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참깨 털고 남편은 타작하고

<시 하나에 삶 하나4> 농촌에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길 기다리며...

등록 2006.12.29 11:22수정 2006.12.2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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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시골에 가면 도리깨로 콩타작을 하거나, 나무막대기로 깨를 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머리에 수건 질끈 눌러쓰고 멀리 튈까봐 어린 아이 잠재우듯 깨를 터는 아주머니나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면 그 속에 그분들의 삶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BRI@콩 한 알, 깨 한 톨도 아까워 조심, 조심하는 모습을 보면 풍요의 물살에 밀리듯 살고 있는 도시인들에겐 이상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우리들의 할머니, 어머니에겐 그 콩 한 알, 깨 한 톨이 자식마냥 소중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소중한 작은 것들이 값싼 중국산에 밀려 저 귀퉁이로 자꾸자꾸 내몰리고 있습니다. 시장에 가보면 콩, 깨는 물론이고 도라지, 시금치, 조, 수수 등 모두 중국산이 장바구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젠 미국의 것들까지 밀려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노동자 농민들이 한미 FTA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많은 농민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기도 했습니다.

일부에선 농민들의 시위를 집단이기주의라고 비난합니다. 국가에선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절대 용서치 않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바라보면 이상한 게 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부자들은, 있는 자들은 침묵하거나 한미 FTA를 찬성합니다. 그리고 시위자들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 한미 FTA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이고 부자들에게 손해가 가는 것이라면 이 나라의 있는 자들이 그렇게 조용하게 있지 않을 것입니다.

노동자나 농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주층에 속한 이들은 시위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그저 남의 불구경하듯 있습니다. 늘 뛰고 달리고 넘어지고 깨지는 것은 가난하고 늙고 힘없는 자들입니다. 그런 농민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시가 떠오릅니다. 정약용의 시입니다. 그의 시를 보면 양반이면서도 농민들과 아픔을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드러납니다.

아내는 참깨 털고 남편은 타작하는
이 세상 호걸이 바로 이 농민이라


부지런히 일하는 들판의 농부들
그 동작 진실로 호일(豪逸)하구나

나라 다스리는 방책을 알려거든
마땅히 농부들께 물어야 할 일


- 다산 정약용 -


우리가 알고 있는 정약용은 어떤 분일까요. 우리 역사에 약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약용이 조선후기 대표적인 실학사상가요 정치가요 학자임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전남 강진의 한촌에서 18년간이라는 긴 세월을 유배생활로 보냈다는 걸 알 것입니다. 그 유배 생활 기간 다산은 그냥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500여권이라는 수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때 쓴 대표적인 저서 중엔 우리도 한번쯤 들어 알고 있는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이 있습니다.

다산은 유배생활 중에 우리 농민들의 아픔도 함께 봤습니다. 그리고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나라의 농민을 호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방책을 알려거든 마땅히 농부들에게 물어야 한다고 노래합니다.

왜 그럴까요. 농민은 억지를 부리지 않습니다. 씨를 뿌릴 땐 씨를 뿌리고, 김을 매줄 땐 김을 매줍니다. 그리고 땅을 사랑하지 않으면 땅이 아픔을 준다는 걸 압니다. 다산은 어쩌면 그런 정직함과 부지런함을 농민을 통해서 봤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의 정책을 논할 때는 농부에게 물어야 한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농민들은 늘 당하기만 한 것 같습니다. 관리들에게 수탈당하고, 힘깨나 쓰는 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온 존재인 것 같습니다. 다산의 다른 시에 그 농민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게 있습니다.

어저귀 먼저 베고 삼밭에 호미질
늙은 할멈 쑥대머리 밤에사 빗질하며

일찍 자는 첨지 영감 발로 차 일으키네
풍로에 불 붙이고 물레도 고쳐야지


이제 농민들도 옛날과 달리 그저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주장을 어김없이 드러냅니다. 주장하지 않으면 멀뚱히 앉아서 빼앗긴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다산의 시 몇 편을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아내는 참깨를 털고 남편은 타작을 끝내고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밝게 웃으며 돌아오는 모습을 그려 봅니다. 빈 집만 늘어나는 농촌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날이 있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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