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해 발톱자국을 내다

[채팅 인터뷰] <오마이뉴스> 김용국 시민기자

등록 2006.12.18 15:46수정 2006.12.1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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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세상이라는 캔버스에 이름이 아닌 발톱자국을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 집중하고 그 소식을 쉴 새 없이 독자에게 실어다주는 이 사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김용국(36)씨를 채팅창에서 만났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띠리링" 소리와 함께 컴퓨터 하단의 메신저 창이 오렌지 빛으로 반짝거렸다.

@BRI@김씨의 말이 다급하게 올라왔다. 법원공무원. 김씨의 첫 번째 타이틀이다. 재판 진행을 위해 당사자들에게 연락하고, 서류를 나눠주고, 기록을 정리하기에도 하루가 짧다. 이런 김씨에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기사 쓰느라 밤을 꼬박 새고 출근하는 한이 있더라도 버릴 수 없는 두 번째 타이틀이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사이트 꼭대기에 큼지막이 쓰인 문구다. 이 말은 김용국 기자와 꼭 들어맞는다. 대학 다닐 때 수업은 빼먹더라도 학보사 일은 빼먹지 않았다는 김 기자. 그때부터 언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공무원이 되고 나서는 정신없이 일하느라 독자로 만족해야 했다. 그 중에서도 <오마이뉴스>는 김씨가 빼놓지 않고 보던 인터넷 신문이었다. 대선 같은 중요한 이슈가 있으면 하루 종일 들어가서 읽기도 했단다. 그랬던 김씨이기에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매일 읽기만 하다가 하루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올려보았다. 아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그린 '어이구 내 새끼... 아빠, 욕하지 마'는 김씨의 첫 기사였지만 단번에 포털사이트의 메인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때부터였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김씨의 성격에 발동이 걸린 것은. 대학시절 학교도 빼먹고 글을 쓰던 열정이 재가동되기 시작한 것.

"꼭 직업기자만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나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김용국 기자. 시민기자는 직업을 포기하지 않고도 기사를 쓸 수 있어 도전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내 분야에서만큼은 직업기자, 아니 그 이상으로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려 합니다"라고 전했다.

법원공무원, 법을 말하다

김용국 기자가 <오마이뉴스>에 본격적으로 법 기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작년 12월. 일명 '대딸방'이 무죄라는 판결이 나왔을 때다. 밑도 끝도 없이 '무죄'라는 결과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하는 기존 언론의 기사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김씨는 판결문을 분석하고 담당 판사를 인터뷰해 판결이 나오기까지 과정과 의미를 살펴보는 '대딸방 무죄,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기사를 썼고 <오마이뉴스>의 '이달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됐다. 김용국 기자는 "기존 언론이 보도하는 법원 기사는 단편적 현상만 놓고 봐서 정확성이 떨어지고 선정적인 경우가 많다, '제대로 파헤쳐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전했다.

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법원이 일터이니 법이나 법원에 대한 문제점이 많이 보인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기사 쓸 아이템이 춤을 춘다"는 김용국 기자. 하지만 법원 안에서 김씨는 공무원일 뿐 기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개된 범위의 자료만 이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공무원 신분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함부로 활용할 수도 없는 일. 공직자이기 때문에 시민기자가 된 후 더욱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는 김씨다. "제가 잘못하면 법원 전체가 욕먹을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신중하게 전하던 김씨는 "잘리면 안 되잖아요"하며 농담을 던졌다.

김씨는 근무 중에 새로운 판결이나 소식을 듣더라도 퇴근 후에 기사를 쓸 수밖에 없기에 속보를 놓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단다. 그래도 인터뷰에 응해주는 법원 판사들과 조언해주고 자료 찾는 것을 도와주는 법원 동료들에게서 힘을 얻는다고 했다. 그 덕분에 김씨의 기사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독자들은 '법 기사'하면 읽어보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기 마련이다. 고소, 고발, 선고유예, 집행유예, 기각, 재심 등 어려운 말이 어찌 그리 많은지. 읽는 사람도 힘들지만 쓰는 사람도 고민되긴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김씨는 기사를 쉬운 말로 풀어쓰려고 특별히 노력한다고 전했다. 고등학생 정도는 이해하길 바라며 쓴다고.

내년에는 독자들에게 법을 더 쉽게 말하기 위해 '생활 속의 법 이야기'를 쓸 계획이란다. "법은 대학을 나와도 전공자가 아니면 모르거든요. 소수의 사람들이 독점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될 수 있는 한 쉽게 기사를 쓰려고 합니다." 김씨의 '생활 속의 법 이야기'가 쉽고 재미있게 독자들에게 다가가길 기대한다.

사회에 대한 관심, 그것이 바로 발톱자국

시민기자에겐 마감이 없다. 잘릴 걱정도 없다. 그러므로 소신 있게 기사를 쓸 수 있다. 그러자면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남들이 말하지 못한 것, 쓰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며 김용국 기자는 시민기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비판 의식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것 중 잘못된 것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거든요. 그런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잖아요." 좋은 기사거리를 발굴해 좋은 기사를 쓰다보면 좋은 기자가 되리라는 게 김씨의 설명.

자기 기사를 보고 판사들과 법원 직원들이 공감했을 때, 독자들이 법원을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봐줄 때 김씨는 즐겁다고 전했다. 독자들이 리플이나 쪽지로 의견을 말하고 격려의 한마디를 해주면 밤잠 안 잔 보람을 느껴 피곤하지도 않다고.

이 보람을 어떻게 하면 이어 나갈 수 있을까? "일반인들에게는 법이 너무 멀어요. 법과 독자의 사이에 서서 그 틈을 좁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법원이 깨끗해질 수 있도록, 또 국민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도록 내부 감시자 역할도 하겠습니다."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답게 바뀌길 바라는 김용국 기자의 관심, 그 발톱자국 하나가 매일 오롯이 새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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