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맞은 대학생, 다단계가 노린다

알려진 업체들, 이름 바꿔 영업... 사채 유도, 반품거부 등

등록 2006.12.16 12:05수정 2006.12.1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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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이모씨는 지난 8월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던 중 선배의 소개로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한 업체를 찾았다. 이씨는 업체에서 3일간 일종의 교육을 받았다. 교육내용은 대부분 업체 간부들이 나와서 했는데 피부관리 회원권, 헬스 회원권, 화장품, 건강식품 등을 판매해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이었다.

이씨는 교육 후, 판매원이 일단 물건을 산 뒤 소비자에게 팔아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300여만 원을 학자금 대출 명목으로 회사에서 빌려 피부관리 회원권, 헬스이용권, 화장품을 구입했다. 그리고 판매원이 상품을 체험해 본 뒤 팔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회사 측 권유에 따라 피부관리 회원권과 헬스이용권을 한 번씩 사용했다.

얼마 뒤 이씨는 이 업체가 다단계 업체라는 것을 알고 환불을 요구했지만, 업체 측은 피부관리와 헬스 모두 한 번씩 이용했으니 계약조건에 따라 120여만원을 돌려주겠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씨가 학자금 대출 명목으로 빌린 300여만 원은 이자율이 40%에 육박하는 사채였다. 아울러 화장품은 구입한 지 2주가 지났다는 이유로 환불해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BRI@이 이야기는 20대 초중반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다단계 판매 사례다. 취재 결과, 대학생 다단계 업체들은 현재 '방문판매'로 등록한 뒤 다단계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고 공제조합에 가입했더라도 회사명이 알려지면 이름을 바꿔 영업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품은 뒷전, 법인 폐지도 밥 먹듯

대학생 대상 다단계 상담의 대부분은 반품에 대한 것이다. 방문판매법에 따르면 다단계 상품을 사업자로 구매할 경우 3개월(소비자로 구매할 경우엔 14일), 방문판매 상품은 14일 이내에 구매할 경우 환불할 수 있다. 하지만 업체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피해자들의 환불을 막고 있다.

사업자들을 몇 명씩 묶어 합숙시키는 한 업체는 비누와 휴지, 수건 등을 고가로 피해자에게 구매하게 한 뒤, 합숙하며 사용하도록 유도해 환불을 막고 있다. 또 다른 업체는 피해자에게 '상품의 이상 유무를 확인한다, 포장이 너무 커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며 포장을 뜯어보게 한 뒤 '포장을 뜯으면 환불이 안 된다'고 주장해 환불을 거부하고 있다. 아울러 헬스나 피부관리 회원권, 영어수강권 등을 판매하는 업체는 '사업하려면 먼저 체험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유도해 회원권을 쓰게 한 뒤 '계약 조항에, 회원권을 사용하면 환불이 불가능하다고 쓰여 있다'며 환불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반품 상담을 받고 있는 안티 다단계 운동가들은 반품이 가능한 사례도 많기 때문에 섣불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다단계로 등록한 업체보다는 방문판매로 등록한 업체들을 더 주의할 것을 주문했다.

안티피라미드 운동본부(아래 안티피라미드) 관계자는 "다단계 업체는 공제조합을 통해 보상받을 수 있고, 사업자의 경우 상품 환불기간이 3개월이기 때문에 상품만 잘 관리하면 환불받는데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방문판매로 등록한 업체는 업체가 도산했을 경우 보상받을 길이 막막하고 상품의 환불기한도 2주에 불과해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또한 "교육 중 상위 판매자한테 환불기한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듣고 환불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피해자들이 많은데 그들의 말을 믿을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a 지난 7월, 한 대학생 다단계 업체에 학생들이 모여 있던 모습.

