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386 실험 끝났지만
마흔,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김정훈 칼럼] '소줏잔' 기울이는 386 세대를 위한 변명

등록 2006.12.20 08:50수정 2006.12.2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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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2003년 10월 30일 국립 518묘역을 참배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신계륜 전 의원과 안희정씨 그 외의 386인사들

지난 2003년 10월 30일 국립 518묘역을 참배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신계륜 전 의원과 안희정씨 그 외의 386인사들 ⓒ 안현주


빛바랜 사진첩을 넘기듯 2002년을 생각해본다. 그 해는 희망이라는 단어로 정의될 수 있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이루려는 국민들의 열광이 폭포처럼 분출되었고, 그 결과 노무현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갔을 때, 사람들은 점점 실망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정권이 아무 것도 바꾸질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탄핵을 뚫고 열린우리당을 제1당으로 만들어주었다. 실망이 좌절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다시 한번 힘을 실어주었지만, 지금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좌절감은 그 지지율만큼이나 깊은 바닥에 이르고 있다.

열광과 좌절의 싸이클

@BRI@또 다시 우리 역사에 고질적인 열광과 좌절의 싸이클이 반복되고 있다. 4·19혁명이 그랬고, 6·10민주항쟁이 그랬으며, 노무현 정권의 탄생과 탄핵이 그랬다.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거리의 열광으로 표현했지만, 그것은 다시 실망을 낳았고, 국민들은 좌절했다.

그래도 독재시절에는 괜찮았다.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 시대에는 그러한 반복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좌절감이 깊어질수록 투표율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고,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감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세력보다는 산업화세력에 보다 많은 신뢰를 보낸다는 최근의 여러 여론조사결과는 그 절망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다.

노무현 정권이 과거와 같은 싸이클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 것은 386세대라는 새로운 정치주체가 노무현 정권의 주역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최초로 집단적으로 정치의식화된 세대이며, 동시에 민주화 운동의 승리를 경험한 세대인 386세대는 지지부진하던 민주화를 일거에 확대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이끌어갈 세대로 주목받았다. 세대갈등이라는 화두를 던지기도 했지만, 386세대는 낡은 정치를 혁신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지금 그 결과는 참담하다. 386세대는 무능의 상징이 되었고, 국민들의 기대는 더 이상 이들에게 있지 않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386은 다 어디에 갔을까?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

동물원의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라는 노래가 있다. 386세대에 의해 만들어지고 불렸던 이 노래는 이 세대를 가장 잘 표현한다. '어렸을 때 우주소년 아톰과 마루치 아라치를 좋아했었고, 성문종합영어보다는 비틀즈를 좋아했던 세대, 대학교 때는 지금은 비록 유행이 지났지만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세대', 386세대는 그렇게 자라났고, 그렇게 성장했다.


조각 조각 흩어져 있는 추억들을 모으면 한 세대의 집단적 정서가 된다. 그러나 정서적 세대규정을 넘어 정치적 의미의 세대규정을 할 때는 단순한 나이에 따른 경험을 넘어서는 역사적 시간, 즉 한 시대의 획을 긋는 사건이나 사회구조적 변화를, 세대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다.

386세대를 단순한 나이에 따른 집단을 넘어서는 정치적 세대로 규정하는 것은 그들이 공유한 특정한 역사적 사건, 즉 '5·18 광주민주항쟁' 때문이다. 1980년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5·18 광주민주항쟁을 경험하면서 연대성을 가지게 되고, 강한 내부적 결속력과 동일한 정치의식을 통해 새로운 사회변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386세대를 가능하게 한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5·18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보다 정확하게 '5·18세대'이다. 국민의 군대가 자신의 국민을 무참히 학살했을 때, 그들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세상을 새롭게 바꾸어야 함을 깨달았다. 광주항쟁 비디오를 보며 가위눌리고, 무참히 쓰러져간 영령들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의무'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세대, 따라서 그들이 다른 세대와는 달리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5·18' 이후 대학에는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없었고, 한국에는 호남과 영남이 없었다. 광주는 전국화되었고, 전국화된 광주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민주화된 한국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모두가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었던 세대, 아이들에게 '아빠도 그때 돌 좀 던졌지'라고 말하는 세대, 그들은 승리의 기억을 갖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에 뛰어든 세대였다.

