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무대... 뒷배경에 웬 중국 그림?

[공연평] 가수 '비' 월드투어 콘서트 첫 날의 느낌

등록 2006.12.16 17:41수정 2006.12.19 14:38
0
원고료로 응원
a

ⓒ 스타엠

겨울비가 촉촉이 내린 15일 저녁,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또 하나의 '비'가 내렸다. 가수 비(본명 정지훈)의 'RAIN'S COMING-06/07 RAIN WORLD TOUR'가 그 첫 번째 막을 올린 저녁 8시, 체조경기장에는 그를 보려는 1만여 명의 팬이 몰렸다.

이번 서울 콘서트는 비의 12개국 월드 투어의 출발지다. 공연 도중 비가 말한 것처럼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 위해" 그는 세계로 간다.


비의 월드투어 콘서트 첫 날을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 두 명이 함께했다. RAIN'S COMING!

국적, 나이 불문하고 "비 보러 왔어요"

a 일본에서 비의 공연을 보러 온 팬들

일본에서 비의 공연을 보러 온 팬들 ⓒ 이상욱

시작 몇 시간 전부터 공연장 앞은 수많은 팬들로 가득했다. 비가 내린 추운 날씨에도 4000여석이나 되는 입석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린 팬들도 많았다. 한류 스타임을 짐작케 하듯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은 어린이에서 할머니, 외국인까지 다양했다.

부모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은 동작구의 송진영(12), 송나영(11) 남매는 상기된 표정으로 "공연이 기대돼요"라고 말했다. "엄마가 가자고 해서 따라왔어요!"라는 진영군은 비가 노래를 잘 해서 좋단다. 또 동생 나영양을 가리키며 "이 나이 또래 애들은 원래 비 다 좋아하고요"라고 한다.

공연 문화의 중심에 초등학생이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무슨 그런 공연에 가느냐"며 손을 젓던 아버지도 결국 가족과 함께 공연장을 찾으셨단다. 문화사회연구소장 이동연씨는 "이제 남성들도 아내와 함께 공연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공연장 곳곳에 보이는 가족을 보니 이제 그런 문화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나보다.


시작 30분 전, 무대 중앙 입석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젊은 여성뿐만 아니라 아줌마, 할머니 팬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누나팬이 많다는 비의 인기가 실감난다. 'THAI 비', 'RAIN 비 雨'라는 문구를 든 태국의 아줌마팬 역시 신난 표정으로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입석 한쪽에서는 일본에서 온 아줌마팬 3명이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Rain 비 ☆ ♡'라고 쓰인 똑같은 응원도구를 하나씩 손에 들고 "비 보려고 왔어요. 사람들 많이 같이 왔어요"라며 서툰 한국말을 한다. 그들은 비와 손잡아 보는 게 소원이란다.


첨단 무대기술의 진보, 영상이 나를 압도하다

a 첨단 무대와 영상, 음향이 눈길을 끌었다.

첨단 무대와 영상, 음향이 눈길을 끌었다. ⓒ 이상욱

8시 15분쯤 조명이 꺼지고 "정지훈"을 외치는 관객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무대를 가리고 있던 천막이 떨어졌다. 무대는 독특했다. LED 스크린을 배경으로 2층으로 구성된 본무대와 입석을 둥글게 감싸는 보조 무대가 따로 있었다. 이 무대는 해외 어떤 공연장에서도 설치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BRI@무대 위 대형 LED 스크린 5개는 웅장한 소리와 조화를 이뤄 장관을 연출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가 부서지는 모양 그리고 바닷속 풍경. 소름이 끼치도록 사실적이고 수준 높은 영상이 흘러가는 가운데 잠수함 속에서 비가 등장했다.

약 2시간 30분간 영상과 조명, 어느 하나 눈을 뗄 수 없었다. 체조경기장 천장을 둥글게 둘러싸도록 설치한 구조물을 따라 움직이는 조명과 화려한 색채의 영상을 보니 다른 공연에 비해 입장료가 비싼 이유를 알 것 같다.

공연 관계자는 이번 월드투어의 내용은 "마술과 환상"이라고 말했다. 'Friends'를 부를 때 리프트를 타고 높이 올라간 비의 뒤로 나타난 스크린 속의 날개와 '태양을 피하는 방법'에서 나온 붉은 노을이 진 태양의 모습. 이전까지의 공연들과는 전혀 다른 첨단 시각 기법이 선을 보였다.

무대 곳곳에 숨어있는 리프트는 비가 조용히 사라지는 장면을 연출해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무대에 설치된 무빙워크를 활용해 관객과 더 가까이 호흡하고, 비의 손짓에 따라 폭죽이 터지기도 하는 등 기술의 진보 측면에서 볼거리 많은 공연이었다.