지난 7월, 한 대학생 다단계 업체에 학생들이 모여 있던 모습. ⓒ 최상진

한편 대학생 대상 다단계 업체들은 법인 폐지와 이름 바꾸기를 통해 실체를 숨기고 영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오마이뉴스>에서는 지난 7월과 8월 대학생 다단계에 대해 보도했다. 당시 T에서 J, 다시 Y로 이름을 바꿔 방문판매업을 등록하고 실제로는 다단계 영업을 하던 한 업체는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자 영업장을 옮기고 이름을 또 다시 P로 바꿔 영업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Y업체와 함께 언론의 관심을 받은 또 다른 Y업체는 법인을 폐기하고 이름을 D로 바꿨으며, 다른 P업체도 B로 이름을 바꿔 영업하고 있다. D업체의 한 피해자는 "안티세력도 많고 이름도 알려졌기 때문에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고 업체 관계자가 말했다"고 주장했다.

안티피라미드 관계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업체가 명칭을 바꾸는 사례가 많은데, 다단계로 등록된 업체의 명칭을 변경하는 것은 서류만 작성하면 되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고 말하고 "이 경우 회사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환불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단 방문판매업체가 법인을 폐지했을 경우에는 환불할 곳이 없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자금 대출 명목으로 사채 유도, 수당은 못 받아

대학생 다단계 업체들은 대부분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초기 자본이 필요하다'며 300~400만원을 요구한다. 현재 업체 관계자들은 피해자들을 데려온 친구한테 돈을 빌리게 하거나 학자금 대출을 해주겠다며 피해자들을 사채업체와 연결하고 있다.

또한 약속했던 수당은 고사하고 사업자들에게 한 달에 10만원도 채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안티 다단계 카페 관계자는 W업체를 분석한 결과 사업자 개인당 한 달에 7만2천원 정도만 수당으로 지급되고 있다고 밝혔다.

a 다단계 업체에서 사용하는 계약서. 업체들은 계약서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다단계 업체에서 사용하는 계약서. 업체들은 계약서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 최상진

P업체의 피해자 김모씨는 "300만원을 빌리는데 선이자로 30만원을 제하고 한 달에 10만원의 이자만 내면 된다고 말하고 서류에 도장만 찍으라고 했다"고 말하고 "그때는 안정적 수입에 눈이 멀어 도장을 찍었는데 후에 생각해보니 연 이율이 무려 50%였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1년간 사업자 활동을 했다는 다른 김모씨는 "1년 동안 돈을 벌기는커녕 1000만원이 넘는 빚만 얻었다"고 밝히고 "20대 초반에 돈도 잃고 사람도 잃었을 때는 참 사는 게 의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합숙 업체들은 식비를 비롯해 방값이나 생필품 값도 따로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이 업체에 속한 학생들은 높은 이자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합숙 업체에서 잠시 활동했다는 김모씨는 "좁은 원룸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내고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한 명당 수십 만원의 원룸 임대료도 걷어가고 있었다"고 말하고 "뚜렷한 소득 없이 원룸 임대료와 사채 이자를 갚으려면 사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다단계 업체에서 겪은 일들은 내 20대 기억 중 가장 끔찍한 기억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순진한 학생들이 검은 유혹에 걸려들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최대한 빨리 나오는 것

안티 다단계 운동가들은 대학생 다단계의 피해를 줄이려면 최대한 빨리 업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YMCA 시민중계실의 오수진 간사는 "다단계 업체들이 대부분 친구와 선배의 소개, 남학생의 경우 병역특례 업체를 소개해 주겠다며 유혹한다"고 말하고 "아르바이트를 소개받으면 일단 회사에 대한 정보를 철저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학생들의 방학이 시작되는 요즘 시기가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할 때"라고 말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신중하게 고를 것"을 주문했다.

안티피라미드 관계자는 "지인의 소개로 업체에 들어갔을 경우 다단계 업체라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빠져나오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말했다. 또한 "빠져나오지 못하고 교육을 듣고 있을 경우 가족이나 친구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할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만약 사업하기 위해 대출을 받는다면 업체가 터무니없는 이율을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고, 사려는 상품이 정말 판매가치가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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