뉴라이트 386은 '박정희의 사생아'

a 이른바 '전향386'인 최진학, 황성준, 이동호씨 등 6명은 지난 11월 2일 오전 뉴라이트 전국연합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일심회' 사건에 대해 간첩사건이라 규정한 뒤 공안당국의 철저수사를 촉구했다.

이른바 '전향386'인 최진학, 황성준, 이동호씨 등 6명은 지난 11월 2일 오전 뉴라이트 전국연합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일심회' 사건에 대해 간첩사건이라 규정한 뒤 공안당국의 철저수사를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1987년의 민주화는 광주가 '전국화'된 것이고,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양김 분열은 전국화된 광주가 호남으로 축소되는 과정이었으며, 이런 의미에서 전면적으로 꽃피어야할 민주주의가 축소, 왜곡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5·18'이 축소되도록 이 세대는 가만히 두지 않았다. 2000년 총선연대를 통해, 2002년 대선을 통해, 그리고 2004년 탄핵을 통해 이들은 다른 세대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그들의 꿈이 유행이 지난 이야기'가 아님을 계속 증명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대에 주목했던 것이다.

모든 세대가 그러하듯 386세대가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부동산 광풍 속에는, 혹은 지독한 사교육 열풍 속에는 분명 386세대가 있다. 그것이 잘못된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인의 합리적 선택일지라도 분명 우리 사회의 잘못된 구조를 재생산하는 데 386이 기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 불행한 386도 있다. 소위 뉴라이트 386이다. 386세대의 감성이라면 적어도 한나라당과는 같이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과감하게 한나라당과의 연대를 택했다. 그러나 이들의 경험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의 선택을 무작정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들은 대부분 80년대 주사파라고 한다. '5·18'을 통해 박정희라는 아버지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김일성'이라는 새로운 아버지를 택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고, 이 아버지마저 정의롭지 못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들이 다시 권위주의적 리더십으로 회귀하는 것은 불행하지만 어쩔 수 없는 역사의 아픔이라 할 수 있다.

386운동권의 회고담을 보면 대부분 박정희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것은 김일성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는 북한 동포들을 연상시킨다. 북한 동포들이 김일성이라는 전일적 지배자에 모든 것을 의탁한 것처럼, 386세대 역시 권위주의하에서 복종적 인성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다른 386세대들이 '5·18'을 통해 산업화 시대를 묵묵히 살았던 고통받는 현실의 아버지를 새로운 아버지로 선택한 것과는 달리, 주사파 386들은 단지 동일시의 대상을 박정희에서 김일성으로, 다시 박정희로 바꾸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잃어버린 어린 아이들의 방황, 이들은 불행히도 박정희의 사생아인 것이다.

정치인 386 칭찬하려면 돌맞을 각오해야

시인 최영미는 영악했다. 그는 벌써 10여년 전 이 세대들 중 누군가가 지갑을 챙기고 먼저 떠났음을 알았고,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통해 그들과 관계없음을 선언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기'를 기대했다.

