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도 희망을 꿈꾼다

노점상 3인의 희망이야기

등록 2006.12.21 15:52수정 2007.01.1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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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이 열흘 남았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누군가에게는 아쉬움과 절망을 주었을 2006년. 사람들은 한 해의 끝을 잡고 올해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내년을 기대한다. 여기 내년의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노점상 3인이 있다. 추운 겨울날. 매서운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거리 한 곳에 자리 잡고 좌판을 펼친 그들은 말한다. “잘되겠죠, 뭐”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그들은 힘들다는 내색보다는 오히려 희망을 이야기했다.

a 할머니가 좌판의 먹을거리를 정리하고 있다.

할머니가 좌판의 먹을거리를 정리하고 있다. ⓒ 서영화

#1 할머니의 희망이야기 - "건강하면 뭐든 할 수 있어"

광주광역시 시내 외곽 한 쪽에 자리 잡은 좌판. 오징어, 번데기, 쥐포 등 갖가지 먹을거리가 펼쳐져 있다. 할머니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있다. 벌써 23년째다. 할머니는 매일 오후 2시에 거리로 나와 밤 12시쯤에 들어간다.

처음 노점을 시작했을 때는 부끄러웠지만 건강해서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는 할머니. 할머니의 장갑은 오랜 세월만큼이나 닳고 해졌다. 얼굴은 매서운 바람으로 까칠해 보였다. 여러 겹의 옷을 껴입은 할머니는 군밤을 많이 달라는 손님에게 손으로 한 움큼을 집어주며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하루에 2~3만원 정도 번다.

올해로 61세인 할머니는 지난 해 할아버지와 사별을 했다. 할머니는 80년도에 영화사업을 하다 실패해 뇌졸중으로 쓰러진 할아버지를 병원에서 간호하며 노점을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5년 동안은 할아버지의 통근치료로 잠시 노점을 접고 집에서 할아버지를 간호해야만 했다.

“거의 16년 간 노점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집에 갇혀서 생활하려니 답답하더라고. 그 때 우울증에 걸려서 내가 죽어버렸으면 했지. 당시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몸이 축 처지더라고.”

결국 지난해 12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할머니는 다시 노점을 시작했다. 할머니는 “남편이 떠나고 나니 남은 게 없다"며 "그래도 노점을 하니까 우울증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5년 만에 다시 노점을 시작한 첫 날 할머니는 행복감을 느꼈다.

"다시 노점을 시작한 첫날 5만 7000원 어치를 팔았는데 부자가 안 부럽더라고"


요즘은 경기가 어떠냐는 말에 할머니는 "자기가 노력한 만큼 소득이 있다지만 지금 현실은 아닌 것 같다"며 "돈 있는 사람만 살고 돈 없는 사람은 살기도 힘들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몸은 힘들지만 직접 벌어 쓰니 보람이 있다는 할머니는 쉽게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내 몸이 건강하면 뭐든 할 수 있는 거야.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잃지 말고 노점상을 하든, 뭐를 하든 꿋꿋이 살아야 해."



a 토스트를 만드는 아저씨

토스트를 만드는 아저씨 ⓒ 서영화

#2. 토스트 아저씨 - "곧 나아질 것"
"토스트 하나 주세요. 얼마에요?” “천 원입니다. 감사합니다”

처음 노점을 시작할 때와 같이 지금도 토스트 하나에 천 원을 받는 서진석씨(50. 가명).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아침 7시에 나와 일을 시작한다. 토스트 노점은 올해로 5년 째. 일을 시작한 후 석 달은 쑥스러움에 손님들 얼굴도 쳐다보지 못했다.

서울에서 18년 동안 살며 사업을 하던 그는 부도가 난 뒤로 고향인 광주로 내려왔다. “아무 것도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게 노점상이었어요.” 그는 용기만 가지고 노점을 시작한 첫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올해 아쉬웠던 점을 묻자 그는 최근 논란이 되었던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언급했다.

"2, 30억 하는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있으면서 종합부동산세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거 보면 이해가 안 돼요. 우리 서민들은 2억을 모으려 해도 10년은 모아야하는데 30억 가진 사람들이 그런 말하는 거 보면 의아해요."

앞으로 2년은 더 해 조그만 가게라도 차리고 싶다는 그는 장사가 잘 되는 날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했다.

“4년 전 축구국가대표팀이 월드컵 8강에 도전 할 때 도청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응원했거든요. 그 때가 제일 장사가 잘 됐었죠. 그렇지만 지금은 정말 불경기에요. 그렇지만 나아질 것이라 기대해요.”

a 액세서리 아저씨의 좌판

액세서리 아저씨의 좌판 ⓒ 서영화

#3. 액세서리 아저씨 -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게 중요"

40대 중반의 김민호 씨(가명)는 광주 광천동 액세서리 아저씨다. 예전에 액세서리 가게를 하던 그는 임대료와 인건비 등으로 지출이 많아 가게를 정리했다. 그 후 5년 째 노점을 하고 있다.

그의 좌판에는 모자, 장갑, 귀걸이를 비롯한 장식품과 고무줄과 같은 다양한 생필품이 놓여있다. 그는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은 장사하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웃었다. 해가 뜨면 좌판을 펴고 해가 지면 좌판을 거둔다는 그는 이른 아침에 나와 물건을 종류별로 좌판에 길게 펼쳐놓는다.

겨울에는 금방 어두워져 오후 5시 반부터 슬슬 물건을 치우기 시작한다. 그는 혹시나 그 사이에 손님이 물건을 살까 싶어 천천히 물건을 정리한다.

“요즘에는 박리다매가 통하니 이익이 적어도 많이 파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안 팔리는 물건도 싸게 파는데 그래도 재고 처리가 힘드네요.”

그의 집과 창고에는 아직도 팔리지 못한 물건이 가득 있다. 그는 액세서리는 유행을 타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것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건이 다 팔릴 때까지 노점을 할 계획이라는 김민호 씨. 그의 새해소망은 장사가 잘 되어 오래도록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다. 그는 때론 일이 하기 싫고 귀찮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안 되더라도 열심히 노력해야한다고 말한다.

"장사해서 돈을 많이 못 벌 수도 있지만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그 자체로 뜻 깊은 것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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