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마다 군대로 돌아갈 꿈을 꾼다"

[나만의 특종] 예비역 병장 출신 시민기자, 여군 중령과 독대하다

등록 2006.12.21 23:03수정 2006.12.2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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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우진 중령은 군대로 돌아갈 꿈을 꾸고 있다. ⓒ 도서출판 삼인 제공

"사범대학을 마치고, 교사로 일하던 24살 꽃다운 처녀. 우연히 여군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이게 내 길이다'하는 느낌이 들었다. 열정을 바쳐 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여겼다. 79년 겨울, 20대 1의 경쟁을 뚫고 여군 장교가 되었다. 하지만 27년 8개월 내 젊음을 바친 군에서 쫓겨나야 했다. 난 다시 군대로 돌아가기 위해 싸우고 있다." (피우진)

"23살, 입영통지서가 날아왔다. 분단의 상징인 군대에서 피끓는 청춘을 썩힐 수는 없었다. 세상엔 싸워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몇 차례 입영 연기신청까지 했다. 하지만 '국방의 의무'는 열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93년 가을, 결국 입영열차를 탔고 그렇게 26개월을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짬밥을 먹어야 했다." (김용국)


군대 가는 악몽을 꾸는 사람과 군으로 돌아갈 꿈을 꾸는 사람

@BRI@군대가 나오는 꿈을 아직도 악몽으로 여기는 예비역 병장인 나, 그리고 간절하게 군으로 돌아갈 꿈을 꾸는 예비역 중령 피우진.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만났다.

피 중령은 2002년 유방암으로 유방 절제 수술을 했던 병력이 뒤늦게 문제가 되어 올해 전역처분을 받았다. 그는 군인사법 시행규칙의 부당성을 문제 삼아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내가 피 중령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그의 30년 군 생활이 담겨있는 책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도서출판 삼인 펴냄)를 통해서다.

책에서 그는 여성으로서 받게 된 차별, 성희롱 사례를 폭로하였다.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승진과 보직에서 뒷전에 밀리고, 고위간부들의 여흥 자리에 '기쁨조'가 되어야 했던 서글픈 현실과 그에 맞서 싸우던 모습을 거침없이 써내려갔다.

왜냐고? "군대를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이란다. 그는 "군과 결혼했다"는 표현을 태연하게 쓰고 있었다. 더구나 유방암 수술을 받으면서 군 생활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예 양쪽 가슴을 절제하였다니, 보통은 아니다 싶었다.

대한민국 1호 여군 헬기조종사를 향한 내 호기심은 책을 읽고 나자 어느새 군인에 대한 경외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군대를 보는 시각차는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을 인터뷰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를 만난단 말인가.

사실 군대에서 나는 중령과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 아니, 감히 쳐다볼 수도 없었다. 예비역이라고는 하나 일개 사병이 영관급 장교를 '독대'하다니, 그야말로 특종이 아닐 수 없다. <오마이뉴스>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12월 18일 낮 예비역 병장과 예비역 중령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둘만의 오붓한(?) 만남을 기대했으나 오산이었다. 그는 요즘 너무 바빴다. 약속 시간도 변경되었다. 인터뷰는 '강제 전역 철회'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거리에서, 식당에서, 차 안에서, 평화 재향군인회 사무실 등에서 진행됐다.

"지휘관과 다른 의견 제시하면 진급의사가 없다고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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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앞에 선 피우진 중령. ⓒ 김용국

- 요즘 바쁘시네요. 10분이 멀다 하고 전화벨도 울려대고요?
"언론사 인터뷰가 계속 있고, 행정 소송을 준비하느라 여러 사람을 만나고, 저를 도와주겠다는 군 선후배들도 연락하고 찾아뵙고 그렇죠."

- 군에서도 피 중령의 강제 전역 문제 때문에 시끄럽겠어요?
"안에서는 아예 제 얘기를 못 꺼내게 한 대요. 처음엔 제가 군의 위상을 떨어뜨렸다고 분개하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좀 달라졌나 봐요. 속내 알아주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도움이 못 되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후배들도 있고…. 아까는 남자 후배(대위)가 전화를 걸어와서 '그동안 당신을 비난해왔는데, 책 내용이 절반만 진실이라도 사죄하겠다' 이러더군요."

