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같지 않은 로모? 한번 써보세요"

[인터뷰] 광화문역 로모월 전시회 참여한 로모그래퍼 이수희씨

등록 2006.12.16 12:41수정 2006.12.1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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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로모의 인기는 대단하다. 로모월 전시회에 걸려있던 1만여장의 사진 중 하나.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로모의 인기는 대단하다. 로모월 전시회에 걸려있던 1만여장의 사진 중 하나. ⓒ 후박

@BRI@"로모, 그 장난감 같은 거 머한다 쓰노."

같은 사진동호회에서 활동하던 후배가 로모로 사진을 찍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앞뒤 생각하지도 않고 툭 던진 말이었다. 로모는 '장난감이지 카메라가 아니'라는 그 이야기를, 후배는 마음 속에 꾹 담아둔 모양이었다.


나는 그냥 스쳐가는 말로 이야기 한 것이었지만, 열정적인 '로모그래퍼'로 변신한 후배에게 이 말은 로모와 로모그래퍼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었던 셈.

후배의 블로그에 명예훼손성 발언(?)이 그대로 옮겨져서 내가 로모그래퍼들의 조롱을 한 몸에 받았다는 뒷소문을 들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난 화요일(12일) 후배를 비롯한 23명의 로모그래퍼가 참여해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지하보도 담벼락 66m를 1천여장도 아니고 1만여장 사진으로 장식한 로모월 전시회 'Shall We Lomo!'를 보고 오게 되었다. 여기서 바로 나의 말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 로모의 매력, 로모그래퍼의 열정이란 바로 이런 것이군."

장난감 같은 카메라 '로모'로 찍은 사진들, 66m의 로모월이 되다


a 단종된 로모LC-A에 이어 최근 새롭게 출시된 로모LC-A+. 모양은 거의 변함이 없다.

단종된 로모LC-A에 이어 최근 새롭게 출시된 로모LC-A+. 모양은 거의 변함이 없다. ⓒ http://www.lomography.com

로모월 전시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요즘 젊은이들에게 주류 문화 아이콘으로까지 떠오른 로모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넘어가야 필요가 있겠다.

흔히 알려져 있는 '로모(LOMO)'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레닌그라드 광학기기 조합(LOMO PLC, 이하 로모사), 그러니까 카메라 회사를 말하는 것이다. 이번 로모월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사진들도 모두 로모사에서 만든 로모 LC-A로만 촬영된 것들이다.


로모사에서 만드는 카메라는 많지만 그중에서 로모 LC-A만이 로모그래퍼의 진정한 애기(愛機)가 될 자격을 갖춘 셈이다.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로모=로모 LC-A'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가장 빠를 듯. 흔히 이야기하는 로모는 바로 로모 LC-A를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a 로모월 전시회 포스터

로모월 전시회 포스터 ⓒ lomoplus.com

거리계 레버를 조절한 다음 셔터만 누르도록 되어있는 정말 단순한 기능만을 갖춘 로모 LC-A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82년. 1980년 후반 구 소련 정세가 악화될 무렵 자취를 감췄다가 1990년대 초반 유럽 젊은이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다시 생산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7~8년 정도 되었다는 것이 원로(?) 로모그래퍼들의 이야기. 2000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젊은이(특히 여성)들을 중심으로 로모그래퍼가 급속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본인의 생각으론 제대로 된 카메라라고 볼 수 없는 로모(로모그래퍼들에겐 미안하지만)가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열성 로모그래퍼인 이수희(31)씨에 물었다.

이수희씨는 앞서 말 실수를 했던 바로 그 후배임을 밝히며 현장감(?)을 위해 메신저와 메일로 나눴던 인터뷰 분위기를 거의 그대로 살렸음을 독자 여러분께 미리 말씀드린다.

"기록보단 감정 남긴다는 느낌 강해"

- 아니 제대로 된 카메라들도 많은데 꼭 로모를 고집하며 쓰는 이유가 뭐야.
"우선, 핸드백에도 쏙 들어갈 정도의 작은 필름 카메라라는 점. 그리고, 다른 필름 카메라처럼 찍을 때마다 뷰파인더 들여다보고, 노출 맞추고 초점 맞았나 안 맞았나 한참을 들여다 보고 찍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느낌에 따라 일단 대략의 거리만 보고 셔터를 누른다는 점. 설사 흔들림으로 인해서 초점이 나갔다 하더라도 그것까지도 매력으로 간주하게 된달까? 또 잘 찍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예측불가능함도 하나의 매력이랄까? 예를 들면 이런 거겠지.

