서 반찬거리를 사오게 한다"고 말했다.

그녀들의 장보기

센터 근처 할인마트 가는 길. 나랑토야씨와 마이씨, 루엔마이씨, 모이씨는 들뜬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할인마트로 가는 그녀들은 마치 소풍을 가는 듯 즐거워보였다. 한국에 온지 4개월이 됐다는 베트남 출신 마이씨에게 한국 요리를 잘 하느냐고 묻자, 마이씨는 김치찌개와 된장국을 할 줄 안다며 시어머니와 남편이 자기 요리를 맛있게 먹는다고 자랑했다. 이어 "시어머니가 잘해주고 남편이랑 항상 놀러가니까 한국생활도 재미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마이씨의 얼굴은 한국에서 느끼는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담소를 나누며 한참을 가는데, 나랑토야씨가 세 사람과 떨어져 멀찍이 앞서 걸어갔다. "왜 같이 안 가요"하고 묻자, 나랑토야씨는 천천히 가면 싫다면서도 걸음을 조금 늦추었다. "이름이 나랑토야 맞아요? 나란토야? 나랑토야?" 재차 물어보자 나랑토야씨는 싱긋 웃으며 "나라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우리나라'할 때 '나라'요"라고 답했다. 마이씨와 같이 한국에 온지 4개월이 됐다고 한다. 한국말을 잘한다고 하자 나랑토야씨는 고맙다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선글라스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눈웃음이 유독 또렷해보였다.


a 센터 근처 할인마트에서 장보기를 하는 이주여성들.

센터 근처 할인마트에서 장보기를 하는 이주여성들. ⓒ 서영화


a 시장거리를 다 산 후 할인마트 앞. 왼쪽부터 루엔마이씨, 모이씨, 마이씨, 나랑토야씨.

시장거리를 다 산 후 할인마트 앞. 왼쪽부터 루엔마이씨, 모이씨, 마이씨, 나랑토야씨. ⓒ 서영화

마트 입구에 들어서자 마이씨와 나랑토야씨는 장보기에 익숙한 듯 바구니를 들고 먼저 갈치를 찾아다녔다. 갈치 코너에서 갈치를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던 나랑토야씨는 구이로 쓰기에 알맞은, 살이 두툼하고 통통한 갈치를 골랐다. 어느새 한국 아줌마가 다 된 모습이었다.

참치를 사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마이씨가 쌀가루로 만들어 먹는 쌈의 일종인 베트남 음식 라이스페이퍼를 바구니에 넣었다. 시장거리를 다 산 후 계산대에 이르자 마이씨는 지갑에서 5000원을 꺼내 라이스페이퍼 값을 지불했다. 마이씨에게 '오늘 반찬거리가 아닌 것을 왜 사느냐'고 묻자 그녀는 "친구, 친구(웃음)"하고 말했다. 같은 한국생활을 하며 고향음식을 그리워할 친구를 생각하는 마이씨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a 장보기를 하고 센터로 돌아가는 길. 잠깐 옷가게에 들러 옷구경을 하는 마이씨와 모이씨.

장보기를 하고 센터로 돌아가는 길. 잠깐 옷가게에 들러 옷구경을 하는 마이씨와 모이씨. ⓒ 서영화

장을 다 보고 센터로 돌아가는 길. 마이씨가 갑자기 옷 가게 앞에 멈춰섰다. 한참 머뭇거리다 가게 안으로 들어간 마이씨는 주위의 옷들을 두리번거렸다. 긴 검정 치마가 그녀의 눈에 띄었다. 긴 치마를 들어 다리에 대보던 마이씨는 3만원이란 주인의 말에 놀라 '비싸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a 빨간 코트를 입은 마이씨가 예쁘다는 말에 수줍은 듯 웃는다.

빨간 코트를 입은 마이씨가 예쁘다는 말에 수줍은 듯 웃는다. ⓒ 서영화

나가려던 차, 문 쪽에 걸려있던 빨간 코트가 다시 마이씨의 마음을 끌었다. 마음에 들었는지 마이씨는 코트를 입고 거울에 모습을 비춰보았다. 예쁘다고 하자 환하게 웃는 마이씨. "이거 얼마에요?" "3만5천원." 옆에 있던 모이씨가 너무 비싸다며 2만원에 달라고 떼를 썼다. "너무 비싸요. 2만원에 주세요. 2만원." 주인이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자 모이씨가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럼 2만5천원에 줘요. 2만5천원. 네?" 가게 주인이 3만원은 받아야한다며 끝내 안 된다고 하자 마이씨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발길을 돌렸다.

본격적인 요리시간

교실 안은 요리 준비로 한창이었다. 선생님은 냉장고에 넣어뒀던 전을 프라이팬에 다시 데웠다. 선생님이 베트남 출신인 튀(22)씨에게 전을 주자 어느새 한국 인사말이 몸에 배인 듯 튀씨가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필자에게도 "언니 드세요"하며 전을 입에 넣어주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먹어본 전 중 제일 달콤했던 것 같다.