그 기대의 중심에 정치인 386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정치권에 진입했을 때, 이들이 지갑을 챙기고 먼저 떠난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운 상을 차리고 무대를 환하게 밝힌 사람들이라 믿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다. 정치인 386들이 우리가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뭘 그리 잘못했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들이 크게 잘못한 것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들에게 기대한 것은 다른 정치인들만큼이 아니다. 사람들이 원한 것은 '새로운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너무 참담했다. 지금 정치인 386, 보다 정확하게는 청와대나 열린우리당에 간 386을 칭찬하기 위해서는 돌 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 세태다. 오죽 했으면, 사람들이 모였을 때 일단 노무현 정권 욕부터 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입장에 따라 다양하지만 노무현 정권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는 비판 한 가지가 있다. "개혁이고 뭐고 다 좋은데, 뭘 할려고 했으면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보수이고 진보이고를 떠나 "한 것이 없다", 즉 무능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이들의 무능이 사실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이명박 전 시장의 인기의 핵심이다. 개혁한다고 큰소리는 쳐놓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노무현 정권에 비해 이명박 전 시장은 문화재를 파괴하고 인공개천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어쨌든 청계천공사를 했다.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이명박 전 시장은 추진력을 보여주었고, 국민들은 그것에 높은 지지율로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욕망을 20세기로 퇴행시켰다

a 우파로 전향한 운동권 386세대의 모임인 자유주의연대가 공식 발족을 앞두고 지난 2004년 11월 22일 오전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진표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 정책실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우파로 전향한 운동권 386세대의 모임인 자유주의연대가 공식 발족을 앞두고 지난 2004년 11월 22일 오전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진표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 정책실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국민들의 판단을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국민들의 욕망이 상향되는 것이 아니라 하향된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민주적인 추진력이 아니라 불도저식 추진력이 되도록 만든 상황, 이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 창조경제의 21세기에 적합한 상상력이 아니라 20세기 하고도 그 옛날 1970년대 경제개발시대, 산업시대의 상상력이 국민의 욕망이 되어 버리는 시대가 걱정된다. 만약 이러한 퇴행적 상상력이 대세가 된다면 21세기, 한국의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정권교체를 특징으로 한다면, 정치권 386의 잘못은 소위 민주세력이 정권을 잃을 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들의 문제는 국민들의 욕망과 기대를 퇴행시켰다는 점에 있다. 보수세력이 보다 나은 비전을 제시하여 집권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보수세력의 혁신을 이끌기 위해서는 소위 민주세력이 혁신되어야 한다.

정치인 386세대는 민주-반민주의 대결구도를 넘어서서 합리와 개혁을 요구했던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렸고, 그렇기 때문에 보수세력을 혁신시키지도, 국민들의 기대를 상승시키지도 못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욕망을 다시 20세기로 퇴행시켰다는 점에서 이들의 잘못은 크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위의 비유를 인용하면, 나는 이들이 새로운 상을 차린 사람들이기보다는 먼저 지갑을 챙겨 떠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모든 정치인 386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정치인 386은 스스로의 고백을 통해서도 이러한 판단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 386들이 자기반성을 통해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 있다. 그들이 20대 때 이념공부와 운동에 매달리다 보니 지금 현실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실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과거의 운동과 현재의 무능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지금의 무능과 과거의 대학 사이에는 길게 보아 20년, 짧게 보아도 10년이라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때 공부 못했다고 대학교 때 공부 못하는 것 아니고, 대학교 때 좀 놀았다고 해서 사회에서 성공 못하는 것 아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자기변명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적어도 10년 내내 쭉 놀았다는 말이 된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정치인 386들은 10년 동안 소위 그들이 강하다는 이념과 운동만 했고, 현실이나 경제에 대해서는 10년 내내 등한시 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말을 백퍼센트 인정한다고 해도, 정치인 386들이 과연 운동이나 이념에 강한지도 의심해볼 일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80년대로 돌아가면 그 시대의 화두는 민주, 민족, 민중이었다. 결국 민주는 이루어졌으니 그들이 지켜야 할 이념은 민족과 민중인데, 과연 이들이 이것을 지켰는가? 이 이념의 맞고 그름을 떠나 국가보안법에서 보여지듯이, 이라크 파병에서 보여지듯이, 그리고 최근에는 한미FTA에서 보여지듯이 이들은 이념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386 정치인들의 10년간의 긴 휴가

이념을 지키지 못했으니 이념공부도 제대로 한 게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10년 동안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논 것밖에 없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친구들이 한국의 IT 산업을 일구어내고,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만들어낼 때, 그들은 과연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과연 그들은 그들을 지지해준 자신의 친구들에게 혹은 선배 후배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한미FTA도 소신껏 찬성한다는 말'이, '보수세력이 무능을 덧칠했다는 말'이 과연 살아남은 자들의 변명일 수 있을까?