디카 똑딱이를 쓸 때는 마치 기록을 남기는 느낌이 들고 로모는 그에 비해 기억내지는 감정을 남긴다는 느낌이 강해. 예를 들어. 지하철에 앉아서 가다 시선을 내려 무슨 생각에 빠져 있다가 어쩌다 내 신발이 눈에 들어왔는데 문득 그냥 '찍고 싶어'졌을 때."

a 내 신발이 문득 내 눈에 들어왔을 때 그냥 누를 수 있는 카메라가 바로 '로모'

내 신발이 문득 내 눈에 들어왔을 때 그냥 누를 수 있는 카메라가 바로 '로모' ⓒ 연월

로모 : 카메라를 꺼낸다.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차칵-'('찰칵'이 아니다) 하고 찍는다. 끝. 나중에 현상 인화를 하고 나면 왜 이걸 찍었지? 아~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후훗 그랬었지(뭐 기억이 안 날 수도 있고. ^^;).

똑딱이 디카 : 카메라를 꺼낸다. 전원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멀찌감치 LCD창을 보며 찍는다. (이 느낌의 차이도 큰 듯) 잘 나왔는지 LCD를 확인한다. 흔들렸다. 다시 찍자. LCD를 확인한다. 구도가 좀 이상하다. 다시 찍자. LCD를 확인한다. 발 모양을 이렇게 하면 더 괜찮겠다. 다시 찍자. LCD를 확인한다. 근데 내가 왜 이걸 찍고 있지? 그냥 'delete'.

SLR(렌즈 교환식 카메라) : 카메라를 집어든다. 무게감에 잠깐 멈칫한다. 관둔다.

- 로모는 마니아들이 특히 많은 것 같은데… 젊은 친구들, 젊은 세대들이 로모에 열광하는 이유는? 내가 나이를 많이 먹을 걸까.
"로모 마니아들이 많은 가장 큰 이유는 카메라 자체에서 생기는 비네팅 효과(사진의 외곽 부분이 어두워지는 그늘현상, 터널현상이라고도 한다)와 다른 카메라에 비해 뚜렷하게 나타나는 왜곡된 색감 때문이지.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그 비네팅 효과가 실은 로모의 회로문제로 나타나는 카메라 오류 현상이라는 거지. 아, 그럼 결론이 카메라가 오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거기에 열광한다라는 결론이 되는 건가? ㅋㅋ

그렇지만, 로모가 꼭 젊은 세대들의 전유물인 것만은 아닌 것 같아. 굳이 말하자면, 젊은 세대라서 로모에 열광한다기보다, 사진을 좋아하다보니 로모의 느낌을 좋아하는 거지. DSLR(렌즈 교환식 디지털 카메라)처럼 렌즈니 바디니 그런 장비병에 시달릴 일도 없고, 오로지 로모 하나로도 나의 일상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 이것저것 귀찮은 거 싫어하는 젊은 세대들과 대충 맞아떨어지지 않나? 암튼 뭔가 삐딱하잖아. 지 맘대로 찍히는 것이. ㅎㅎ"

- 이번에 러시아 다녀오신 분이 있는데, 거기선 새 로모 가격이 16만원쯤 한다더라고 새 것이 말이지. 그런데 국내에선 중고가 20만원이 넘으니 너무 비싼 거 아닌가.
"러시아 가격이 16만원이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그 2배에 호가하는 가격이지. 카메라에 비해 가격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긴 해. 로모도 토이카메라일 뿐인데. 제작과정에서 수작업이 있어설까? ㅡ.ㅡa"

- 내가 보기엔 로모가 인기가 있는 게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기보단 '나만의 아이템'이라는 성격이 더 강한 것 같은데 '넌 없고 난 있는' 이런 거 말이지.
"요즘엔 나도 있고, 너도 있다. ㅋㅋ 카메라가 사진을 찍기 위해 존재하는 거지, '나만의 아이템'이라는 생각은 아닌 듯해. 단종이 되고 나서는 가끔 로모를 일종의 액세서리라고 생각하고 '나만의 아이템'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긴 한데 로모의 참 매력을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깝긴 하다. 그런 의미로 로모를 갖고 있는 거라면, 굳이 뭐하러 비싼 돈 주고 로모를 사는건지. 디카로 찍어서도 얼마든지 포토샵으로 '로모필'(로모로 찍은 사진 느낌)을 낼 수 있는데…."

a 로모는 그저 스쳐가는 일상을 담는 '카메라'일 뿐. 사진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로모는 그저 스쳐가는 일상을 담는 '카메라'일 뿐. 사진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 왼손잡이