"비 오빠, 나 쓰러져요~"

a

ⓒ 스타엠

현란한 그의 몸동작이 무대 전체를 압도한다. 그의 분신과도 같은 댄서들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탄성을 자아냈다. 서로 다른 피부색의 여자 댄서와 함께 춤을 추는 그의 모습에 공연을 보는 팬들은 소리를 지른다. "꺅! 오빠 안돼~!"

갑자기 탱고무대가 펼쳐지기도 한다. 여자 백댄서와 함께 현란한 탱고춤을 추는 비의 무대 위로 흐르는 음악은 탱고버전의 '나쁜 남자'였다. '11 days'를 부를 때는 바퀴 세 개 달린 의자를 활용한 춤을 선보였다. 비는 때로는 팬들의 남자친구처럼, 때로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한류 스타의 당당한 모습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비는 이번 공연에 앞서 역도경기장을 보름간 대관해 실제 공연과 똑같은 무대에서 연습 공연을 했다. 또 마돈나, 자넷 잭슨 등과 함께 일했던 미국의 안무팀과 공동작업으로 만든 새 안무를 하루 12시간씩 연습을 통해 가다듬었다.

"이제 저는 세계 속의 비가 되려고 합니다."

수줍은 미소를 보인 비는 그가 어떻게 한류스타의 정상에 올랐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줬다. 세계 속의 비라는 말에 걸맞은 수준 높은 공연이 무대 위로 펼쳐진 것은 그런 준비 과정의 결과였다.

그러나 수준 높은 공연에 비해 관객과의 소통이 적었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이승환, 김장훈, 조성모는 공연에서 관객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콘서트를 이끌어간다. 준비된 절차에 따라 정확히 진행한 이번 공연은 감탄하고 탄성 지를 일은 많았지만 함께 웃고 편하게 즐기기에는 부족한 느낌, 그야말로 '준비된' 대형 공연이었다.

진정한 한류스타라면... 부족한 2%

a 중국풍의 영상을 배경으로 취권을 떠올리게 한 춤(왼쪽)과 선정적인 춤을 선보인 비

중국풍의 영상을 배경으로 취권을 떠올리게 한 춤(왼쪽)과 선정적인 춤을 선보인 비 ⓒ 스타엠

서양 미녀들과 키스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 댄서들은 비의 몸을 어루만지고 선정적인 춤을 춘다. 한편 공연 후반에는 붉은 깃발을 든 남자 댄서들이 여럿 등장한다. 무대 양쪽으로 빨간 천이 길게 드리워지고 비는 취권을 모방한 춤을 선보인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란 제목이 어울릴 듯한 이번 공연은 월드투어란 이름답게 미국, 중국, 일본과 동남아 여러 국가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이 때문인지 공연은 다분히 세계적인 정서와 문화를 모두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한 듯 보인다.

한국 고유의 북이 둥둥 울리는 가운데 몸짓으로 한국적 정서를 표현해낸 영상은 이번 공연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의 것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콘서트장을 가득 메운 여러 외국인들에게 역시 잔잔하지만 강한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연 전체의 내용은 서양 시각에서 그려졌다는 인상이 강했다. 붉은 깃발과 취권은 서양인이 중국을 떠올릴 때 그리는 모습과 같다. 뒤로 비치는 영상에는 붉은 장미꽃이 떨어지고, 중국의 동양화를 떠올리는 배경이 실렸다.

아시아와 세계무대를 대상으로 하는 무대라지만 취권 대신 태권도를 넣었더라면, 붉은 깃발 대신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고유 무용을 가미했더라면 어땠을까. 진정한 한류스타이자 월드스타 'RAIN'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2%가 있다면 바로 한국의 문화를 무대에 녹아내려는 노력이 아닐까 싶다.

a 비의 월드투어 첫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비의 월드투어 첫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 스타엠

비의 'RAIN'S COMING-06/07 RAIN WORLD TOUR'는 에이즈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돕는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과 함께한다. 그는 공연 중 전세계에서 에이즈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스크린에 띄워 "월드스타로서 앞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이들과 함께 할 것"이란 메시지를 전했다.

비는 16일 서울에서 한차례 더 공연한 뒤 월드투어에 나선다. 그는 마지막 인사 무대에서 "세계 속의 비, 월드스타 비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이 제 곁에 있어줘야 한다"라며 팬들의 끝없는 응원을 부탁했다.

밤 10시 20분 경 두 시간 반 동안 비와 함께 한 '마술과 환상'의 세계 체험이 끝났다. 이제는 다시 현실이다. 공연장을 나오니 또다시 바닥이 촉촉이 젖어있었다. 공연장에서도 하늘에서도 비가 세상을 적신 날이다. 한국에서 한 이번 공연이 그에게 교훈을 줘 좀 더 좋은 공연으로 세계를 적실 수 있는 비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덧붙이는 글 | 정연경·이상욱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정연경·이상욱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2. 2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3. 3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4. 4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5. 5 대법원에서 '라임 술접대 검사 무죄' 뒤집혔다  대법원에서 '라임 술접대 검사 무죄' 뒤집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