정치인 386의 모든 비밀은 바로 이 10여년간의 긴 휴가에 놓여있다. 10여년 동안 놀았으니 제대로 아는 것이 있을 리 없고, 그러니 관료나 재벌에 놀아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그 동안 놀기만 했을까? 그들도 무언가를 하며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럼 무엇을 했을까?

청와대 386과 열린우리당 386을 보면 대부분 정치권 출신이거나 그 언저리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화려한 운동경험을 뒤로하고 대부분 정치를 했다. 따라서 그들은 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치를 배웠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이들이 정책과 이념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기성 정치꾼의 정치를 배웠다는 점이다.

이것은 또 하나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준다. 정치권을 혁신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정치인 386이 왜 그렇게 급속히 권력화되었는지, 그리고 지금 개혁의 대의나 정책과 무관하게 '통합신당'이네 '재창당'이네 하며 권력유지에만 신경을 쓰며, 결국은 51대 49로 권력을 다시 가져올 거라는 망상을 갖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기왕 오해를 푸는 김에 또 하나의 오해도 풀어보자. 보수언론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소위 386들이 운동에 익숙했기 때문에 이분법적 인식을 했고, 이러한 이분법적 인식이 복잡한 현실에 맞지 않아 쓸데없는 적대만을 양산했다고 비판한다. 과연 그럴까? 이것은 두 가지 점에서 오해다.

먼저, 이들은 무엇보다 이분법적 인식을 하지 않았다. 보수언론의 비판대로 우리 편과 반대편을 가르는 인식을 했다면 왜 그렇게 많았던 지지세력들이 다 떨어져 나갔겠는가? 적어도 자기편을 위한 정치를 했다면 절반 정도의 지지율은 유지되었어야 하는데 그 많던 지지세력들은 어디에 갔는가?

이들은 이분법적 인식을 한 것이 아니라 권력욕에 따랐다. 보다 정확히 개인적 생존을 위해 행동했다. 개인적 생존만을 생각하다 보니 이들은 정치인이면 지켜야 할, 그래서 보수정치인들이 철칙으로 알고 있는 정치의 기본을 무시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버리는 잘못, 이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훈장정치의 말로

a 열린우리당 '386세대' 의원들의 모임인 '새로운 모색'은 지난 2004년 10월 28일 정부와 여당에 '주사파'가 포진했다고 주장한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 발언 취소와 사과를 요구했다. 송영길 의원이 기자회견문 낭독을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386세대' 의원들의 모임인 '새로운 모색'은 지난 2004년 10월 28일 정부와 여당에 '주사파'가 포진했다고 주장한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 발언 취소와 사과를 요구했다. 송영길 의원이 기자회견문 낭독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다음으로, 그들이 운동을 오래했다는 것 역시 오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들은 대부분 학생운동 후 정치권에 입문했다. 정치권으로 진출했다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운동의 연장선에서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운동을 훈장으로만 여겼다는 점이다. 운동은 마치 훈장처럼 아름다웠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정치적으로 활용되었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치열한 노력으로 전환되지는 않았다.

이들의 훈장정치가 빛을 발하는 것이 '과거의 동원'이다. 노무현 정권은 인기가 떨어질 때마다 과거사법과 같은 과거의 문제를 동원했지, 미래를 위한 개혁입법을 치열하게 추진하지 않았다. 과거 청산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양극화 해소, 부동산 문제, 새만금, 정보인권 등과 같이 현재와 미래를 위한 노력에 무심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은 과거의 인식에 사로잡힌 훈장정치의 필연적 결론이다.