- 책을 보니 피 중령의 성격이 나오던데요. 원칙주의자면서,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사람을 경멸한다, 승진에 목매지 않는다, 부당한 지시는 따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저와 비슷하던데요? (웃음)
"그런가요. 저는 최소한 언행일치를 하려고 노력했어요. 공부하면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군대에선 작은 일에도 지휘관의 의중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넌 진급의사가 없구나' 이렇게 판단해요. 지휘관뿐 아니라 동료도 그렇게 봐요. 남들처럼 편하게 갈 수 있는데 까다롭게 왜 그러느냐(원칙을 따지냐)는 거죠."

- 처음에 군을 지원하게 된 계기가 군대는 남녀가 평등하게 대접받는 곳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요. 경험해보시니까 어떻던가요?
"(군대가) 역동적일 것이라 생각했어요. 계급은 있지만 계급 안에서 남녀가 평등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했죠. 첨엔 들어가서 실망을 했어요. 헌병, 정보, 조종 이런 게 아니라 여군 병과가 따로 있었어요. 그나마 80년대 들어 여군에게도 이런 병과가 개방이 되기 시작했죠. 군에서도 제도는 평등하게 보여요. 하지만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고, 의식을 개혁하는 일이 정말로 중요해요."

- 잘못된 군 문화란 구체적으로 어떤 걸 얘기하는 겁니까?
"군대에선 터놓고 토론할 사람이 없어요. 그저 좋은 것, 긍정적인 것만 얘기하죠. 진급을 위한 일, 보여주기 위한 일만 하고요. 특정 지휘관이 떠나고 나면 쓸모없는 일들 벌이고. 또 일이 중심이어야 하는데 회식이 우선이에요. 회식조차도 획일적이죠. 회식문화라도 자유로우면 얼마나 좋아요. 지휘관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아서…. 군도 오픈되어야죠."

"여성이라서 우대? 그렇다면 왜 군에서 내보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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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우진 중령 ⓒ 김용국

- 회식 얘기를 하셨는데요, 책을 통해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고위 간부들의 성희롱 문제를 폭로하셨습니다. 다소 충격적인 내용도 있는데, 그렇게 심각한가요?
"심하다기보다 군대가 계급사회고 폐쇄적이니까 특수한 것이지요. 또 바깥으로 잘 알려지지 않으니까 그런 문화가 형성된다는 겁니다. 계급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 생존권을 쥐고 있으니 보직, 인사 이런 걸 빌미로 악의적으로 나오는 거죠. 저도 소위 때부터 앞에 앉아라, 뒤에 앉아라, 사적인 요구 많이 받았어요. 당연히 거부했죠. 그때마다 복종하라는 말 들었는데 복종과 맹종은 구별해야죠."

- 군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폭로할 수 있느냐, 군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원래 제 책에는 더 솔직한 얘기가 있었는데 명예훼손 우려가 있다고 완곡하게 바꿨거든요. 전 군을 매도한 적이 없어요. 몇몇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군을 망가뜨렸어요. 누구보다 군을 사랑하고 아끼고 그것밖에 없어요. 그래서 군으로 돌아가고 싶고."

- 피 중령 관련 기사에 댓글이 많이 달렸습니다. '당신은 누릴 것 다 누리다가 나가서 전방에서 나라를 지키는 사병들을 욕보였다', '군에 대해서 모르는 여성들에게 희생양이라도 되는 양 속였다' 등 부정적인 댓글도 있습니다. 사실 저 같은 사병출신은 장교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거든요. 추운 겨울엔 난로라도 피울 수 있고 외출도 할 수 있고.
"저도 공감해요. 사병들은 자발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국가와 계약을 맺은 것 아니겠어요. 군에 원해서 온 장교들과 다르죠. 다들 귀한 존재인데, 존중해줘야 하는데 군대가 그렇지 못했잖아요. 중령이라는 계급, 게다가 여군에 대한 심리적인 거부감도 이해해요."

