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입안 염증과 불효

아프시다는 표현을 못하신 어머니 마음

등록 2006.12.30 12:33수정 2006.12.3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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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어머니의 미소

어머니의 미소 ⓒ 나관호

며칠간 어머니가 식사를 잘 못하신다. 빵과 우유는 그런 대로 드신다. 그래서 잘 못 씹으신다는 핑계, 꾀병이 발동한 줄 알았다. 빵으로 배가 채워져도 균형 있는 식사가 중요한데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머니, 빵도 드시고 밥 드셔야 해요."
"내가 입이 아프고 밥맛이 없네."
"뭐 드시고 싶으신 것 없으세요?"
"없어. 배불러. 아들 먹어."

@BRI@그때 집에 들어오면서 최근 개업한 중국식당이 생각났다. 수타 해물 자장면 집이다. 면 종류는 잘 씹으실 것 같아서 수타 자장면을 사드리고 싶었다. 급히 외출 채비를 하고 나섰다. 추운 날씨라서 머뭇거렸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식사가 우선이라는 생각을 했다.

차 시동을 걸어보니 연료 넣으라는 불이 들어온다. 집에 들어 올 때부터 온 신호였다. 주유소가 근처에 없어서 거리를 계산해 보았다. 아슬아슬한, 모호한 거리다. 그래도 어머니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식당으로 직행했다. 가는 내내 계기판과 어머니를 번갈아 보았다.

식당에 도착에 차에서 내리는데 찬바람이 매섭다. 어머니 손을 잡아 보니 순간 차가워졌다. 어머니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 식당 주인이 마중 나온다. 아마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한 것 같다. 식당 주인이 말했다.

"아유, 할머니 추우신데 오셨네! 어머니신가 봐요?"
"네. 고맙습니다. 어머니세요."


주인은 가장 따뜻한 자리라며 온돌방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안타깝게 어머니는 인공관절 수술 후 바닥에 앉지 못 하신다. 그래서 식탁자리에 앉았다. 주인장이 직접 와서 주문을 받는다.

a

ⓒ 나관호

"어머니가 고우시네요. 해물은 잘 못 드실 것 같은데요?"
"그래요? 그럼 수타 자장면 주세요"
"우리 집은 모두 수타입니다. 부드러운 원조 자장면 드릴까요?"
"그러세요. 어머니가 잘 못 씹으시네요."


우리말이 서툰 종업원이오더니 물과 수건을 놓고 갔다. 어머니 손을 잡아보니 차갑다. 그래서 건너편에 있는 찐빵 가게에 가서 어머니 좋아하시는 찐빵 몇 개를 사왔다.

찐빵 집도 단골이 되어서 그런지 주인이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한다. 그 인사 덕에 찐빵을 더 샀다. 몇 개는 중국 음식점 주인장을 주었다. 자장면이 나오는 동안 어머니는 찐빵을 드셨다. 드시는 모습이 조심스럽다.

자장면이 나왔다. 양이 많아 보인다. 찐빵에 대한 답례가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에게 자장면을 비벼드렸다.

"나는 배부른데. 안 먹고 싶어."
"그래도 드셔야 해요. 여기는 식당이라서 어머니 안드시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웃어요."

아이처럼 어머니를 달랬다. 몇 젓가락을 드시더니 오른쪽 볼을 만지시면서 입이 아프다고 하신다. 아무래도 꾀병 같지 않았다. 어머니의 입 속을 들여다 보니 입 속 볼 부분에 염증이 보인다. 순간 내가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그만 드세요. 입에 염증 있네요. 약 발라 드릴게요."
"나 아프네."

a 식사하시는 어머니

식사하시는 어머니 ⓒ 나관호

먹던 자장면을 놓고 급히 집으로 가야 했다. 남긴 것을 보면 신경 써 준 주인이 무안해 할까봐 '맛있다'는 말과 함께 상황 설명을 충분히 했다. 주인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어머니를 본다.

"할머니, 또 오세요. 더 맛있게 해드릴게요."
"아유. 고마워요. 고마워."

어머니를 보시고 집으로 급히 왔다. 틀니를 세척약에 넣고 입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두 곳이 곪아 있다. 구강 세척제로 입안을 헹구고 프로포리스로 발라 드렸다. 시원하고 쓰리다고 하신다.

"후후. 입 바람을 불어보세요."
"후후후후. 괜찮네."

그 모습을 보니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꾀병으로만 알고 식사를 드렸는데. 어머니는 드셔야 한다는 자식의 말에 묵묵히 아픔을 참고 식사를 하셨던 것이다. 혹여 자식의 마음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하셨던 것이다. 죄송스런 마음이 두고두고 생각난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한참동안 있었다. 어머니도 내 손을 꾹 눌러 잡으신다. 차 안에서고 손을 잡아드리면 좋아하신다. 힘줘서 내 손을 잡으시곤 했다. 무언의 대화다. 내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 참 예쁘세요."
"뭘 예뻐. 에이."
"어머니가 최고예요."
"아유, 내가 뭐가 최고야 쭈그렁 할머니가."

어머니와의 몇 마디 대화 속에서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깊이 패인 어머니 눈을 보니 맑은 호수 같다. 어머니가 소녀처럼 웃으신다. 나도 웃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어머니, 건강하세요. 좀 더 곁에 계세요."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며 북칼럼니스트입니다.

덧붙이는 글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며 북칼럼니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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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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