사실 운동은 다른 386세대들이 했다. 지금은 정치인 386세대 때문에 싸잡아 비난받지만, 월 100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으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회운동 세력들이 운동을 했다. 또한 자신의 전문영역을 발전시키면서도 전문지식을 활용해 사회개혁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운동을 했다.

사실 정말 억울한 사람들은 이들이다.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개혁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정치인 386과 동일하게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인 386처럼 실력이 없지 않다. 그들은 운동을 했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복지면 복지, 부동산이면 부동산, 문화면 문화의 전문가가 되어 정치권 386에게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 한나라당을 제외한다면, 노무현 정권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세력은 이들이고, 사실 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희망이 있다.

공부도 안했고, 운동도 안했으니 무능과 실정으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모든 피해는 그들을 지지했던 사람들과 국민의 몫이다. 그들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배신감뿐 아니라 생활의 고통까지를 떠안게 되었고, 이제는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세상에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

마흔,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정치인 386을 위한 잔치는 끝났다. 그러나 생활인 386을 위한 잔치는 시작되지도 않았고, 386을 넘어 이 땅에 생활인들을 위한 잔치는 시작도 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고, 그들은 여전히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가지고 '장난'칠 때마다 화가 난다. 그 '임기'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의 힘으로 만들어낸 민주화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선의에 의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이야기는 잘못된 것이고, 나는 그것을 장난쳤다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정치인 386에게 강력한 자기반성을 촉구하지만, 반성의 표현으로 당장 그만두라고 하고 싶지 않다. 심정적으로는 그러고 싶지만 어쨌든 임기는 지켜지는 게 우리가 만든 헌정질서의 연속을 위해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들에게 '이번만 하겠다'는 결심을 요구한다. 계속 하겠다는 욕심을 버릴 때, 국민들의 고통이 눈에 보일 것이다. 그 고통을 해결하는데 주력하기를 바란다. 제발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신당이내 뭐내 하지 말고, 민생에 신경 써 주기를, 그들이 약속했던 개혁에 신경 써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모든 정치인 386이 위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권에도 국회의원이나 청와대 수석이 되지 못해 빛이 나지는 않지만, 음지에서 열심히 뛰면서 자신들의 진실이 희석되는 것이 안타까워 소주잔을 기울이는 많은 386세대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진정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386의 실험은 끝났다고 말해야 한다. 실패를 깨끗하게 인정할 때에만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제 386세대는 40대가 되었거나 혹은 40대가 되려고 한다. 한국 사회의 중요한 고비마다 그 방향을 올바른 방향으로 잡아주었던 386세대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우리 사회의 중심세력이 되었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세대가 되었다. 사오정, 삼팔선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이들이 IT 산업을 통해 한국 경제를 한단계 성장시켰고, 이들이 한류를 통해 한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진입시켰다. 이 세대는 배고품의 기억을 간직하기에 아버지 세대를 이해할 수 있고, 인터넷을 주도했기에 아래 세대들과 소통할 수 있다.

정치인 386세대의 실험은 끝이 났지만, 거대한 흐름으로서의 386세대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뉴라이트 교과서가 보여주듯이 비합리적 보수세력들이 길게는 지난 100여년 독립운동의 역사를 부정하고, 짧게는 지난 60여년의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일거에 무화시키려하는 이때, 386세대가 젊은 시절에 꾸었던 꿈은 더욱 소중한 우리 사회의 자산이다.

386세대의 꿈은 항상 현재진행형이었다. 그들은 20대에 민주화를 이루었고, 30대에는 한국 사회의 흐름을 바꾸었다. 모든 세대와 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세대, 그리고 명실상부하게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세대, 이 세대가 마흔에 만들어갈 꿈은 무엇일까? 아직 모든 것이 혼미하기는 하지만, 이 세대가 다시 한국 사회의 방향을 이끌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들이 만들어낼 새로운 꿈, 마흔,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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