타국 사람이지만 낯을 가리지 않고 밝게 웃으며 친절한 튀씨. 찬물로 씻은 손을 선생님 볼에 살짝 찍으며 장난치는 스무 살 쭈엔씨.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마치 오랜 시간을 함께한 것처럼 그녀들은 친숙하고 편안했다.

a 갈치구이를 하기 전 쭈엔씨와 홍 풍씨가 김인순 자원봉사자의 설명을 유심히 듣고 있다.

갈치구이를 하기 전 쭈엔씨와 홍 풍씨가 김인순 자원봉사자의 설명을 유심히 듣고 있다. ⓒ 서영화

쭈엔씨는 냄비에 김치를 넣고 찌개를 끓일 준비를 했고, 그 옆에서 선생님은 때때로 물을 어느 정도 부어야하는지 알려주었다. 선생님은 홍 풍씨와 튀씨, 모이씨에게도 갈치가 프라이팬에 들러붙지 않도록 기름을 적당히 부어야한다며 시범을 보였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표정들이 사뭇 진지했다.

a 왼쪽부터 튀씨, 쭈엔씨, 홍 풍씨가 요리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왼쪽부터 튀씨, 쭈엔씨, 홍 풍씨가 요리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서영화

설명이 끝나자 그녀들은 앞에 있는 프라이팬에 본격적으로 갈치를 굽기 시작했다. 갈치를 굽던 튀씨가 선생님에게 "선생님 앉으세요, 제가 할게요"하고 말하자 선생님은 튀씨가 예의바르다고 칭찬했다. 교실 안은 어느새 갈치 굽는 연기로 자욱했다. 갈치를 굽던 홍 풍씨는 갈치 연기에 이맛살을 찌푸린다. "냄새 나."

한편에서는 해산물을 싫어해, 멸치를 먹어도 대번에 바다 냄새를 안다는 나랑토야씨가 갈치 굽는 것을 보고 안 먹을 거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생님은 그 옆에서 "오늘 요리는 나랑토야씨가 먹을 수 없는 것인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a 튀씨가 가지런하게 썬 김치를 마이씨가 그릇에 예쁘게 담고 있다.

튀씨가 가지런하게 썬 김치를 마이씨가 그릇에 예쁘게 담고 있다. ⓒ 서영화

갈치를 다 굽고 난 뒤, 튀씨는 마이씨와 함께 반찬으로 내갈 생김치를 썰었다. "음, 맛있겠다." 마이씨가 김치를 보며 군침을 흘렸다. 튀씨는 스승님이 가르쳐 주셨다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도마에 김치를 가지런히 썰었다. 보통 솜씨가 아니다.

식탁은 김치찌개, 갈치구이, 생김치로 풍성했다. 상을 다 차리고 모두 식탁에 둘러앉자 마이씨가 "잘 먹겠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감사합니다"하고 웃은 뒤 "한국에서는 밥 먹기 전에 '잘 먹겠습니다'하고 말해야 한다"며 다른 이들에게도 한국의 식사예절을 가르쳐주었다. 마이씨는 갈치와 쌀밥이 맛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다 같이 도란도란, 손수 만든 음식을 먹는 시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a 이주여성들이 손수 만든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다.

이주여성들이 손수 만든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다. ⓒ 서영화

식사가 끝난 후 설거지를 하는 마이씨와 모이씨. 전혀 힘든 내색 없이 사이좋게 설거지를 하는 그녀들. 한쪽에서 찐풍남(28)씨가 화이트보드에 '시어머니가 배가 많이 아프다'며 "어머니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아파하지 마세요"라고 썼다. "어머니 배가 많이 아파요"라고 말하며 손으로 배를 가리키는 찐풍남씨의 눈빛에서 시어머니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느껴졌다.

찐풍남씨에게 여기서 요리하는 게 좋은지 물었다. 그녀는 "얼마 행복해요"라며 서투른 한국어로 행복함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김치찌개, 참치찌개, 된장국"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손가락으로 할 줄 아는 한국 요리를 세었다. 그녀는 남편이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어깨를 주물러주는데 남편이 "각시 고마워요"라고 말한다며 행복한 결혼생활도 이야기했다. 짬뽕을 제일 잘 먹는다는 홍 풍씨에게 새해 소망을 물었다. 홍 풍씨는 "아빠, 엄마가 건강하고 시부모님이랑 아기, 남편 다 같이 건강했으면 좋겠다"며 소박한 소망을 드러냈다.

a 찐풍남씨가 교실 한가운데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쓴 글.

찐풍남씨가 교실 한가운데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쓴 글. ⓒ 서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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