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에 딘데이얄네 짜이집으로 와!

꾸벅새가 선물한 인도 여행 25

등록 2006.12.19 11:25수정 2006.12.1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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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희
오른쪽 들판같았던 곳에 길 내는 일을 돕고 있는 한국인 봉사자들과 람
오른쪽 들판같았던 곳에 길 내는 일을 돕고 있는 한국인 봉사자들과 람왕소희
진짜 우유와 가짜 우유를 구별하는 법이 있다.

"흙 위에 우유 방울을 떨어뜨려서 스며들면 가짜고 볼록하게 솟아 있으면 진짜라고 하지. 가짜 우유는 물을 타기 때문에 금방 흙으로 스며드는 거야."


그는 늘 진짜 우유로 끓인 맛있는 짜이를 팔았다.

딘데이얄. 저녁 7시가 되면 마음이 바빠지는 남자. 일단 가게에 두 개뿐인 탁자를 비우기 위해 인도인 손님들을 재촉해 내보냈다. 새 우유를 양동이 가득 준비하고 힌디로 된 신문을 살펴 한국에 관한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해 두었다. 그리고 7시를 기다렸다.

매일 밤 7시면 한국인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한국인 봉사자들과 우리에게 딘데이얄네 짜이집은 잊을 수 없는 장소였다. 이곳에 가면 끝없는 수다와 걱정과 위로와 농담이 이어졌다.

나무 둥치를 베어내느라 도끼질을 하는 한국인 봉사자들
나무 둥치를 베어내느라 도끼질을 하는 한국인 봉사자들왕소희
"범수 말이야. 범수를 만나기 전에 우린 굉장히 지쳐있었어. 돌산에서 돌을 골라내다니 말이 안 되잖아. 일이 아니라 벌칙 같았다고! 아무리 날라도 끝이 없는 거야. 결국 음악 쇼 공원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하구나 싶은 생각만 들었지. 참, 짜이. 딘데이얄! 짜이 두 잔씩 돌려줘."

마을에서 시내에 오느라 추위에 떨었던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짜이를 마시며 나는 말했다.

"근데 어느 날 경찰서에 가게 됐어. 경찰들이 매일 순리 바이삽을 괴롭히는 거야. 외국인이 마을에 사는 게 불법이라면서. 그때까지 순리 바이삽은 우리한테 아무 말도 안하고 있다가 너무 심하게 괴롭히니까 경찰서에 좀 가 봐달라고 한거야. 그래서 경찰서에 갔는데…."


"정말 못살 것 이야!"

경찰서 얘기에 흥분한 지니가 끼어들었다.


"경찰서에 갔는데 덩치가 산만한 경찰들이 우리를 빙 둘러싸고 겁을 주는 거야. 총까지 매고서. 우리한테 의자에 앉아서 꼼짝 말라고 하더니 람과 동네사람들을 막 협박하면서…."

지니는 그 날 일을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그래서 메이랑 내가 일어서서 막 뭐라고 했지. 지금 뭐하는 거냐고! 왜 협박을 하느냐고! 당장 대사관에 전화하겠다고. 우린 잘못한 거 없다고.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그런데 이놈의 인도 경찰들은 들을 생각도 없었어.

처음부터 그런 걸 들으려고 우릴 부른 게 아니었으니까. 겁을 줘서 우릴 울릴 생각이었어. 그리고 돈을 뜯어낼 생각밖에는 없었지. 결국 람이 침착하게 얘기를 해서 일은 마무리가 됐는데 너무 억울하고 황당해서 대사관에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전화번호가 없는 거야."

그 날 사건을 토해낸 지니는 아직도 억울함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맞아, 지니. 그때 사원 앞에서 여행자인 범수를 만났어. 범수한테 대사관 전화번호를 물어 보면서 경찰들이 우릴 괴롭혀서 대사관에 도와달라고 할 거라고 했지. 그리고 다시 경찰서에 가야 된다고. 그렇게 헤어졌는데 범수가 그 뒤에 자전거를 빌려서 경찰서를 찾는다고 온 마을을 뒤졌다는 거야. 같은 한국인이 어려움을 당한 것 같아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데. 그러다가 언덕에 오게 됐고 범수랑 같이 온 친구들이랑 일을 도와주게 된 거야."
"와, 범수씨 대단해."

역시 여행자이지만 우리 일을 도와주고 있던 쏘나가 거들었다.