- 국방부가 유방절제를 조종사 결격사유로 삼은 것을 두고 '가슴이 없어서 강제 퇴역이라. 그럼 가슴이 없는 남자들은 왜 가만두지? 같은 남자로서 창피한 일입니다. 가슴으로 조종하는 것도 아닌데'라는 댓글도 달렸더군요?
"저는 더 재밌는 댓글이 기억나요. 제 사진을 보고 '그 얼굴로 군에서 기쁨조가 될 수 있었겠느냐'고 했더군요.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 피 중령의 문제제기가 관심을 끄는 것은 '여성' 장교이기 때문인 점도 있는 것 같은데, 동의하시는지요?
"틀린 말은 아니죠. 더구나 문제가 된 부위가 여성을 대표하는 부위이다가 보니까. 여성이기 때문에 우대받지 않았느냐 그런 분들도 있는데 그건 아니죠. 우대받았으면 군에 있어야죠. 저를 내보낸 이유가 합당하지 않잖아요."

- 유방암 판정을 받은 후 양쪽 가슴을 절제하셨습니다. "이놈의 가슴 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씀까지 하셨는데 그건 불가피한 선택이었나요? 여성성을 거부하겠다는 뜻인가요?
"일단 (여군을) 바라보는 시선이 싫었고, (가슴이) 군생활에 불편했죠. 차이를 차별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어요. 군이나 사회나 구별할 부분과 차별한 부분을 구분하지 못해서 문제입니다. 여군의 출산 배려 같은 사안은 구별할 부분이죠. 사회가 기본적으로 장치를 만들어줘야죠. 목욕탕에 남녀가 같이 가는 게 평등인가요?"

"바라보는 시선이 싫어서 양쪽 가슴 절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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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우진 중령은 우리나라 제1호 여군 헬기 조종사이다. ⓒ 도서출판 삼인 제공

- 요즘 한 드라마에 여군이 나옵니다. 평생 맞선 한 번밖에 못 본 피 중령과 달리, 드라마 속의 여군의 중심이 온통 연애에 가 있던데…(웃음), 실제로 그렇습니까?
"저도 봤는데요. 지휘관 마크 달고 도심지에서 그렇게 로맨틱하게 사는 사람 없어요. 아이 키우랴, 남편 뒷바라지하랴, 야근하랴 바쁘죠. 또 전방지역에 가보세요. 지휘관이 밖에 나갈 수도 없어요. 여군의 잘못된 이미지이죠."

- 제가 법원에 근무합니다. 제 직장에서 안 뵙기를 바랐는데 결국 재판까지 오게 되었네요.
"그러게요. 전역결정을 받고 마지막으로 소청심사를 내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저를 쫓아낸 군인사법 개정되는 것도 보고, 저도 복직해야겠습니다."

- 제2, 제3의 피우진이 나와야 군대도 변하는 것 아닌가요?
"저처럼 불행하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여군은 도전적 속성이 있어요, 맨 위에 있는 분들이 흐름만 틀어주면 잘할 거에요. 하지만 군 바깥에 있는 분들도 저의 문제를 개인적인 일로 보지 마세요. 인권 측면에서 접근해주었으면 좋겠어요."

피 중령은 '초콜릿'을 좋아하는 '꽃'으로 상징되는 나약한 여군을 거부하고 양쪽 유방을 버렸다. 그것이 지금 오히려 군 복무를 가로막은 셈이 됐다. 그는 "진실하게 정도를 걷는 사람은 이긴다고 확신한다"면서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내가 지금 싸우는 것은 눈 위에 남긴 내 발자국이 다음 사람의 발자국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어쩌면 조만간 내 직장인 법원에서 군인이 아닌 소송당사자로서 그를 다시 만날지 모르겠다. 법원에서 그와 두 번째 만남을 갖게 되면 나는 반가워해야 할까? 그전에 그토록 군을 사랑하는 피 중령에게 국방부가 복귀명령을 내릴 수는 없을까?

중령 피우진은 날마다 군대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덧붙이는 글 | <2006년 나만의 특종> 응모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2006년 나만의 특종>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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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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