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탑 위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이 땅의 교회가 어머니의 품과 손길, 발길과 같은 모습을 구현해냈으면 합니다

등록 2006.12.18 17:18수정 2006.12.1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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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옆 뒤뜰 길목입니다.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그 위에 길이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차량이 지나간 길입니다. 사람이 여기에 길을 냈다면 아마도 빗자루 길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정말 운치 있고 아늑해 보입니다.
교회 옆 뒤뜰 길목입니다.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그 위에 길이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차량이 지나간 길입니다. 사람이 여기에 길을 냈다면 아마도 빗자루 길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정말 운치 있고 아늑해 보입니다.권성권

17일 일요일 새벽엔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서울시와 하남시를 경계로 하고 있는 풍산동 이곳에도 정말로 많은 눈이 쌓였습니다. 그 새벽녘에 교회 앞마당에 쌓여 있는 눈들을 밟아보는데 감촉이 참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좋아할 새도 없이 새벽 기도를 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길을 냈습니다. 이른바 눈길을 조그맣게 냈던 것입니다.


마당에 쌓여 있는 눈들을 조금 치우니 금세 새 길이 났습니다. 처음엔 눈으로 덮여 있어서 백짓장 같았지만 도로변을 따라 금을 긋듯 쭉 쓸어가다 보니 멋진 길이 금방 탄생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쉬운 게 그 눈길을 내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인생길은 그런 눈길과는 다를 것입니다. 그것은 눈길을 내듯 무언가를 쓸어 내고 또 길을 내듯 딱딱 들어 맞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잘못했다고 다시금 쓸어내거나 약간 모자라기 때문에 더 깎아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기에 그만큼 심사숙고해야 하는 게 인생길이지 않나 싶습니다.

교회 뒷마당에 있는 눈덮인 소나무 모습입니다. 가지마다 흰 눈이 소복히 쌓여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쌓였는지 탐스럽기도 하지만 금새라도 가지가 꺽일듯 합니다.
교회 뒷마당에 있는 눈덮인 소나무 모습입니다. 가지마다 흰 눈이 소복히 쌓여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쌓였는지 탐스럽기도 하지만 금새라도 가지가 꺽일듯 합니다.권성권

눈길을 낸 뒤, 곧장 교회 뒷마당으로 갔습니다. 뒷마당에 있는 여러 나무들 위에도 화사한 눈들이 많이 내렸습니다. 흡사 눈꽃들의 향연 같았습니다. 그 중 소나무 위에 내려앉은 눈꽃들이 가장 탐스럽고 화려했습니다. 하지만 그 눈들을 떠받들고 있던 가지들이 자칫 꺾이지나 않을지 염려스러웠습니다. 너무나 많은 눈들이 가지가지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니 순식간에 ‘지탱’이란 단어가 스쳐지나갔습니다. 그것은 소나무 가지들이 무거운 눈들을 힘차게 떠받들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힘에 겹고 부대끼지만 그 가지들이 버티고 서 있기에 그나마 눈꽃 같은 그 아름다운 눈들이 자신들의 자태를 마음껏 뽐낼 수 있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이는 사람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모름지기 우리 주위에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그 밑에서 묵묵히 그를 지탱해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런 말 없이, 아무런 자랑 없이 그저 제 할 도리에 충실하고 있는 그런 무명의 사람들이 있는 까닭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나마 아름다운 까닭도 이 사회를 지탱하는 무명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카메라 렌즈에 들어 온 것은 교회 종탑이었습니다. 세상 속에 있는 모든 십자가 종탑, 교회들이 제 역할을 감당했으면 합니다. 저 종탑 속에서 어머니의 포근한 품을, 따뜻한 손을, 다함 없는 희생의 발길을 그려내듯 이 땅의 교회들이 참된 모습을 구현해 냈으면 합니다.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카메라 렌즈에 들어 온 것은 교회 종탑이었습니다. 세상 속에 있는 모든 십자가 종탑, 교회들이 제 역할을 감당했으면 합니다. 저 종탑 속에서 어머니의 포근한 품을, 따뜻한 손을, 다함 없는 희생의 발길을 그려내듯 이 땅의 교회들이 참된 모습을 구현해 냈으면 합니다.권성권

새벽 기도를 마치고 잠시 하늘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봤습니다. 십자가 종탑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어찌나 아늑하고 좋은지 그지 없이 그윽했습니다. 그 태양을 보니 마치 어린 아이들을 보듬어 안아주는 어머니의 포근한 품 같았습니다. 동구 밖에서 하루 종일 놀다 집으로 들어오는 어린 녀석들의 시린 손을 붙잡아 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 같았습니다. 자식들이 행여 냉방에 자지 않을까 염려하여 멀리 뒷산에까지 올라가 검불들을 긁어모아 한 짐 이고 내려오는 어머니의 굳건한 발길 같았습니다.

그 어머니의 참된 사랑에 비하면 오늘날의 교회들은 세상을 향해 다함없는 사랑을 쏟고 있지 못합니다. 빛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어두움만 가중시키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희생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이기심만 가득 채우려 하고 있으니 괜히 처량해 보일 뿐입니다. 교회가 밝고 깨끗한 일에 앞장서기 보다는 종종 부정직한 일의 중심에 서 있으니 종탑을 세우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이곳 풍산동 지역이 비늘하우스가 많은데, 그곳 둘레에서 몇 몇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신나는 모습인데, 보는 것만으로도 옛날 어린 시절이 그립기만 합니다. 그때 우리네 엄마들이 야단도 무지 쳤지만 그래도 시린 손들을 꼭 잡아주곤 했습니다.
이곳 풍산동 지역이 비늘하우스가 많은데, 그곳 둘레에서 몇 몇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신나는 모습인데, 보는 것만으로도 옛날 어린 시절이 그립기만 합니다. 그때 우리네 엄마들이 야단도 무지 쳤지만 그래도 시린 손들을 꼭 잡아주곤 했습니다.권성권

그 때문인지 종탑 위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어머니의 그 모습들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부질 없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만큼의 수준에 못 미치는 까닭이었습니다. 그만큼의 사랑과 희생에 다다르지 못한 까닭이었습니다. 그만큼의 것들을 이 땅의 그늘진 곳을 위해 내 놓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이 땅의 교회들이 이제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그 모습처럼 다함 없는 사랑과 희생의 몫을 제 스스로 감당했으면 합니다. 그 길만이 종탑 위에 떠 있는 태양처럼, 태양 아래에서 반짝거리는 종탑처럼, 참된 빛을 발하는 교회로 다시금 존립할 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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