"잠깐, 딘데이얄, 우리 사모사(인도식 튀김 만두)하고 남킨(인도식 스낵) 좀 줘! 배고파!"

지니가 탁자 끝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국말을 열심히 듣고 있던 딘데이얄을 불렀다. 그는 잎사귀로 만들어진 일회용 그릇에 남킨을 가득 담고 따끈한 사모사도 듬뿍 내왔다.

"오늘 범수랑 람이랑 진짜 고생했어. 손 좀 봐. 물집이 터져서 피가 나잖아!"

우리는 그 사람들이 너무 고마운데 범수는 오히려 우리를 걱정했다.

"난 람 형님이 걱정이야. 람 형님이 제일 심하게 일을 하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야. 하루 종일 도끼질하고 바위 나르는데 장갑도 하나 없어서 손이 다 찢어지더라고."

"아냐, 봄수(범수). 난 이일이 즐거워. 그리고 난 괜찮아. 나야말로 봄수를 보면서 정말 감동했어. 봄수와 여기 와서 일을 도와주고 가는 한국인들은 대단해. 전혀 이기적이지 않아. 따뜻한 가슴을 가졌어. 코리안 스피릿! 야르! (한국인의 정신이라니!) 나중에 언덕으로 올라가는 지그재그길이 완성되면 꼭 '한국인의 길'이라고 이름 붙이겠어!"

람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감동을 받았다.

길 위에서 돌을 골라내고 있는 한국인 봉사자들
길 위에서 돌을 골라내고 있는 한국인 봉사자들왕소희
"으, 그런데 나 무서워서 더 이상 지니랑 못 살겠어!"
"왜?"

모두들 궁금한 눈초리였다.

"얼마 전 아침에 지니가 나한테 그러는 거야. '쏘나가 다시 돌아 올 거야. 한 남자랑 같이.' 자기가 꿈에서 봤다면서. 난 그냥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날 오후 정말로 언덕아래서 누가 애들이랑 올라오고 있는 거지. 쏘나 말이야! 전에 와서 일하느라 그렇게 고생하고도 다시 찾아온 거야. 정말 한 남자랑. 그게 사탕발림으로 꼬여서 일꾼으로 데려온 나 선생이었지. 하하하~"

나 선생은 한의대생이었다. 그는 우리를 진맥했다. 그러나 약재를 가지고 있지 않아 처방을 못해주고 오르차를 떠났다. 그런데 얼마 후 바라나시에서 한 여행자들이 꾸러미와 쪽지 하나를 들고 마을을 찾아왔다.

"이것 봐. 이게 그 쪽지야. 람형님, 지니, 메이 누나 보세요. '바라나시에서 친구를 만나 약재를 구했어요. 그래서 오르차로 가는 여행자들 인편에 약을 보내요. 람씨에게 꼭 맞는 약은 아니지만, 장기 복용해야하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여행하고 꼭 다시 들릴게요. 꼭이요. 건강하세요.' 이거보고 나 선생 마음이 느껴져서 모두 코끝이 빨개졌다고. 나 선생은 사람도 아니야.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감동시킬 수 가 있어!"

나 선생은 람을 볼 때마다 이렇게 말했었다.

"람 형님 눈빛을 봐. 사람은 저렇게 살아야하는데."
하지만 나 선생. 당신도 만만치 않아.

한국인은 멋있다. 우리는 모두 한국인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정'이라는 단어. 난 그 '정'이란 것을 보았다. 나도 한국인이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감동했다.

모두들 사연을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인도여행자들은 더욱 그렇다. 커다란 배낭을 지고 떠난 여행길에서 그렇게 힘든 일에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언덕에 왔던 사람들은 다시 여행을 떠난 곳에서 우리를 도와줄 사람을 오르차로 보내주곤 했다. 쏘나가 나 선생을 데리고 오고 나 선생이 바라나시 여행자들을 보내줬듯이. 이름을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일을 끝내고 밤마다 사람들과 왁자지껄하게 딘데이얄네 짜이집으로 몰려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딘데이얄! 오늘 짜이 값은 얼마야?"
"20잔이니까 40루피인데 30루피만 내."
"오, 아니야. 다 받아. 그래야 내일 또 올 수 있어! 그럼 내일 저녁 7시에 봐. 람람(안녕)"

역시 짜이는 진짜 우유로 끓여야 맛있어. 그렇지?

왕소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 행복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 행복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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