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청어람미디어
1960년에 태어난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추리소설의 대표작가이자 현대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일본 문단의 온갖 상이란 상은 전부 받고있는 인물이다.
한 월간지에서 선정하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여성작가'에서 7년 연속 1위를 한 작가이자,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했던 경력 때문인지 대표작인 <화차> <이유>에서 법률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92년작 <화차>에서는 신용카드 때문에 발생하는 개인파산제도를, 98년작 <이유>에서는 부동산 경매제도와 '버티기 꾼'에 관한 법률지식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 작가의 대표작에서 반복되는 배경은 거품경제 이후의 일본이다. 미야베 미유키가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던 당시에 이런 문제 때문에 고통받던 개인들을 보아왔던 것일까?
미야베 미유키가 넘나드는 장르 또한 대단하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유>에서 추리소설의 전통적인 화법이 아닌 일종의 '보도 문학' 형태를 선보인다. <브레이브 스토리>에서는 판타지의 세계를 그리고있고, 게임 마니아답게 게임을 소설화한 < ICO-안개의 성 >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대단한 필력의 작가이다.
<이유> <화차>는 이런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적인 사회추리소설이다. <화차>에서는 무절제한 신용카드의 사용으로 인해서, <이유>에서는 호화로운 아파트에 대한 욕망 때문에 어쩔수없이 범죄에 말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있다. 꽤 두꺼운 분량의 소설이지만 단숨에 읽힌다. 미야베 미유키가 묘사하는 인물이 생생하고, 그 등장인물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이 너무도 가깝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유> <화차>에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고질적인(?) 단점인 정교한 추리의 부족이 엿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작품의 분위기와 인물들을 이끌고가는 솜씨는 그런 단점을 덮고도 남는다. 그리고 과연 '추리의 부족'이란 것이 단점일까?
일본에서 사회추리소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 것은 그만큼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져가고 있다는 의미일수도 있다. '추리의 부족'이 단점이라 하더라도, 그 단점을 장점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은 여러가지일수 있다. <화차>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2001년, 미야베 미유키는 자신의 최고작이자 일본 추리소설의 기념비적인 작품 <모방범>을 발표한다.
범죄와 추리, 인간의 장대한 로망 <모방범>
<모방범>은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원고지 6000장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작품,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비롯해서 6개 상을 휩쓴 작품, 게다가 일본에서 300 만부 가까이 팔려나간 베스트셀러이자 일본의 한 소설가의 평처럼 '출판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기도 하다.
공원의 한 쓰레기통에서 여자의 절단된 오른팔과 핸드백이 발견된다. 이 발견을 시작으로 일본인의 관심을 사로잡는 연쇄납치와 살인이 시작된다. 이 작품에서 범인이 누구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흥미로운 부분은 연쇄살인이 피해자의 가족과 그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다.
<모방범>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연쇄살인의 피해자와 범인, 그 가족,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와 그것을 기사화하려는 저널리스트까지. 이 인물들은 서로 얽혀서 대화하고 싸우고 상처를 주면서 커다란 이야기를 형성한다.
이들은 살인이라는 사건을 간접적으로 겪으면서 황폐해지기도 하고 단단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생각하고 질문한다. 범인은 별다른 동기도 없이 왜 이런 연쇄살인을 하는걸까?
<모방범>에는 이렇다할 트릭도 없다. 굳이 트릭을 꼽자면 '모방범'이라는 제목 자체가 하나의 트릭이다. 이 제목의 의미가 밝혀지는 마지막 부분은 이 작품의 백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장면은 주요등장인물인 여성 저널리스트가 가장 밝게 빛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미야베 미유키는 자신을 투영한듯한 이 저널리스트를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사건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다른 등장인물의 내면에 대해서 그리고 동기없이 범죄를 행하는 범인의 정신상태에 대해서. 온갖 상처와 좌절 속에서도 꿋꿋하게 글을 써나가는 저널리스트에게 어느날 한 동료가 이런 말을 툭 던진다.
"인간이란 모두 누군가의 흉내를 내고 살아."
닮고 싶은 누군가를 흉내 내고, 범죄를 흉내 내고, 정신분석을 흉내 내는 것처럼 인간들은 전부 무엇인가를 모방해서 살아가는지 모른다. 좀더 큰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 집단이나 이 사회도 다른 사회를 흉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점점 삭막하고 끔찍해지는 범죄 조차도 사람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범죄에 둔감한 것처럼 애써 흉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날 운이 좋아서 미야베 미유키를 직접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누구의 흉내를 내고 있나요?"
덧붙이는 글 | <모방범>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펴냄.
모방범 1 - 개정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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