젊은 세대라서 좋아한다고...사진을 좋아하니 로모 좋아하는 것 뿐

- 로모 사용자들은 동료 의식이 강한 것 같은데 다른 동호회 보다 모임이 잘되는 것 같아. 로모를 좋아하는 사람만의 뭔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
"글쎄, 동료라기보다는 친구 같고, 가족같은 느낌? 로모 사용자들이 동료의식이 짙다기 보단, 동질감 내지는 감수성이 비슷한 사람들이 만났다고 해야 하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SLR처럼 장비병없이 오직 카메라 하나면 충분하고, 또 그 카메라의 매력을 충분히 경험하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 카메라로 만들어내는 감성 역시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뭐 뷰파인더 들여다보며 이리저리 재면서 사진 찍지 않는 사람들이 로모유저들이니 그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오픈마인드라 해야 하나? ㅎㅎ"

- 지금 네 생활에 로모가 없다면 어떨까.
"로모가 나에게 어떤 의미냐고 묻는 사람에게 나는 늘 '연애 같은거~' 라고 대답하는데. 그런 로모가 없다면… 나는 실연당한 사람 마냥, 혹은, 늘 내 곁에 있어야 할 무언가가 없어진 거 같은 느낌이 들겠지? 로모가 없다면 무미건조한 삶이 된다고 해야 할까?"

- 정말 로모에 푹 빠졌군. 매년 로모월 전시회를 할 작정인가.
"프로젝트 팀 형식으로 모인 터라 앞으로의 진로(?)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이번 광화문역 전시와 똑같은 형식으로 하는 것 보다는 좀 더 창조적인 형태의 '로모월'을 생각해보고는 싶어. 실행에 옮길지는 미지수. ^^;;"

a 로모의 가장 큰 매력은 '예측불가능'하다는 것. 사진 가장자리가 어두운 비네팅 현상도 로모의 매력중 하나다.

로모의 가장 큰 매력은 '예측불가능'하다는 것. 사진 가장자리가 어두운 비네팅 현상도 로모의 매력중 하나다. ⓒ 엘군

- 나처럼 로모에 대한 까칠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한 마디.
"아마 처음엔 뭐 이런 장난감으로 사진을 찍어? 라고 하겠지만. 일단 한 번 써보고, 그 결과물을 보게 된다면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거야. 로모가 그리 쉬운 카메라가 아니라는 걸 알고 도전 의식까지 느끼게 해준단 말이지….

까칠한 생각을 가진 오빠를 비롯해 그런 사람들을 보면 기백만원대의 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던데 카메라가 프로급이니 셔터를 누르기만 해도 프로급 사진이 나오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프로는 아니라는 거. 진정한 프로는 아마추어 비난 안 해. 사진으로 먹고 살기에도 바쁘지. 아마추어라면 아마추어답게, 응?"

- 내가 비난까지 했나?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정말 까칠하군. 그건 그렇고, 로모 생산 중단됐다는데 로모 사용자들 사이에선 별 이야기 없나.
"내가 알고 지내는 로모그래퍼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별 이야기 없었는데 로모를 득템(아이템 획득을 준말=구입)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이 많았던 것 같더라만… 아직 중고장터에 로모가 많이 나와 있어서 그런지 (로모 단종 소식이) 그리 와닿아 하지는 않음. 새로운 버전으로 생산을 한다니 뭐… 기다려 봐야지."

- 이번 전시회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가장 인터뷰다운 질문인가.
"개인적으로는 다들 처음으로 시도한 로모월이라 뭔가 거창하게 해 볼 생각이었으나 준비를 하면 할수록, 다양한 색감에 목말라했다는 것 정도. 전체적으로는 개인 각자들이 준비하는 일반 전시회와는 다르게 로모월이라는 자체가 로모로 찍은 사진으로 벽을 꾸미는 거다 보니 참여한 23명의 로모그래퍼들의 넘쳐나는 개성들을 하나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맞춰 가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지. 다들, 워낙 개성들이 강하시니. ㅋㅋ"

- 마지막으로 로모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로모의 매력은 말로 해서는 제대로 느낄 수 가 없지. 로모 빌려 드릴테니까 한 다섯 롤만 찍어보세요."

- 로모 빌릴 독자들을 위해 연락처는?
"ㅡ.ㅡ;"

덧붙이는 글 | *'Shall We Lomo!' 로모월 프로젝트 첫 번째 전시회는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오는 17일까지 진행된다. 로모월 프로젝트팀의 사이트는 www.lomoplus.com.

덧붙이는 글 *'Shall We Lomo!' 로모월 프로젝트 첫 번째 전시회는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오는 17일까지 진행된다. 로모월 프로젝트팀의 사이트는 www.lomo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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