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크리스마스카드가 애틋한 이유

손가락 절단 산재를 당하고 귀국한 소피안

등록 2006.12.15 20:51수정 2006.12.1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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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이란 단어가 갖는 의미는 왜 그리 애틋한지. 첫 사랑, 첫 눈, 첫 만남.


올해 처음 크리스마스카드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이메일이나 인쇄된 카드로 보낸 것이 아닌, 몇 자 되지 않지만 손으로 정성스럽게 쓴 카드 말입니다. 어제 출국한 인도네시아인 소피안(M. Sofyan)으로부터였습니다.

"Bapak Joko,
Selamat Hari Natal & Tahun Baru 2007. Semoga sehat2 Selalu. Amen. TUHAN Memberkati. Muh. Sofyan"


번역하자면 “목사님께, 즐거운 성탄과 2007년 새해를 맞아 항상 건강하시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무하마드 소피안으로부터”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a 소피안이 준 카드

소피안이 준 카드 ⓒ 고기복

그런데 소피안으로부터 받은 카드가 더욱 더 애틋하게 느껴졌던 것은, 단순히 첫 크리스마스카드라 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소피안을 처음 만났던 것은, 그가 손가락 네 개를 절단당하는 산재를 당하고 출국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 쉼터에 왔을 때였습니다. 처음 봤을 때 소피안은 출국 문제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쉼터에 오기 전에 다른 단체의 도움을 받았다는 그는 정작 출국하기로 작정하고 우리 쉼터에 왔으면서도 출국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착잡해지는 마음을 스스로 주체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소피안에 의하면 자신은 IMF 당시인 98년부터 2001년까지 일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행운아였다고 했습니다. 덕택에 귀국 후 고향에 조그마한 자동차 정비업소를 차리고 결혼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만족할 만한 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엿한 사장님이었던 그는 한 번만 더 해외에서 일하고 목돈을 모아 고향에서 공장을 차려 관광객을 상대로 가죽장갑 장사를 하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갖고 지난해 고향을 떠나 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발리에서 일을 할 때 보니까 한국이나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이 수제 가죽장갑을 좋아하는 것 같아 그런 계획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입국 당시 일하던 회사에 문제가 생겨 회사를 옮긴 지 넉달째 됐던 8월, 그만 산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치료를 받는 동안 장갑 공장을 하겠다던 소피안은 잘려진 손가락을 볼 때마다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와 산재보험을 통해 재해보상금을 받고 나면 위로가 될까 했지만, 장해일시금을 받고 나선 마음만 심란해졌다고 했습니다.

a 네 손가락이 절단된 소피안의 손

네 손가락이 절단된 소피안의 손 ⓒ 고기복

기대했던 것만큼 보상금액이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소피안은 그 동안 산재를 당했던 다른 친구들(소피안이 우리 쉼터에 머물 동안 그를 포함하여 인도네시아인 세 명과 베트남인 한 명, 모두 네 명의 산재 피해자가 있었다)의 경우를 보며 기대했던 보상금액이 있었는데, 정작 받고 나서 실망이 컸다고 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쉼터에 있겠거니 하고 방 안을 보면 보이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심란한 마음에 여기 저기 친구들에게 의견을 들으러 가기도 하고, 도움을 구하기도 했던 모영입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던지 며칠 전 뜬금없이 귀국하고 싶은 날짜를 통보해 왔습니다.

그냥 지켜보던 입장에서는 귀국하기 전에 하게 돼 있는 대사관 산재사고 신고라든가, 출국할 때 반환일시금을 청구할 수 있는 국민연금, 자신이 들었던 귀국보험료 등에 대한 청구조차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일정을 통보받아 난감했습니다. 게다가 산재를 당했던 회사에는 퇴사하면서 출국할 의사가 없다고 하여 출국예정신고도 돼 있지 않아 보험금을 청구해도 절차상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결국 부랴부랴 회사에 연락한 후 인근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서 출국예정신고를 시작으로 관련절차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정작 모든 절차를 허겁지겁 끝내고 나자, 소피안은 다시 마음이 허해졌던 모양입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가도 잘린 손가락을 보며 한숨을 내쉬기를 반복하더니 그날 밤 다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다음날 다시 싱긋 웃으며 나타났습니다. 그런 그에게 똑같은 사고를 당하고도 꿋꿋하게 견디는 하스불라(Hasbullah)나 조노(Jhono) 등을 가리키면서 힘을 내라고 다독거려 봤습니다.

결국 귀국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는지, 소피안은 그 날 오후 사무실을 비웠던 저에게 크리스마스카드로 작별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수제 장갑공장 사장님, 장갑 가게 사장님이 되기를 소망했던 소피안이 부디 소망을 이루기를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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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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