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둥치를 베어내느라 도끼질을 하는 한국인 봉사자들왕소희
"범수 말이야. 범수를 만나기 전에 우린 굉장히 지쳐있었어. 돌산에서 돌을 골라내다니 말이 안 되잖아. 일이 아니라 벌칙 같았다고! 아무리 날라도 끝이 없는 거야. 결국 음악 쇼 공원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하구나 싶은 생각만 들었지. 참, 짜이. 딘데이얄! 짜이 두 잔씩 돌려줘."
마을에서 시내에 오느라 추위에 떨었던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짜이를 마시며 나는 말했다.
"근데 어느 날 경찰서에 가게 됐어. 경찰들이 매일 순리 바이삽을 괴롭히는 거야. 외국인이 마을에 사는 게 불법이라면서. 그때까지 순리 바이삽은 우리한테 아무 말도 안하고 있다가 너무 심하게 괴롭히니까 경찰서에 좀 가 봐달라고 한거야. 그래서 경찰서에 갔는데…."
"정말 못살 것 이야!"
경찰서 얘기에 흥분한 지니가 끼어들었다.
"경찰서에 갔는데 덩치가 산만한 경찰들이 우리를 빙 둘러싸고 겁을 주는 거야. 총까지 매고서. 우리한테 의자에 앉아서 꼼짝 말라고 하더니 람과 동네사람들을 막 협박하면서…."
지니는 그 날 일을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그래서 메이랑 내가 일어서서 막 뭐라고 했지. 지금 뭐하는 거냐고! 왜 협박을 하느냐고! 당장 대사관에 전화하겠다고. 우린 잘못한 거 없다고.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그런데 이놈의 인도 경찰들은 들을 생각도 없었어.
처음부터 그런 걸 들으려고 우릴 부른 게 아니었으니까. 겁을 줘서 우릴 울릴 생각이었어. 그리고 돈을 뜯어낼 생각밖에는 없었지. 결국 람이 침착하게 얘기를 해서 일은 마무리가 됐는데 너무 억울하고 황당해서 대사관에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전화번호가 없는 거야."
그 날 사건을 토해낸 지니는 아직도 억울함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맞아, 지니. 그때 사원 앞에서 여행자인 범수를 만났어. 범수한테 대사관 전화번호를 물어 보면서 경찰들이 우릴 괴롭혀서 대사관에 도와달라고 할 거라고 했지. 그리고 다시 경찰서에 가야 된다고. 그렇게 헤어졌는데 범수가 그 뒤에 자전거를 빌려서 경찰서를 찾는다고 온 마을을 뒤졌다는 거야. 같은 한국인이 어려움을 당한 것 같아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데. 그러다가 언덕에 오게 됐고 범수랑 같이 온 친구들이랑 일을 도와주게 된 거야."
"와, 범수씨 대단해."
역시 여행자이지만 우리 일을 도와주고 있던 쏘나가 거들었다.
"잠깐, 딘데이얄, 우리 사모사(인도식 튀김 만두)하고 남킨(인도식 스낵) 좀 줘! 배고파!"
지니가 탁자 끝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국말을 열심히 듣고 있던 딘데이얄을 불렀다. 그는 잎사귀로 만들어진 일회용 그릇에 남킨을 가득 담고 따끈한 사모사도 듬뿍 내왔다.
"오늘 범수랑 람이랑 진짜 고생했어. 손 좀 봐. 물집이 터져서 피가 나잖아!"
우리는 그 사람들이 너무 고마운데 범수는 오히려 우리를 걱정했다.
"난 람 형님이 걱정이야. 람 형님이 제일 심하게 일을 하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야. 하루 종일 도끼질하고 바위 나르는데 장갑도 하나 없어서 손이 다 찢어지더라고."
"아냐, 봄수(범수). 난 이일이 즐거워. 그리고 난 괜찮아. 나야말로 봄수를 보면서 정말 감동했어. 봄수와 여기 와서 일을 도와주고 가는 한국인들은 대단해. 전혀 이기적이지 않아. 따뜻한 가슴을 가졌어. 코리안 스피릿! 야르! (한국인의 정신이라니!) 나중에 언덕으로 올라가는 지그재그길이 완성되면 꼭 '한국인의 길'이라고 이름 붙이겠어!"
람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감동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